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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편견 조장에 출연 거부" '상담 리얼리티'에 두 번 우는 '위기 가정'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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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편견 조장에 출연 거부" '상담 리얼리티'에 두 번 우는 '위기 가정'

입력
2022.12.27 16:30
수정
2022.12.27 22:11
22면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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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솔루션? 다그치려고 만든 것 같아"
'아동학대' 논란 MBC '결혼지옥' 출연자 경찰 입건 전 내사
미혼모 단체는 MBN '고딩엄빠' 폐지 운동

19일 방송된 '오은영 리포트-결혼지옥'에 출연한 일곱 살 아이는 새 아빠를 "삼촌"이라 부른다. 그 '삼촌'은 아이가 "싫다"는데도 신체 접촉을 과도하게 했고 그 장면이 고스란히 전파를 타 방송 후 '아동 학대' 논란이 불거졌다. MBC 방송 캡처

19일 방송된 '오은영 리포트-결혼지옥'에 출연한 일곱 살 아이는 새 아빠를 "삼촌"이라 부른다. 그 '삼촌'은 아이가 "싫다"는데도 신체 접촉을 과도하게 했고 그 장면이 고스란히 전파를 타 방송 후 '아동 학대' 논란이 불거졌다. MBC 방송 캡처

#1. 고2 때 임신한 A씨는 청소년 부모를 조명하는 MBN 예능프로그램 '고딩엄빠' 제작진으로부터 두 번의 출연 제의를 받았지만 모두 거절했다. 변화된 미래를 만드는 미혼모협회 '인트리'에 따르면, A씨는 "(방송) 내용을 보니까 자극적으로 나오는 부분과 (미혼모에 대한) 편견이 더 안 좋은 쪽으로 가는 것 같다고 생각해 출연을 거부"했다. '고딩엄빠'엔 중2 때 첫 아이를 배고 둘째 아이는 막달까지 임신 사실조차 알지 못해 화장실에서 출산했다거나 사이비 종교 단체에서 11년간 성 착취 피해를 봤다는 사례가 소개됐다. 스무 살에 아이를 낳은 B씨는 "솔루션을 제공하기보다는 '철부지 고딩 엄마, 아빠' '으유, 왜 저렇게 해'라고 다그치는 모습만 나오는 걸 보면서 정말 상담을 위한 건지 헷갈렸다"고 씁쓸해했다.

#2. '재혼가정이구나. 미친 지옥가정' '미성년 딸 있는 집은 재혼 진짜 신중하게 했으면 좋겠다'. MBC '오은영 리포트-결혼지옥'으로 새아빠의 의붓딸 학대 논란이 불거진 뒤 최근 사회관계망서비스에 올라온 글들이다. 19일 방송에서 일곱 살 된 딸이 "싫다"고 소리치는데도 새아빠가 '가짜 주사 놀이'라며 아이의 엉덩이를 쿡쿡 찌르는 등 과도한 신체 접촉 장면이 전파를 타면서 재혼 가정에 대한 일부 시청자의 편견만 키운 것이다. 방송 후 전북경찰청 여성청소년수사대는 학대 의혹 신고를 받고 이 남성을 상대로 입건 전 내사에 들어갔다.

올 상반기 방송된 '고딩엄빠'에서 미성년 때 출산한 출연자가 남편과 부부싸움을 하다 "칼을 들었다"고 말하고 있다. 제작진은 이 위험한 발언을 여과 없이 내보냈다. 방송에는 출연자의 얼굴도 모자이크 없이 나온다. MBN 방송 캡처

올 상반기 방송된 '고딩엄빠'에서 미성년 때 출산한 출연자가 남편과 부부싸움을 하다 "칼을 들었다"고 말하고 있다. 제작진은 이 위험한 발언을 여과 없이 내보냈다. 방송에는 출연자의 얼굴도 모자이크 없이 나온다. MBN 방송 캡처


위태로운데 더 궁지로

사회적 편견으로 고통받거나 위태로운 상황에 처한 가족의 치유를 내세운 상담 리얼리티 프로그램이 자극적인 연출로 오히려 편견과 위기를 조장한다는 비판의 목소리가 크다. 윤리 위반을 넘어 범법 행위로 비칠 수 있는 장면을 리얼리티란 장르 특성을 방패막이 삼아 여과 없이 내보내 출연자들의 삶을 가십거리로 만드는 게 문제라는 지적이다. 그 피해는 고스란히 아이들에게로 향해 2차 가해로 이어질 수 있다는 우려도 나온다.

상담 프로그램의 선정성 관련 잡음은 어제오늘의 일이 아니지만, 경찰 조사까지 번진 '결혼지옥' 아동 학대 논란은 좌시해선 안 된다는 게 전문가들의 의견이다. 정덕현 대중문화평론가는 "'결혼지옥' 논란은 스스로를 보호할 수 없는 곳에서 자신을 다 노출해야 하는 상담 프로그램의 위험을 적나라하게 보여줬다"고 말했다. 위기에 처한 출연자들에게 적절한 정보와 솔루션을 제공해 재활의 계기를 마련해주는 게 상담 프로그램의 순기능이다. 헌데 제작진이 시청자들의 눈길을 끌기 위해 갈등 상황을 부각시키는 데 급급하면서 폐해가 잇따르고 있는 것이다.


"자극적 문제만 부각" 6월 지적 나왔는데도

'결혼지옥' 제작진은 "아동의 입장에서 한 번 더 생각하지 못하고 많은 분께 심려를 끼쳤다"고 사과했지만, 논란의 불길은 쉬 사그라지지 않는 분위기다. 방송통신심의위원회엔 '결혼지옥' 관련 민원이 26일 기준 3,729건 쏟아졌다. '결혼지옥'이 사연을 다루는 방식에 대한 문제 제기는 지난 5월 첫 방송이 나간 뒤부터 나오기 시작했다. 6월 MBC 시청자위원회 회의록을 보면, 시청자위원들은 "문제의 자극적인 면만 부각되고 해결은 가볍게 다루어진 것이 아닌가 싶다" "오은영 박사의 개인적인 결론과 판단이라는 한계성이 있을 수 있다"고 꼬집었다. 당시 MBC 고위관계자는 '결혼지옥'의 차별성으로 "솔루션"을 강조했지만, 이번에 아동 학대 논란을 빚은 것은 그 특징을 제대로 살리지 못했다는 방증이다.


한계 드러내... "다양한 전문가가 제작에 적극 개입해야"

상담 프로그램들의 이런 부작용 때문에 '결혼지옥'과 '고딩엄빠' 시청자 게시판 등엔 프로그램 폐지를 요구하는 글이 줄줄이 올라오고 있다. '고딩엄빠' 폐지 운동을 벌이고 있는 미혼모협회(인트리) 오진방 사무국장은 "우리 주위에 흔히 볼 수 있는 게 싱글맘인데 출연자를 '고딩 부모'로 특화해서 그들의 재생산권 등은 고려하지 않고 엄마나 아빠 즉 부모됨만 강조하는 것은 위험하다"며 "방송에서 특정한 대상을 일반화하는 것은 청소년 한부모 등에 대한 확증편향을 심화시킬 수 있다"고 주장했다.

오은영 정신건강의학과 전문의는 '결혼지옥' 논란에 "'아이의 몸을 함부로 만지거나 아이의 의사에 반하는 문제 행동들을 하는 것은 절대로 하면 안 된다' 등 지적한 많은 내용이 편집하는 과정에서 부득이하게 포함되지 못해 제가 마치 아동 성추행을 방임하는 사람처럼 비친 것에 대해 대단히 처참한 심정"이라고 토로했다. 이번 논란으로 상담 프로그램의 한계가 여실히 드러난 만큼 방송사들이 그 순기능을 살릴 수 있도록 시스템을 정비해야 한다는 목소리가 나오고 있다. 한석현 YMCA 시민중계실 실장은 "한 명의 전문가에게만 의존하지 말고 다양한 분야의 전문가를 두루 섭외해 제작 과정이나 방송 후 발생하는 문제점 등을 더 전문적으로 살펴야 한다"고 제안했다. MBC는 프로그램 정비를 이유로 내년 1월 2일까지 '결혼지옥'을 2주 결방한다.

양승준 기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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