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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내 정신적 피해가 겨우 이 정도?" 쥐꼬리 위자료에 우는 범죄 피해자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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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내 정신적 피해가 겨우 이 정도?" 쥐꼬리 위자료에 우는 범죄 피해자들

입력
2023.01.09 04:00
6면
0 0

정신적 손해 금전 배상 '위자료'
"위자료 인정액 현실적이지 않다"
과거·외국 현황 비교해도 적은 편
강제추행≒이혼?... 형평성 지적도
"법원도 선례 따라가며 제자리"
"위자료 증액하고 기준표 만들어야"

법원 로고(왼쪽)와 자물쇠에 묶인 돈다발. 한국일보 자료사진·게티이미지뱅크

법원 로고(왼쪽)와 자물쇠에 묶인 돈다발. 한국일보 자료사진·게티이미지뱅크

A씨는 2020년 7월 성추행을 당한 뒤 공황장애와 우울증을 겪으며 극단적 선택까지 시도했다. 가해자에게는 징역 2년 6개월 처벌이 내려졌지만, A씨의 정신적 고통에 따른 배상금(위자료)은 2,750만 원에 불과했다. 법원이 A씨가 청구한 위자료의 27%만 인정했기 때문이다.

타이어 공장에서 20여 년간 근무한 B씨는 2018년 골수병으로 사망했다. 법원은 회사에 "발암물질인 벤젠 노출에 대한 안전 조치를 하지 않았다"며 사망 위자료 지급을 인정했지만, B씨 측이 청구한 금액의 30%인 3,000만 원으로 결정했다.

A씨와 B씨는 청구한 금액보다 훨씬 적은 위자료를 받게 됐지만, 법원에서 위자료 책정 과정과 이유에 대한 구체적 설명은 듣지 못했다.

불법행위에 따른 재산상 손해 이외에 정신적 고통을 배상하는 위자료가 지나치게 비현실적이란 지적이 제기되고 있다. 경제 성장과 사회 변화를 반영하지 못하고 있는 데다, 외국과 비교해도 형평성에 문제가 있기 때문이다. 법조인들은 "법원이 위자료 책정 기준을 구체적으로 만들고 액수도 현실화해야 한다"고 입을 모은다.

많아봤자 1억... "위자료 적어 청구도 크게 못해"

법원 위자료 연구반이 제작한 '불법행위별 적정한 위자료 산정 방안' 캡처

법원 위자료 연구반이 제작한 '불법행위별 적정한 위자료 산정 방안' 캡처

위자료는 판사가 △구체적 사실 관계 △피해로 인한 고통 △과실 여부 등을 종합해 결정한다. 교통사고와 산업재해 등으로 다쳤다면 노동 능력을 얼마나 상실했는지도 위자료에 반영한다.

법원에선 통상 '1억 원'을 위자료 책정의 기준금액으로 권고한다. 1억 원은 '100% 가해자 과실로 인한 교통사고 사망'의 상한액이다. 이를 기준으로 △명예훼손 5,000만 원 △대형재난사고 2억 원으로 권고하고, 고의성 등이 입증되면 기준금액의 2배를 책정한다.

국가 폭력으로 인한 중대한 인권침해 사건은 위자료 액수가 커진다. 지난해 낙동강변 살인사건과 화성 연쇄살인 사건 가해자로 몰려 억울한 옥살이를 한 피해자들은 40억 원의 위자료를 인정받았다.

하지만 일반인들이 접하는 대부분 사건의 위자료는 매우 낮은 수준에서 결정된다. 한국일보가 최근 2년간 △교통사고 △산업재해 △성폭력 △아동학대 △직장 내 괴롭힘 등 무작위로 선정한 위자료 관련 확정 판결문 106건을 분석한 결과, 위자료 1억 원을 넘긴 판결(6세 여아 성적 학대)은 한 건에 불과했고, 5,000만 원 이하 판결은 89건(84%)에 달했다. 피해자가 청구한 위자료 금액이 그대로 인정된 판결은 7건에 불과했다.

과거·외국과 비교해도 낮아... 형평성도 문제

서울대 산학협력단이 2013년 발표한 위자료 적정성에 관한 연구 캡처. 한국은 사지마비에 대한 위자료를 현재 1억 원으로 올렸다.

서울대 산학협력단이 2013년 발표한 위자료 적정성에 관한 연구 캡처. 한국은 사지마비에 대한 위자료를 현재 1억 원으로 올렸다.

전문가들은 위자료 기준액 '1억 원'이 너무 적다고 지적한다. 서울대 산학협력단은 2013년 발간한 '위자료 산정의 적정성에 관한 연구'에서 "전체 위자료 수준은 사망 등에 대한 위자료 상한액으로 결정되고, 이는 1990년 2,000만 원에서 2013년 8,000만 원으로 증액됐다"고 밝혔다. 현재 상한액 기준이 1억 원인 걸 감안하면 10년 전(2013년)과 비교해 고작 2,000만 원 오른 셈이다. 국내총생산이 30년간 10배 넘게 오르는 동안 위자료는 5배 증액에 그쳤다.

외국과 비교해도 위자료 액수는 턱없이 적다. 산학협력단 보고서에 따르면 2013년 한국의 사지마비 위자료 상한액은 8,000만 원(현재는 1억 원)이었는데, 경제 규모가 비슷한 이탈리아(15억 원) 등 외국 국가는 이보다 3~90배 많았다. 수도권법원의 한 부장판사는 "외국에선 '인생을 평생 돈에 저당잡히니 나쁜 짓 하지 마라'는 '제재적 성격'까지 위자료에 반영하지만, 한국은 그렇지 않다"고 설명했다.

적은 위자료는 형평성 문제로도 이어진다. 교통사고의 경우 다치지 않았다면 벌었을 경제적 손해 배상금이 별도로 책정되지만, 정신적 고통에 따른 위자료가 대부분을 차지하는 성폭력 사건은 2,000만~5,000만 원 정도가 대부분이다. 성폭력 사건 피해자를 다수 대리한 한 변호사는 "의뢰인에게 실무 사례를 토대로 위자료 액수를 말하면 '내 고통이 이정도밖에 안 되느냐'며 소송을 포기하는 분들도 많다"고 전했다.

그래픽=김대훈 기자

그래픽=김대훈 기자


"위자료 증액하고 기준표 만들어야"

게티이미지뱅크

게티이미지뱅크

법조계에선 위자료 액수가 현실적이지 않다는 목소리에 귀 기울여야 한다고 지적한다. 재판부가 별다른 고민 없이 '1억 원'을 기준으로 기계적 결정을 내리고 있는 것은 아닌지 되돌아봐야 한다는 것이다. 부장판사 출신의 한 변호사는 "판사들이 적절한 위자료 액수에 대한 진지한 고민보다는 선례를 따르고 있다"며 "위자료는 판사에게 주된 연구 대상도 아니다"라고 말했다. 하급심의 잘못된 판단을 잡아주는 역할을 해야 할 대법원 역시 위자료 책정을 이유로 판결을 파기하는 경우는 거의 없다.

법조인들은 위자료 연구 결과를 토대로 법원이 증액 방법을 고심해야 한다고 입을 모은다. 수도권법원의 한 부장판사는 "경제 지표뿐 아니라, 인격의 가치를 중요하게 여기는 사회 분위기를 위자료에 반영해야 한다"며 "불법행위로 인해 잃어버린 즐거움 등을 위자료에 반영하는 외국 사례도 참조할 만하다"고 밝혔다.

형사재판의 양형기준처럼 '위자료 기준표'를 만들고 정기적으로 수정·보완해야 한다는 제언도 나온다. 이창현 서강대 법학전문대학원 교수는 "불법행위 유형별로 위자료를 비교하고, 가중·감경인자를 만들어 공개해야 형평성 문제가 해소되고 판결 예측력을 높일 수 있다"고 밝혔다.

법원은 위자료를 현실화해야 한다는 지적에 대해 신중한 입장이다. 법원행정처 관계자는 "구체적인 위자료 산정 방식은 재판부 판단사항"이라며 "액수를 일괄적으로 대폭 올리면 법적 안정성이 저해될 수도 있다"고 밝혔다.

박준규 기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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