16세 소년 기름 훔쳐 달아나다 총격
로마족 과잉진압 반복…'인종차별' 분노 폭발해
일주일 내 경찰 미결 구금 여부 결정
그리스 전역에서 경찰의 과잉 진압과 '인종차별'에 항의하는 대규모 시위가 벌어졌다. 16세 집시(로마족) 소년이 3만 원 상당의 기름을 훔치고 도주하다가 경찰의 총에 맞아 숨지자, 로마족은 물론 대학생들까지 들고일어난 것이다. 경찰서를 습격하는 등 시위 양상도 격해지고 있다. 소년을 향해 총을 쏜 경찰들에 대한 처벌 수위가 사태 향방을 가를 변수가 될 전망이다.
3만 원어치 기름 훔쳤다가…"로마족이라 죽였다"
13일(현지시간) AP통신과 그리스 이알티뉴스를 종합하면 그리스 테살로니키에서 경찰이 쏜 총에 맞아 중태에 빠졌던 16세 소년이 이날 오전 사망했다. 코스타스 프라굴리스라는 이름의 소년은 앞서 5일 테살로니키의 한 주유소에서 트럭에 20유로(약 2만7,000원)어치 기름을 채운 뒤 돈을 내지 않고 달아났다. 경찰관 4명은 그와 추격전을 벌인 끝에 머리에 총을 쐈다. 소년은 근처 병원으로 옮겨져 수술을 받았지만 깨어나지 못했다.
사망 소식이 전해지자 그리스 전역의 로마족 공동체는 폭발했다. 이날 밤 테살로니키에서만 2,500명 넘게 거리로 쏟아져나와 경찰의 과잉 진압을 규탄하는 시위를 벌였다. 이들은 "가스 때문이 아니다. 돈 때문도 아니다. 로마족이라 경찰이 총을 쐈다"는 구호를 외쳤다. 지역 대학생들도 합세해 "국가의 '16세 소년 살해'에 관용이나 은폐는 없어야 한다"고 주장했다. 시위대는 지역 경찰서에 화염병을 던지고 경찰은 최루탄을 쏘면서 충돌했다. 수도 아테네와 동남부 아스프로프리고스, 할키다 등에서도 비슷한 시위가 일어났다.
사태가 격화한 배경에는 경찰의 '인종차별적' 과격 대응이 있다. 그리스에선 최근 로마족이 경찰과 추격전을 벌이다 총에 맞아 숨지는 사건이 반복돼왔다. 지난해에도 아테네 인근 피레우스에서 15세 소년과 20세 남성이 차를 훔쳐 달아나다 경찰에 총격당했다. 공격 의도가 없는 단순 절도범이었기에 당시에도 과잉 진압이라는 비판이 일었다. 그리스 제1야당인 시리자당 대변인은 "더 이상 그리스 사회는 16세 미만 어린이의 목숨을 사소한 이유로 위협하는 경찰의 잔혹함을 참을 수 없다"고 맹비난했다.
'평정 유지' 부탁에도…"시위 계속"
정부 인사와 로마족 공동체 지도부는 사태 진정에 나섰다. 13일 마케도니아 중동부 지역 로마족 공동체 대표 파나기오티스 삼바니스는 "모든 로마족과 그리스인들이 평정을 유지해주길 부탁한다"고 말했다. 경찰을 관할하는 타키스 테오도리카코스 시민보호부 장관도 "16세 아이의 죽음에 깊은 슬픔을 전한다"며 "사법 체계를 통해 이 사건을 조사 중이니 이를 존중해 달라"고 요청했다. 하지만 일부 시위대는 14일에도 테살로니키 지방법원 앞에서 시위를 예고한 상태다.
사태의 향방은 총을 쏜 경찰의 미결 구금(재판 결과가 확정되지 않은 채로 피의자·피고인을 구금하는 것) 여부와 처벌 수위에 따라 달라질 것으로 보인다. 미국 ABC뉴스는 "프라굴리스의 가족과 로마족 공동체가 경찰관의 구금을 바라고 있다"고 전했다. 구금 여부는 일주일 내로 결정될 예정이다.
기사 URL이 복사되었습니다.
댓글0