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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바보야, 돈이 아니고 사람이야'

입력
2022.12.21 00:00
27면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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직원들과 함께 제철소를 돌아보고 있는 박태준(가운데) 전 포스코 명예회장. 포스코 제공

직원들과 함께 제철소를 돌아보고 있는 박태준(가운데) 전 포스코 명예회장. 포스코 제공

토법고로(土法高爐)는 대약진운동 시 마오쩌둥이 철을 생산하기 위해 흙으로 만들도록 한 작은 용광로인데, 모양은 마치 첨성대 같다. 천신만고 끝에 권좌에 오른 마오쩌둥은 철의 중요성을 깨달았다. 그런데, 고작 생각해낸 철 생산방법은 전국에 수많은 토법고로를 만들어 고철을 모으게 한 후 그것을 녹여서 철을 생산하는 것이었다.

그런데, 토법고로에서 생산한 철은 품질이 형편없을 뿐만 아니라, 고철 모으는데 동원된 1만여 명이 멀쩡한 농기구까지 모조리 녹여버렸기 때문에, 철을 만들어 농기구를 만들겠다는 목표를 거꾸로 채우는 바보 같은 결과를 가져온다. 할당량을 채우기 위한 것으로, 행정분야에서 지금도 발견되는 목표-수단 도치현상이다. 농사는 엉망이 되어 4,000만 명이 굶어 죽는데, 토법고로가 일조했다. 중국 제철산업은 이런 역사적 첫 단추를 잘못 끼워서 지금도 변변한 자동차 생산도 못한다. 토법고로라는 마오쩌둥의 잘못된 생각은 중국 경제를 낙후시키고 발전을 억누른 치명적인 원인이었다.

반면, 박정희 대통령이 1965년 박태준(호 청암)에게 '고속도로 건설은 내게 맡기고 제철소 건설을 하라'고 한 것은 묘수 중의 묘수였다. 대통령의 전권위임 친필 문서를 얻어낸 청암은 한편으로 돈과 기술을 마련하고, 다른 한편으로 파리떼 같은 부패세력과 싸우면서 건설을 추진한다. 1973년 공기업 포항제철(현 포스코)의 용광로에서 시뻘건 철이 나올 때, 3·1 운동에서와 같이 눈물로 범벅된 '만세'를 목청껏 부르는 모습이 가슴을 찡하게 한다.

12월 13일은 청암의 11주기였다. 세계 굴지 포스코의 역사에서 교훈을 얻어야 한다. 마오쩌둥이나 박 대통령 모두 철의 중요성은 인식했으나, 토법고로냐 현대식 제철소냐라는 방법론상의 차이가 있었다. 중국에 비해 자그마한 한반도의 박 대통령이 어떻게 제철소 건설이라는 방법론을 택하게 되었는지는 미스터리이다.

더 중요한 것은 '어떻게' 제철소를 짓느냐였다. 자본도 기술도 없는 상황에서 제철소를 만든 것은 순전히 청암의 추진력 덕분이었다. 정치가 '꿈'이라면, 행정은 꿈을 현실로 바꾸는 것이다. 청암은 정치인이라기보다 꿈을 실현시킨 훌륭한 행정인이었다. 청암은 목표-수단 도치나 탁상행정을 벗어나 성과 중심의 집행력을 발휘한다. 오늘날도 정치이념은 달라도 정치적 꿈을 실현시킬 행정이 중요하다는 교훈이다. 정치와 행정이라는 두 개의 수레바퀴가 삐걱대지 않고 잘 돌아가야 한다.

행정의 핵심은 '인사'이다. 박 대통령이 청암을 선택한 것은 그야말로 적재적소라는 인사행정의 원칙을 지킨 대표적 성공사례이다. 1978년 일본을 방문하여 제철소 건설에 도움을 요청한 덩샤오핑에게 요시히로 신일철 사장은 '중국에는 박태준 같은 사람이 없지 않느냐'라고 거절했다. 제철소는 돈이나 기술로 짓는 것이 아니고, 사람이 짓는다는 말이다.

청암 혼자서 포철의 신화를 만든 것이 아니다. 롬멜 장군과 같은 엄격한 카리스마지만, 인간미로 하나가 되어 일한 직원들이 있었기 때문에 가능했다. 정부도 사회도 돈이 아니라 사람이 문제이다. 무한한 잠재력을 가진 인간을 찾아내어 교육하고, 적재적소에 활용해야 성공할 수 있다. 1986년 유능한 과학자를 모셔서 포스텍을 만든 것도 청암의 철학 덕분이다. 인적자원에 대한 투자를 아끼지 말아야 한다는 교훈이다. 돈만을 좇는 바보들을 보고, 청암께서는 '바보들아, 돈이 아니고 사람이야'라고 할 것 같다.


임도빈 서울대 행정대학원 교수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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