신간 '당신의 그림에 답할게요'
김연덕·안희연·오은 등 시인 8인
각자 친애하는 화가에 대한 산문
신간 '계속 태어나는 당신에게'
한 예술가를 향한 두 시인의 편지
시인은 언어를 불신하기에 끊임없이 매만진다. 결핍의 힘으로 펜을 든다. 좌절을 딛고 또 다른 실패를 만들면서도 멈추지 않음으로써 시를 완성한다. 언어만이 아니다. 색과 선, 소리와 몸짓 어느 하나 완벽할 순 없다. 그 불완전함이 예술의 공통분모다. 이를 바탕으로 서로 영감을 줄 때 아름다움은 확장한다. 여러 시인이 함께 출간한 '당신의 그림에 답할게요' '계속 태어나는 당신에게'는 서로 다른 도구로 삶을 쓰는 예술가들의 만남이 빛나는 산문집들이다.
선과 색의 감동을 표현한 언어들
신간 '당신의 그림에 답할게요'는 8인의 시인이 각자 친애하는 화가를 소재로 쓴 산문 8편을 묶었다. 자신의 한 시절을 예리하게 관통한 화가에 대한 연가이자 자신의 문학세계에 대한 변이기도 하다.
시인 안희연은 스위스 화가 '파울 클레'(1879~1940)와의 인연을 풀어냈다. 클레는 특정한 사조로 분류할 수 없을 만큼 독특하고 신비로운 그림 세계를 구축했다. 시인에겐 그와 최승자 시인이 20대를 정의하는 아이콘이었다. 대학 시절 여러 미술 수업을 들으면서 줄곧 만나고 싶었던 "배우는 그림 말고 느끼는 그림, 이해하지 않아도 이미 아픈 그림"이 바로 클레의 작품이었기 때문이다.
현실을 직시하기보다 그 너머를 바라보게 한 클레의 영향을 받은 자신의 여러 시도 소개한다. "…밤마다 책장을 펼쳐 버려진 행성으로 갔다 / 나에게 두 개의 시간이 생긴 것이다…" ('역광의 세계' 중) 몸이 없이 남은 한쪽 발이 그려진 그림 '녹색 위의 착오'가 주는 슬픔은, "외발로 하는 멀리뛰기" 같다는 평을 들은 시인 자신의 시 세계 전체와도 연결된다. 시인은 이를 클레에게 빚을 졌다고 표현한다.
프랑스 화가 앙리 마티스의 대표작 '춤'에 천착한 시인도 있다. 이 그림을 보면 춤추기 "직전의 설렘과 아슬아슬함을, 한창 때에 번져 나오는 흥분과 희열을" 느낀다고 밝힌 오은 시인이다. 강렬한 색채를 자유분방하게 사용하는 마티스의 회화에서 그가 발견한 위대함은 의외로 "결코 넘치는 법이 없다"는 점이다. "균형의 예술"을 꿈꾼 마티스의 말을 곱씹으며 오은은 색도 언어도 결코 균형을 실현할 수 없다고 말한다. "언어 작업의 경우 뜨거운 단어와 차가운 단어를 공평하게 쓴다고 해도 그 글은 절대 미지근해질 수 없다. 언어에는 밀도가 있기 때문이다." 그럼에도 균형을 지레 포기하지 않은 게 마티스가 거장인 이유일 테다.
이 밖에도 책에선 조선 후기 화가 최북(이현호), 일본 화가 가쓰시카 호쿠사이(서윤후), 프랑스 화가 헤몽 페네(김연덕) 등 국적도 시대도 다양한 화가와 시인의 인연을 엿볼 수 있다.
두 시인의 한 예술가를 향한 닮은 듯 다른 연서
박연준·장석주 시인이 함께 쓴 세 번째 산문집인 '계속 태어나는 당신에게'는 세상을 떠난 열여덟 명의 예술가에게 보내는 편지를 묶었다. 수신인은 러시아 발레 무용수 바츨라프 니진스키, 화가이자 작가인 나혜석, 가수 배호, 영화배우 장국영 등 다채롭다. 한 인물에 대한 두 시인의 미묘한 시선 차이도 흥미롭다.
프랑스 음악가 에릭 사티에게 쓴 편지에서 박연준 시인은 자신의 시 '산책'을 중심으로 이야기를 썼다. 이 시의 부제는 '에릭 사티의 4분음표 걸음으로'다. '명랑'이라는 모자를 쓴 '비감'을 표현한 사티 음악의 감정과 사티가 강조한 반복의 의미를 자신만의 방식으로 해석한 시다. 반면 장석주 시인은 자신에게 언제나 '12월의 사티'였던, 고독한 예술가로서 그의 삶에 집중한다. 고독이란 "천재 예술가들의 내실 같은 것"이라 창조의 바탕이라는 생각에서다.
산 사람의 추억 속에 죽은 자는 살아난다. 예술가의 영원성은 그들이 남긴 작품이 끊임없이 불리는 덕분이다. "태어나면서부터 당신과 같은 부류에 속하는 이들이 있어요. 계속 태어나요." 박연준 시인이 김소월에게 쓴 편지 구절처럼. 예술가의 만남을 끈질기게 써내려 간 세심한 언어는 지금도 또 다른 영원성을 만들어 내는 듯하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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