아이폰에 애플리케이션(앱)을 내려받을 때 무조건 자체 앱 장터인 앱스토어(App Store)만 이용하도록 강제했던 애플이 드디어 새해 유럽에서 이 빗장을 풀 것으로 보인다. 독점적 행위를 금지하는 법안이 내년부터 시행되는 데 따른 조치다.
시장에선 유럽연합(EU)의 '강공'에 도도한 애플의 콧대가 꺾이게 된 것으로 풀이한다. 업계에선 한국, 미국 등에서도 EU와 비슷한 규제 움직임이 있는 만큼, 정책 변화가 다른 나라로도 확산할 가능성이 크다는 전망이 나온다.
EU 디지털시장법에 백기 든 애플
애플은 내년 중 유럽에서 사이드로딩(sideloading·앱스토어를 거치지 않고 앱을 설치하는 것)을 허용하는 방안을 유력하게 검토 중이라고 13일(현지시간) 블룸버그 통신이 전했다. 새 정책은 내년 출시 예정인 아이폰 차세대 운영체제(iOS 17)부터 적용될 가능성이 크다.
일단 유럽 내로 한정되긴 하지만, 이 같은 애플의 정책 변경은 전격적인 변화로 받아들여진다. 그간 애플은 아이폰·아이패드 등 자사 기기 이용자들에게 앱스토어 이용만을 허용하는 폐쇄적인 운영 정책을 고수해 왔기 때문이다. 애플은 2007년 아이폰 첫 출시 이래 단 한 번도 사이드로딩을 허용하지 않았다. 삼성전자 스마트폰으로는 갤럭시 스토어 외에 구글 플레이스토어, 원스토어 등을 자유롭게 이용할 수 있는 것과 대조적이다.
애플은 앱스토어 밖에서 앱을 받을 수 있도록 허용하면 '유해한 앱'이 설치될 가능성이 커진다는 명분을 들었다. 그러나 진짜 이유는 앱스토어를 통해 벌어들이는 막대한 수수료란 비판이 끊이지 않았다. 애플은 앱스토어를 통해 유통되는 앱에 최대 30%의 판매 수수료를 부과하는데, 이를 통해 매년 수십조 원을 남기고 있는 것으로 추정된다.
그러나 특정 앱스토어 이용을 강제하지 못하도록 하는 내용의 디지털시장법(Digital Markets Act)이 내년 5월 본격 시행을 앞두면서 애플도 고집을 꺾을 수밖에 없게 됐다. EU는 빅테크의 시장 지배력 남용을 막겠단 취지에서 올해 이 법을 만들었다. 법을 반복적으로 위반한 기업엔 글로벌 연 매출의 최대 20%가 과징금으로 부과된다. 지난해 전 세계에서 약 4,000억 달러의 매출을 올린 애플의 경우 최대 800억 달러를 내게 될 수 있는 셈이다. 다만 EU는 기업들이 새 법안에 맞춰 대비할 수 있도록 2024년까진 과징금을 물리지 않기로 했다.
애플 손실은 예상보다 미미할 듯
일각에선 애플이 입장을 바꾼 것은 손실이 별로 크지 않기 때문이란 해석도 나온다. 블룸버그 인텔리전스에 따르면 애플 전체 매출에서 앱스토어 수익은 6%밖에 되지 않으며, 특히 유럽 앱스토어 비중은 2% 미만이라고 한다. 반면 애플이 아이폰 등 상품을 파는 관점에서 보면, 유럽은 미국 다음으로 큰 시장이다. 차라리 얼마 되지 않는 유럽 앱스토어 수익을 포기하고 유럽 시장과 척지지 않는 게 낫다는 얘기다.
다른 앱 마켓 이용을 허용해도 이미 앱스토어에 익숙한 이용자들이 대거 옮겨가지 않을 것이란 계산도 깔린 것으로 보인다. '무늬만 허용'에 그칠 가능성도 없지 않다. 애플은 지난해 한국 국회가 특정 결제 방식을 강제해선 안 된다는 내용의 법안을 통과시키자 올해 6월 앱스토어에서 제3자 결제를 허용하기 시작했다. 한국에서 처음으로 앱스토어 밖에서도 앱 관련 결제를 할 수 있도록 개방한 것이다. 그러나 제3자 결제를 허용하면서도 최대 26%의 수수료를 부과해 규제를 피하기 위한 꼼수 조치란 지적이 나왔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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