노로오름 4·3유적 조사결과 공개
전투현장·피난민 유물들 대거 발견
추가 연구와 보전 방안 마련 시급
제주 4·3 당시 수많은 제주도민들이 피신한 한라산 중산간 일대에서 피난민들의 흔적과 함께 무장대와 군경토벌대 간 전투에서 사용됐던 유물들이 70여 년 만에 세상에 모습을 드러냈다.
15일 제주4·3기념사업위원회와 시민단체 '제주4·3 통일의 길 마중물'이 제주시 애월읍 노로오름 일대에서 진행한 제주4·3 유적지 조사 결과에 따르면 그동안 여러 증언과 소설에서 언급됐던 무장대와 군경토벌대의 전투 현장으로 추정되는 흔적이 다수 발견됐다.
한라산의 길목인 노로오름은 4·3 당시 군경의 탄압을 피해 산에 오를 수밖에 없었던 제주도민들이 머물렀던 곳이다. 여러 증언과 김석범 작가의 소설 '화산도'에 따르면 이 곳 산물내(川)에서는 무장대와 토벌대 간 전투도 있었다. 이번 조사에서도 실제 노로오름 산물내 전투지로 추정되는 곳에서는 큰 돌을 둥그렇게 쌓아 올린 매복 흔적들과 함께 1943년에 생산된 탄피와 나침반, 박격포 불발탄 등이 다수 발견됐다. 또한 노로오름 정상에 있는 면적 1만7,365㎡, 둘레 500m 크기의 분화구(일명 장태코)에서는 집터와 화장실, 우물터, 보초터 등 일정 정도 조직적 틀을 갖춘 집단 거주지의 흔적이 남아 있었다. 집터에서는 탄피 등 뿐 아니라 깨진 항아리 조각, 양철 물통 조각, 양은 그릇 등 많은 생활용품들도 출토됐다.
이번 조사는 제주 4·3당시 군경의 진압을 피해 중산간 지대로 피신한 이들의 흔적 등을 중심으로 2017년부터 올해 10월까지 총 171회에 걸쳐 진행됐으며, 특히 노로오름 일대를 중심으로 50차례에 걸쳐 집중 조사가 이뤄졌다. 조사 지역은 노로오름을 중심으로 △산물내 지역 △족은바리메, 안천이 지역 △노로오름 북서쪽 지역 △노로오름 북, 북동쪽 지역 △노로오름 분화구 및 주변 등 5개 지역으로 세분화했으며, 조사의 효율성을 위해 금속탐지기 등을 활용했다.
이번 조사를 진행한 배기철 4·3통일의길 마중물 조사단장은 “노로오름 지역은 태평양전쟁 말기 일본군 주둔지라는 역사적 현장으로서의 의미와 함께 4·3 당시 산에 올랐어야만 했던 제주사람들의 삶과 아픔을 들여다 볼 수 있는 흔적들이 많이 발견되고 있다”며 “이런 다양한 현장과 유물들은 사회, 역사, 문화적으로도 중요한 가치를 갖고 있다”고 밝혔다.
그는 이어 “이미 많은 시간이 흐른 상황에서 이들 유적들의 자취가 점점 희미해지고, 증언해줄 수 있는 사람들도 점차 줄어들고 있어 중요한 역사적 현장들과 자료들이 공공의 자산이 되지 못하고 영원히 묻혀버릴 우려가 크다”며 “개인이나 단체 또는 기관이 갖고 있는 구술자료, 증언채록 등을 통합적으로 데이터베이스화하고 공유하는 시스템을 갖춰 더 늦기 전에 그 사실들을 조사하고, 그에 따른 보전관리 방안을 마련하는 일들이 시급하다”고 강조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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