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과장된 위스키 신화

입력
2022.12.13 18:00
26면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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편집자주

<한국일보> 논설위원들이 쓰는 칼럼 '지평선'은 미처 생각지 못했던 문제의식을 던지며 뉴스의 의미를 새롭게 해석하는 코너입니다.

서울의 한 대형마트 주류 코너에 양주들이 진열돼 있다. 뉴시스 자료사진

서울의 한 대형마트 주류 코너에 양주들이 진열돼 있다. 뉴시스 자료사진

1979년 10월 26일 서울 궁정동 안가(安家)에서 벌어진 박정희 전 대통령 시해사건으로 유명해진 양주가 ‘시바스리갈’이다. 12년산에 알코올 도수는 43도. 최고 권력자가 즐겼다지만 지금 보면 그렇게 비싼 술은 아니다. 박 전 대통령은 막걸리도 선호했다. 1915년 경기도에서 탄생한 ‘배다리 막걸리’를 자주 찾았고, 막걸리와 사이다를 섞은 ‘막사이다’를 유독 즐겼다. 비서진들은 새마을운동 시찰 때 막걸리와 새참상을 따로 준비해야 했다.

□ 프랑스 주류업체가 국내 유흥업소에 돈을 빌려준 뒤 “우리 양주를 많이 사면 안 받는다”는 식으로 600억 원대 리베이트를 제공해 최근 공정위에 적발됐다. 발렌타인, 시바스리갈, 로얄살루트 등이 구매대상이었다. 2016년에는 같은 이유로 ‘조니워커’ 판매업체가 과징금을 물기도 했다. 모두 1988년 양주 수입 자율화 전부터 상류층의 상징처럼 여겨진 위스키들이다. 리베이트의 흑역사를 보면 대중의 선호 제품이 인위적으로 확대 재생산된 건지도 모를 일이다.

□ 중국의 명주는 단연 마오타이주다. 1934년 공산당 홍군이 국민당에 쫓겨 1만5,000km 대장정을 하면서 구이저우성(贵州省) 마오타이진에 도착해 이 술을 마셨고, 이때 전의를 불태워 대륙을 접수했다는 스토리가 정설이다. 수수를 원료로 9번 찌고 누룩을 넣어 발효한 뒤 7번 증류해 받아내니 1년은 걸린다. 마오타이를 담보로 은행대출도 가능해 ‘짝퉁 술’이 판을 친다. 매년 중국에서 유통되는 마오타이주 판매량이 200만 톤이지만 진품의 생산량은 20만 톤이란 얘기도 있다. 사실이라면 대부분 가짜인 셈이다.

□ 일본 사케는 최고의 쌀인 고시히카리가 생산되는 니가타산이 으뜸이다. 소설 ‘설국’의 고장이다. 구보타 만쥬, 고시노 간바이, 하카이산 등이 여기서 나온 제품이다. 정작 최상은 ‘주욘다이(十四代)’라는 사케다. 야마가타현의 다카키 주조에서 14대째 만들어온 명작으로 구하기조차 힘들다. 유력 지일파 원로인 전 주일대사조차 필자에게 “나도 맛은 못 보고 우연히 1,000만 원짜리 주욘다이를 유서 깊은 이자카야에서 지켜만 본 적이 있다”고 전했을 정도다. 명품 술과 별도로 한국의 대중적 음주문화는 변화했다. 폭탄주 ‘뇌관’이 양주에서 소주로 넘어간 지도 오래됐다.

중국에서 ‘국주(國酒)’란 별칭까지 붙은 마오타이 바이주(白酒)를 제조하는 증류주 제조사 구이저우마오타이(貴州茅台)가 최근 사상 처음으로 상하이 증시 상장기업 시가총액 1위에 올랐다. 한국일보 자료사진

중국에서 ‘국주(國酒)’란 별칭까지 붙은 마오타이 바이주(白酒)를 제조하는 증류주 제조사 구이저우마오타이(貴州茅台)가 최근 사상 처음으로 상하이 증시 상장기업 시가총액 1위에 올랐다. 한국일보 자료사진


박석원 논설위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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