대통령이 지목한 유명 앵커 암살 시도에
언론인 180명, 이례적 공개서한 발표
'대통령이 공개 비판한 언론인은 테러의 대상이 된다?'
언론인을 향한 폭력 사건이 가장 많이 일어나는 멕시코 얘기다. 최근에도 안드레스 마누엘 로페스 오브라도르 멕시코 대통령이 공개 비판한 유명 TV 뉴스 앵커가 피살될 뻔하자 온 나라가 충격에 빠졌다. "대통령은 언론인 테러를 부추기는 혐오 선동을 멈추라"는 비판이 잇따랐다.
유명 앵커 피살 위협에 멕시코 '충격'
21일(현지시간) 미국 뉴욕타임스(NYT)에 따르면 멕시코 지상파 방송사인 이마헨 텔레비시온 메인 뉴스 앵커인 치로 고메즈 레이바(65)는 지난 15일 오후 11시쯤 멕시코시티에서 귀가하던 중 괴한의 공격을 받았다.
오토바이를 탄 무장 괴한들은 달리는 그의 차를 세우고, 그에게 총을 쐈다. 방탄 처리된 유리창 덕분에 고메즈는 무사했지만, 현지 언론과 국민들이 받은 충격은 어느 때보다 컸다. 그는 멕시코인이라면 모르는 사람이 없는 유명 인사다.
누가, 어떤 동기로 범행을 저질렀는지 밝혀진 건 없다. 다만 그가 총격을 받기 전날인 14일 로페스 오브라도르 대통령이 기자회견에서 고메즈의 이름을 언급했다고 영국 가디언이 보도했다.
취임 이후 매일 기자회견을 열고 있는 로페스 오브라도르 대통령은 일주일에 한 번씩 '이번 주의 거짓말'을 선정해 발표하고 있다. 비판적 언론 보도와 기자에 대해 공개 반박하는 식이다.
특히 자신이 싫어하는 특정 기자들의 이름을 계속 언급해 망신을 주고, 독립 언론 전반에 대한 신뢰성에도 의문을 제기해왔다고 NYT는 전했다. 당연히 "비판 언론에 재갈을 물리려는 시도"라는 반발이 거셌지만 로페스 오브라도르 대통령은 "가짜뉴스를 막기 위한 조치"라며 멈추지 않았다.
42명 피살… 기자들이 피의 대가 치렀다
로페스 오브라도르 대통령의 재임 중 피살된 언론인은 42명에 달한다. 비영리단체 '언론인보호위원회'에 따르면 그가 취임한 2018년 12월 이후 언론인에 대한 폭력사건은 85% 늘었다.
현지 언론은 고메즈 암살 시도를 비롯한 언론인 살해의 배경에 로페스 오브라도르 대통령이 있다고 비난하고 있다. 멕시코에선 마약 등 범죄조직이나 정치인 비리 관련 보도를 하던 언론인이 살해당하는 경우가 꽤 있지만 그의 취임 이후 더욱 악화됐다는 것이다.
멕시코 유력 언론인 △엘우니베르살 △엑셀시오르지 △밀레니오 △레포르마 등 소속 기자 180명은 이날 공개서한을 통해 "언론인에 대한 모든 혐오 표현이 대통령궁에서 배양돼 태어나고, 퍼진다"며 "대통령이 비판적 언론인에 대한 분노의 충동을 제어하지 않는다면 이 나라는 더 피비린내 나는 단계에 들어갈 것"이라고 우려했다. 대통령이 나서 언론에 대한 노골적 적대감을 드러내면서 기자들이 '피의 대가'를 치르고 있다는 지적이다.
안 그래도 마약 밀매 조직 등으로부터 공격을 받아온 멕시코 언론계는 이번 사건으로 망연자실한 분위기다. 대통령을 함부로 비난했다가는 그 누구라도 테러의 대상이 될 수 있다는 것이 증명됐기 때문이다.
멕시코 마약 조직 보도로 유명한 시사잡지 제타의 아델라 나바로 벨로 국장은 "현재 멕시코 언론은 마약 밀매범과 조직범죄의 위협과 총알, 그리고 도덕적으로 우리를 몰살시키려는 정부의 시도 사이에서 십자포화를 맞고 있다"고 영국 가디언에 말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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