미 최대 쇼핑몰, 첫 아시아계 산타 등장
산타 백인 확증 없지만 이미지 고착화
고정관념 깨는 산타 등장, 갈 길은 멀어
#미국 메릴랜드주 흑인 밀집 지역 옥슨힐에 거주하는 에드위나 워커는 크리스마스를 앞두고 어린 자녀에게 비슷한 외형의 산타클로스를 만나게 해주기로 했다. 그러나 집 근처를 아무리 살펴도 흑인 산타는 찾을 수 없었다. 몇 날 며칠을 수소문하고 사회관계망서비스(SNS)까지 뒤진 후에야 이웃 도시 컬럼비아의 한 대형 쇼핑몰에 흑인 산타가 온다는 소식을 들었다. 차로 한 시간을 달려 흑인 산타를 만난 워커는 미국 워싱턴포스트(WP)에 “중요한 인물(산타)이 너무 오랜 기간 단 하나의 인종, 백인 차지였다”고 말했다.
희고 풍성한 수염과 푸른 눈동자 그리고 한껏 나온 배를 빨간 옷으로 가린 백인 남성. ‘산타’ 하면 대중적으로 떠오르는 이미지다. 그러나 미국 내에서는 워커처럼 다양한 인종의 산타를 찾으려는 움직임이 해마다 거세지고 있다.
’진일보 산타’ 나타난다
가장 발 빠르게 움직인 건 흑인 커뮤니티다. 많은 흑인 부모들이 ‘흑인 산타’ 찾기에 나서면서 페이스북에 ‘흑인 산타 찾기’ 페이지까지 만들어졌을 정도다. 지난해에는 미국 놀이동산 디즈니랜드에서도 66년 역사상 처음으로 흑인 산타가 등장했다. 흑인 산타 수요가 높은 까닭에 연휴철 6만 달러(약 7,700만 원) 가까운 수익을 올리는 사례도 있다고 외신들은 전했다.
전 세계 인구의 60%, 미국인의 7% 안팎을 차지하는 아시아인을 겨냥한 산타도 나왔다. 미국에서 가장 큰 쇼핑몰 ‘몰오브아메리카(MOA)’는 올해 처음으로 아시안 산타를 정식 고용했다. 이 매장은 2016년, 개장 후 24년 만에 처음 흑인 산타를 등장시키면서 찬사와 비난을 동시에 받았는데, 6년 만에 광둥어를 사용하는 황인종 산타까지 등장시켰다.
인종을 뛰어넘어 소수자 문제로까지 외연을 넓힐 조짐도 보인다. 현재 미국 케이블채널 HBO가 방영 중인 다큐멘터리 ‘산타 캠프’에는 유색인종 산타 외에도 트랜스젠더 산타, 장애인 산타가 등장한다.
미 CNN방송은 “이번 크리스마스에는 더 진일보(woke) 산타를 만나게 될지 모른다”며 “부인이 집에서 쿠키를 굽는 동안 일하러 나가는 ‘백인 이성애자’라는 전통적 정의가 더 이상 통하지 않을 것”이라고 꼬집었다. woke는 최근 미국 사회에서 젠더, 인종, 성소수자 등 문제에 의식을 갖고 행동하는 ‘깨어 있는’ 상태를 의미한다.
사회적, 문화적 다양성 인정
사실 누구도 산타가 백인이라고 정의 내린 적은 없다. 산타는 3, 4세기 지금의 터키 지역에서 많은 선행을 베풀었던 기독교 성직자 성 니콜라스 설화에서 유래됐다. 2014년 영국 리버풀 존무어대가 복원한 성 니콜라스 얼굴은 구릿빛 피부에 검은 눈을 가진 중동인의 얼굴에 가깝다. 다만 1930년대 코카콜라 광고를 통해 빨간 옷을 입고 호탕하게 웃는 백인 노인의 모습이 대중화하면서 ‘산타=백인’ 공식이 수십 년간 이어져 왔다.
이 때문에 다인종 국가인 미국에서도 대형 놀이동산, 쇼핑몰, 행사장 등 많은 사람이 찾는 공간에서는 유색인종 산타를 만나기 쉽지 않았다. 하지만 미국 내 유색 인종의 비율과 지위가 점점 높아지고 사회적 소수자 인권과 문화적 다양성을 인정해야 한다는 목소리도 커지면서 고정관념을 깨부수는 다양한 산타도 하나둘 나타나기 시작했다.
‘다양성 산타’ 출현이 미래 세대에게도 긍정적 영향을 미친다는 분석도 나온다. 유명 임상심리학자인 넥시아 해먼드 박사는 “자신과 닮은 모습의 산타를 본 소수 (인종 또는 성향) 어린이들의 자신감과 자존감이 높아질 수 있다”고 말했다.
다만 아직 갈 길은 멀다. 비(非)백인 산타를 받아들이지 못하는 이들도 많은 탓이다. 2020년에는 자신의 집 마당에 흑인 산타 조형물을 설치한 미국 남성이 인종차별주의자로부터 마을을 떠나라는 협박 편지를 받았다. 지금까지도 SNS에서는 ‘적절성’을 두고 갑론을박은 물론, 다양성을 인정하지 못하는 혐오 섞인 표현도 떠돌고 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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