이 아이는 조금 예민한 성격이라 좀 조심스럽게 대해줘야 해요.
우리동생 동물병원 김희진 원장은 반려견 ‘뭉이’(10)에 대해 묻자 이렇게 답했습니다. 병원을 다소 무서워하는 뭉이의 성격 탓에 가끔 입질도 할 때도 있다고 하네요. 그래서 뭉이는 진료실에 들어가기 전에 넥카라를 할 때도 있다고 합니다.
물론 그럼에도 불구하고 뭉이는 진료실에 꼭 들어가야 합니다. 열 살이 되도록 익숙해지지 못한 주사도 꼭 맞아야만 하죠. 김 원장이 설명한 뭉이의 별명은 ‘부신피질기능저하증’. 소위 애디슨병이라고 불리는 이 질병은 쿠싱 증후군과는 반대로 호르몬이 제대로 분비되지 않아 무기력해지는 질병입니다. 김 원장은 “증상에 따라 약만 먹어도 되고, 주사를 맞아야 하는 경우도 있는데 뭉이의 경우는 5~6주에 한 번씩 주사를 맞아야 되는 상태”라고 설명했습니다.
뭉이의 보호자 박태이 씨는 “그나마 요즘은 많이 양호한 편이라, 진료대에 올라가면 입질을 하기보다는 내게 안기려고 한다”고 말했습니다. 나잇값을 못 하고 엄살을 부린다고, 이제 노견으로 접어든 만큼 어느 정도 무던해질 수도 있지 않겠느냐고 생각할 수도 있습니다. 그러나 태이 씨는 뭉이의 그런 모습을 모두 받아들이고 있다고 말했습니다.
어느 날 갑자기 내 삶에 들어온 강아지..
질병 소식에 눈물이 펑펑
뭉이가 태이 씨의 곁에 온 날은 지금으로부터 10년 전인 2012년 9월이었습니다. 여느 때와 다름없이 일을 하고 있던 태이 씨에게 동생으로부터 사진 한 장이 날아왔습니다. 사진 속에 담겨 있는 것은 작은 강아지 한 마리. 갑작스러운 강아지 사진에 놀란 그는 동생에게 “이게 웬 강아지야?”라고 물었습니다. 질문에 돌아온 대답은 “우리 집에 강아지 생겼다”였습니다.
집에 돌아가 자초지종을 들었습니다. 태이 씨의 어머니가 아는 사람으로부터 강아지를 얻어온 거였습니다. 태어난 지 이제 막 1개월밖에 되지 않은 뭉이를 보며 태이 씨는 당황스러운 마음을 감추지 못했습니다. 그는 “강아지를 키우고 싶다, 이런 생각을 해본 적이 없었기 때문에 너무 갑작스러웠다”며 당시를 돌아봤습니다. 그러나 아장아장 걷는 뭉이의 모습을 보며 태이 씨의 마음 한편에는 ‘귀엽다’는 생각이 자리 잡기 시작했습니다.
그렇게 마음이 끌리더니 어느새, 뭉이를 돌보는 일은 태이 씨의 몫이 되었습니다. 동생과 함께 키우긴 했지만, 뭉이를 위한 양육비는 직장에 다니고 있는 태이 씨의 몫이었습니다. 그는 “뭉이 사료와 간식, 용품은 내가 감당해야 했다”며 “그래도 개에 대해서는 아는 게 거의 없어서 인터넷을 찾아가면서 챙겨야 했다”고 10년 전을 떠올렸습니다.
강아지들은 건사료를 그냥 주는 것보다는 물에 불려서 소화하기 쉽게 줘야 한다고 하잖아요. 10년 전엔 그것조차 모르고 대책 없이 강아지를 키웠던 거죠.
그래도 그럭저럭 뭉이는 잘 자라주었고, 태이 씨도 점점 반려인으로서 경험을 쌓아가고 있었습니다. 그런데, 그로부터 5년이 흐른 2017년, 태이 씨가 잠시 여행을 다녀오고 나서 본 뭉이의 상태가 심상치 않았습니다. 갑자기 몸을 부들부들 떠는 뭉이를 이상하게 여긴 태이 씨는 동생에게 상태를 물었지만, “안 그랬었는데.. 잘 모르겠다”는 답만 돌아왔습니다. 잠깐 그러는 일이겠거니 하고 하루를 넘겼지만, 뭉이의 상태는 더욱 심해졌습니다.
결국 다음날 아침, 출근길에 뭉이를 집 근처 동물병원에 맡기고 태이 씨는 회사에 나가 업무를 보고 있었습니다. 그렇게 점심시간이 지나 태이 씨에게 전화 한 통이 걸려왔습니다. “동물병원인데요, 뭉이의 신장이 별로 좋지 않은 것 같아요. 탈수 증상이 심하네요.” 놀란 태이 씨는 인터넷에 ‘강아지 신장병’을 검색해 나갔습니다. 그는 “그땐 일이 손에 잡히지 않았고, 눈물만 쏟아졌던 것 같았다”고 회상했습니다.
질병 조기 대처한 ‘고수의 눈썰미’는 계속된다
불행 중 다행이었습니다. 뭉이는 신부전이 아니라 애디슨병이라는 진단이 내려진 것이죠. 호르몬이 분비되지 않아서 생긴 질병인 만큼, 약물 처치 외에는 특별한 치료가 필요하지 않았습니다. 가슴을 쓸어내린 태이 씨는 뭉이를 데리러 동물병원으로 향했습니다. 힘없이 병원 치료실에 누워 있던 뭉이는 태이 씨를 보자마자 꼬리를 힘겹게 흔들기 시작했습니다. 태이 씨는 그날 동물병원에서 자신에 대한 뭉이의 마음을 확인했다고 합니다.
그날 뭉이를 진료한 수의사 선생님에게 말했어요. ‘얘가 저만 보면 몸을 그렇게 떨어요.’라고 하자, 선생님이 ‘얘가 보호자님을 믿고 따르는 것 같네요’라고 답한 거예요. 보통 개들은 아파도 증상을 숨기는데, 저를 믿고 자신의 증상을 보여주는 거라고요.
뭉이가 자신의 증상을 태이 씨에게만 보여준 점도 있지만, 그 증상의 이상함을 알아채는 눈썰미도 중요했습니다. 김희진 원장은 “사실 뭉이나 다른 애디슨병을 앓는 반려견들의 증상이 특이한 것은 아니다”라며 “그래서 안 좋아질 때까지 방치하게 되는 경우가 많은 질병이기도 하다”라고 설명했습니다. 그만큼 초기에 질병을 찾아내는 게 중요하다는 뜻이죠.
이런 태이 씨의 눈썰미와 세세한 관심은 진단 이후에도 이어졌습니다. 그는 “부끄러운 얘기지만, 어릴 때 사회성 교육의 중요성을 잘 몰라 뭉이가 병원 스트레스가 좀 있고, 다소 예민한 성격”이라면서 “병원에 다녀오거나, 목욕 등 스트레스가 생길 일이 생기면 상비약을 따로 챙겨둔다”고 말했습니다. 뭉이가 호르몬 질병을 앓는 만큼 일상에서 호르몬에 영향을 끼칠 수 있는 일들을 모두 상정해두고 동물병원과 항상 상의하고 조언을 구하고 있다는 뜻이죠.
김 원장은 “쿠싱이나 애디슨병 등을 앓고 있는 반려견의 경우 제일 중요한 건 꾸준함”이라고 강조합니다. 특별히 관리할 것은 없지만, 상태가 조금 괜찮아졌다고 투약을 소홀히 하거나 병원을 덜 찾으면 몸의 항상성이 깨진다는 의미입니다. 그는 “당장 위험한 무언가가 없어 보일 수도 있지만, 결국 보호자의 선택으로 강아지의 수명이 단축될 수도 있다”고 당부했습니다.
뭉이는 이제 10세입니다. 태이 씨처럼 병원을 가까이하는 보호자와 함께 살고 있는 만큼 앞으로 살아갈 날도 훨씬 많겠죠. 남은 뭉이의 견생을, 태이 씨는 어떻게 돌봐주고 싶을까요?
뭉이가 사회성이 썩 좋은 편이 아니에요. 그래서 같이 멀리 여행을 가더라도 밖에서 시간을 오래 보내지는 못하거든요. 그래서 조금씩 천천히, 밖으로 나가는 시간을 늘려주고 싶어요. 언젠가 뭉이가 앞이 안 보이고, 못 걷고, 귀가 안 들려도 여행을 가는데 전혀 무리가 없게끔요. 그게 저를 믿고 있는 뭉이를 위해서 해줄 수 있는 최선인 것 같아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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