지난 22일, 서울 여의도 국회의사당은 ‘수의과대학’을 놓고 두 갈래로 나뉘었습니다. 수의사 직능단체인 대한수의사회는 국회 밖에서, 부산대학교는 국회 안에서 각각 자신들의 주장을 내놓았습니다.
갈등의 씨앗은 지난 10월 싹을 틔웠습니다. 당시 부산대는 교육부에 정식으로 수의대 설립 신청서를 제출했습니다. 그리고 지난 14일에는 부산대 대학본부 3층 대회의실에서 ‘수의과대학 설립 심포지움 및 교내 설명회’를 개최하며 수의대 설립 필요성을 역설했습니다. 이어 22일 부산 지역구 국회의원들이 주최하는 ‘부산지역 거점대학 수의과대학 설립과 수의사 양성의 필요성 정책토론회’에 참석했습니다.
수의대 추가 설립을 반대하는 대한수의사회도 적극적인 맞대응에 나섰습니다. 이들은 15일 경기 성남시 수의과학회관에서 열린 기자간담회를 통해 부산대 입장에 반박했습니다. 대한수의사회 허주형 회장은 이 자리에서 “부산대의 수의대 설치는 인기 학과를 유치하는 것 이외에 어떤 명분도 없다”며 “차정인 부산대 총장 개인의 정치적인 욕심으로 추진하는 수의대 설치는 즉각 중단해야 한다”고 강력히 비판했습니다. 토론회 날짜에 맞춰 열린 장외집회에 참석한 약 1,000여명(주최 측 추산)의 수의사, 수의대생들은 결의문을 통해 “부산대 수의대 신설을 결코 좌시하지 않을 것이며, 계속 추진되면 강력히 저지할 것”이라고 밝혔습니다.
수의대 신설을 놓고 양 측의 갈등은 점점 심화되고 있습니다. 그렇다면 수의사 단체는 왜 수의대가 더 설치되는 것을 원하지 않을까요? 부산대는 무엇 때문에 수의과대학을 세우기 위해 애를 쓰고 있을까요? 이번 갈등의 쟁점을 크게 2개로 나눠서 정리해봤습니다.
쟁점 ① “수의사 공급과잉” vs “미래 수요까지 감안”
대한수의사회는 현재도 수의사는 과잉 배출된 상태라는 입장입니다. 대한수의사회에 따르면 현재 국내 수의사는 총 2만1,000명 수준입니다. 또한 농림축산식품부가 2020년 실시한 ‘동물복지에 대한 국민인식조사’에 따르면 반려동물은 약 860만 마리입니다. 반면 미국은 수의사 12만명인데, 반려동물은 1억3,500만 마리입니다. 한국과 수의사 수가 비슷한 영국(2만5,000명)의 반려동물은 2,500만 마리입니다. 즉, 주요 선진국에 비해 한국에서는 수의사가 많이 배출된 편이라는 뜻입니다. 게다가 대한수의사회는 2만1,000명 중 1만4,000여명이 91년 이후 배출돼 상대적으로 젊은 수의사들이 많아 은퇴 등 자연 감소도 적다고 덧붙였습니다.
부산대 주장에 대해서도 반박했습니다. 부산대는 지역별로 인구 10만 명당 수의사 수는 전국 평균 22.31명인데 비해 부산은 13.06명으로 전국 광역 지방자치단체 중 16위 수준이라며 수의대의 필요성을 강조한 바 있습니다. 이 주장에 대해 대한수의사회에 묻자 허 회장은 “부산 지역에는 농장이 많지 않아 상대적으로 수의사 수요가 적은 편”이라고 답했습니다.
농장동물의 수요가 적은 만큼 대한수의사회는 반려동물 관련 통계를 내밀었습니다. 대한수의사회가 2020년 통계청의 인구주택총조사 자료를 토대로 만든 ‘광역시 반려동물 양육가구 대비 동물병원 수’를 보면 부산지역 동물병원은 271개소이며 반려동물 양육 가구는 약 18만4,000가구였습니다. 규모가 비슷한 인천시의 경우 동물병원은 227개소, 반려 가구는 오히려 부산시보다 많은 19만4,000여 가구였습니다. 대한수의사회는 이 자료를 근거로 부산지역만 수의사가 부족하다는 주장은 사실과 다르다고 주장했습니다.
이 주장에 대해 부산대 측의 입장도 직접 들어봤습니다. 부산대 관계자는 “서로 다른 통계자료를 말하고 있어 직접 비교하긴 곤란하다”면서도 “서울시, 경기도와 맞닿아 있는 인천시와 부산시는 상황이 다소 다르다”라고 지적했습니다. 인천시의 경우 서울시나 경기도에 있는 동물병원으로 가서 진료를 받기 용이하지만 부산시 거주 반려 가구는 부산 내에서만 진료가 가능하다는 뜻이죠.
또한 부산대는 미래 수요를 고려했을 때, 꼭 수의사가 과잉 공급됐다고 보기 어렵다는 입장입니다. 강동묵 부산대 의무부총장은 동그람이와의 통화에서 내년 4월부터 개정될 동물보호법을 언급했습니다. 개정 동물보호법에 따르면 동물실험을 진행하는 연구시설은 수의사를 반드시 고용해야 합니다. 강 부총장은 이 점을 언급하며 “부산대 수의대가 개설되고 입학생이 졸업해 수의사가 되기까지 약 10년 가까운 시간이 필요하다”며 “10년 뒤에 수의사 수요가 늘 것을 내다보고 국가 정책을 추진하자고 말하는 것”이라고 설명했습니다.
그러나 대학을 졸업한 뒤 현업에 나설 수의대생 입장은 다릅니다. 이진환 대한수의과대학학생회장은 동그람이에 "공적인 수요가 늘어날 것이라는 점은 인정하지만, 여건이 개선되지 않으면 그 분야로 수의대생이 진출할지 회의적"이라며 "최근까지 수의대에 진학한 학생 1,000여명에게 진로를 물었을 때 약 60% 정도는 반려동물 임상 수의사를 희망한다"고 말했습니다. 이 회장은 "학생들 상당수는 애초에 수의대를 진학할 때부터 반려동물 수의사로 진로를 정하고 들어올 만큼 가치관이 확고한 편"이라며 부산대에 수의대가 생긴다 하더라도 학생들의 생각을 바꾸기는 어려울 것이라고 내다봤습니다.
쟁점 ② “수의사 진로 어떻게 강제하나” vs “다양한 진출 유도하는 방법 마련할 것”
부산대는 수의대 설립 목적을 ‘국가 의생명 산업 활성화’, ‘방역체계 고도화’, ‘수의전문 인력 불균형 해소’ 등을 내세우고 있습니다. 부산대 관계자는 “현재 부산대는 의생명 관련 학과들이 모두 있지만 수의과대학만 없다”며 “융합 학문을 연구하려면 해양바이오 등 동물실험을 하기 위해서는 수의학이 필수인 분야들이 있다”며 필요성을 강조하고 있습니다. 또한 인수공통전염병, 가축전염병 연구 및 관리는 국가 보건의 중요한 이슈인 만큼 이 문제를 해결하기 위해서라도 수의과대학을 설립하는 게 필요하다고 덧붙였습니다.
그러나 대한수의사회는 부산대가 내세운 명분도 실상과는 맞지 않다고 말합니다. 부산대 수의대를 졸업한 수의사가 부산대가 내세운 산업계로 근무하는 것을 강제할 수는 없다는 뜻입니다. 내년부터 한국돼지수의사회 회장을 맡게 될 예정인 최종영 수의사는 "부산대의 주장은 현실을 모르고 하는 소리"라며 "농장동물이나 수의직 공무원 등을 선택하지 않는 이유는 일은 많이 하는데 처우가 열악하기 때문"이라고 강조했습니다. 최 수의사는 "수의사는 많은데 인력 수급이 불균형한 상태라 일부 가축 수의사들만 고강도 노동을 계속하고 있다면, 국가에서는 인력을 재분배하는 게 먼저지 수의대를 신설하는 게 우선순위냐"며 목소리를 높였습니다.
부산대 역시 수의사들이 말한 원인에 대해서는 공감하고 있습니다. 다만 구조를 개선하는 것과 미래의 수요를 대비하는 일은 별개로 봐야 한다는 입장입니다. 부산대 관계자는 “수의사가 해야 할 공적인 영역이 있음에도 그 분야를 선택하지 않는 게 문제라면 그 길을 만들어주는 게 우선”이라며 “우리는 반려동물 임상보다는 현재 공적인 분야에서 부족한 부분을 보완하는 역할을 하고자 한다”고 말했습니다. 강 부총장 역시 “우리가 교육부에 제시한 수의대 커리큘럼은 공적 역할을 하도록 구성돼 있다”며 “앞으로 지방거점국립대 총장 협의회를 통해 수의 공무원이나 방역관들의 처우 개선과 관련된 정책 건의를 하고, 정부 유관기관을 설득해 산업동물 질병관리센터 등을 설립하도록 하는 노력을 해 끊임없이 수의사들이 공적인 역할을 하도록 유도하겠다”고 전했습니다.
그러나 수의대 교육 현장의 목소리는 다릅니다. 서울대 수의과대학 황철용 교수는 22일 자신의 사회관계망서비스(SNS)를 통해 "서울대 수의과대학의 1년 예산과 교수 인력 등 기본 인프라는 일본 도쿄대 수의과대학보다 열악하다"며 "이는 높은 수준의 수의사 역량을 요구하는 우리 사회의 요구와 바람과는 배치되는 상황"이라며 지금은 수의과대학 신설보다는 열악한 기존 수의과대학의 교육이 보다 정상적으로 운영될 수 있도록 충분히 지원하고 투자하는 게 더 바람직하다고 지적했습니다.
미국에서 임상 경험을 갖춘 A 수의사는 이 사안에 대해 “미국이나 영국은 분명 수의사가 부족해 한국과는 사정이 다르다”면서 “부산대가 수의대를 설치할 만큼 수의사를 더 양성할 이유는 없는 듯하다”고 설명했습니다. 다만, 그럼에도 불구하고 그는 “대한수의사회의 주장이 설득력을 얻지 못하는 이유는, 그동안 방역과 같은 공적인 분야에서 제 역할을 하기보다 이익집단으로서의 성격만 부각됐기 때문”이라며 “타협과 조율을 통해 구조적인 문제를 개선하려는 노력을 했다면 수의사들의 주장도 일반 시민들이 경청했을 것”이라고 밝혔습니다.
부산대의 수의대 설립 요청은 교육부와 수의사 면허를 관리하는 농림축산식품부와의 협의를 통해 결정됩니다. 현재 조직개편 중인 농림축산식품부는 아직 교육부로부터 실무 논의 요청이 도착하지 않은 상태라고 전했습니다. 강경한 대한수의사회의 입장에 대해 부산대 측의 입장을 묻자 강 부총장은 “심포지움에 참석한 이영락 부산시수의사회장께 총장님이 ‘수의사 처우 개선을 위해 같이 노력해 보자’고 말씀하셨고, 대화의 장은 언제든 열려 있다는 입장도 전했다”며 “지속적으로 협의하고 발전한 방향을 찾았으면 한다”고 밝혔습니다. 다만, 여전히 두 집단 사이에 엇갈리는 주장들이 많은 만큼 정부 부처와 정치권에서 서로의 입장을 경청하고 갈등을 중재하는 역할에 나서야 할 듯합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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