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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의원 특권 문화'가 뇌물스캔들 조장...'로비스트의 천국' 유럽의회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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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의원 특권 문화'가 뇌물스캔들 조장...'로비스트의 천국' 유럽의회

입력
2022.12.14 04:30
19면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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유럽의회 덮친 '카타르 뇌물' 스캔들
부실한 로비 명단·감시 체계 등 허점 수두룩
EU 안팎 "제도 개선"... 감시기구 창설 거론

그리스 출신 에바 카일리 유럽의회 부의장이 지난 7일 벨기에 브뤼셀에서 열린 책 관련 시상식에서 발언하고 있다. 브뤼셀=AP·연합뉴스

그리스 출신 에바 카일리 유럽의회 부의장이 지난 7일 벨기에 브뤼셀에서 열린 책 관련 시상식에서 발언하고 있다. 브뤼셀=AP·연합뉴스

에바 카일리 유럽연합(EU) 의회 부의장이 카타르 정부에서 뇌물을 받았다는 혐의로 벨기에 검찰에 기소된 대형 스캔들이 유럽을 흔들고 있다. 현직 고위 인사가 연루된 것도 충격이지만, 카타르가 EU 의회 의원을 매수할 수 있었던 배경으로 EU의 구멍 난 로비 문화가 지목됐기 때문이다.

로비는 입법 또는 정책 집행 과정에 영향력을 행사하는 행위이다. EU에서는 로비가 합법이다. 그러나 불법 로비를 차단할 제도엔 구멍이 뚫려 있었다. 특히 '의원은 예외'라는 특권 문화가 팽배했다. EU 행정부인 집행위원회와 비교하면, 유럽의회가 훨씬 느슨한 로비 기준을 적용해온 것도 도마에 오르고 있다.

벨기에 검찰 수사망 확대… 고개 숙인 EU

벨기에 검찰은 인권 탄압 국가인 카타르가 이미지 세탁 등을 목적으로 유럽의회에 접근했다고 의심하고 있다. 13일(현지시간)까지 카일리 부의장을 포함, 4명이 자금 세탁 및 부패 혐의로 기소됐다.

EU 회원국들은 "이번 사건을 개인 비리로 치부해선 안 된다"고 자성하고 있다. '민주주의·인권의 첨단'을 자처한 EU와 유럽의회의 허술한 로비 문화가 여실히 드러났기 때문이다.

① 로비스트 관리 명단 사각지대

EU는 로비스트 명부인 '투명성 등록부'를 관리한다. EU와 접촉하려는 로비스트들은 여기에 등록하고 감시를 받아야 한다. 13일 기준 1만2,447명이 등록돼 있다. 이익단체(8,215명), 비정부기구(3,532명), 연구기관·지방자치단체(676명) 등에 적을 둔 로비스트들이다.

그러나 유럽이 아닌 제3국의 관료는 등록 대상이 아니라는 데 허점이 있었다. 카타르 정부 관계자가 카일리 부의장에게 접근해 어떤 거래를 하더라도 고지할 의무가 없었다는 뜻이다. 사각지대 안에서 뇌물 수수가 이뤄진 것이다. 다니엘 프러인트 유럽의회 반부패 실무그룹 공동의장은 "제3국이 (사각지대를 악용해) EU에 얼마나 적극적으로 영향력을 행사하려 하는지 드러났다"며 "제3국에 의한 로비도 관리돼야 한다"고 말했다.

② 로비스트 활동 관리도 부실

등록된 로비스트라고 해도 활동 내역을 전부 공개할 의무가 없다는 점도 밝혀졌다. 로비가 활성화한 미국에선 로비스트가 고객과 맺은 계약 내용, 로비 목적 등을 일일이 공개해야 한다. EU가 로비스트의 업무를 회색 지대에 남겨둔 것은 로비와 입법 및 정책 집행 간 연관성을 찾을 수 없다는 뜻이다. 이는 불법 행위가 싹틀 가능성을 키웠다.

2019년 1월 이후 유럽의회 의원들은 로비스트와 대화 내용을 녹취해 보고하게 돼 있다. 그러나 의무가 아니라 선택 사항이라 사실상 유명무실하다. 국제투명성위원회가 2019년 6월부터 올해 7월까지 분석한 바에 따르면, 룩셈부르크 출신 의원들은 녹취록을 100% 보고했지만, 그리스 출신 의원들은 10%밖에 보고하지 않았다.

12일 촬영된 프랑스 스트라스부르의 유럽의회 전경. 스트라스부르=EPA·연합뉴스

12일 촬영된 프랑스 스트라스부르의 유럽의회 전경. 스트라스부르=EPA·연합뉴스


③ 보좌진∙전직 의원 감시망 부재

한국 국회의원들처럼 유럽의회 의원들도 의회 보좌진의 지원을 받지만, 보좌진의 활동을 감시할 체계가 미흡하다는 것도 문제다. 로비스트가 보좌진을 불법 로비 통로로 활용할 수 있다는 것이다. 카일리 부의장과 함께 기소된 남편 프란체스코 조르지는 의회 내 다른 의원의 보좌관이다.

전직 의원도 사각지대다. 전직 의원들은 의회 문화를 잘 알고 있을뿐더러 현직 유럽의회 인사들에게 상당한 영향을 미칠 수 있다. 검찰이 체포한 인물 중에도 이탈리아 출신 전직 의원인 피에르 안토니오 판체리가 포함돼 있다.

우르술라 폰데어라이엔 EU 집행위원장은 2019년 집행위원장 경선에 출마하며 '전·현직 관료를 모두 단속할 수 있는 윤리위원회를 설립하겠다'고 공약했지만, 실행되지 않았다.

④ 의회에만 유난히 느슨한 규칙

유럽의회는 EU의 다른 기관에 비해 느슨한 로비 규칙을 적용했다. 집행위원회는 명부에 등록된 로비스트와의 접촉만 허용하지만, 의회는 그런 규제를 하지 않았다. 이번 스캔들의 중심에 있는 비정부기구 '파이트임퓨니티'는 '투명성 등록부'에 등록하지 않은 채 활동했다.

로비스트에게 제공받을 수 있는 선물 한도도 달랐다. 집행위원회 직원은 외부 인사로부터 연간 50유로(약 6만8,845원)까지만 받을 수 있지만, EU 직원은 연간 300유로(약 41만3,000원)까지 허용됐다.

의회 내 윤리자문기구 역시 유명무실하다. 국제투명성기구는 "의원, 직원들에 대한 처벌을 소극적으로 하는 관행도 문제"라고 꼬집었다.

"이참에 감시기구 만들자"...커지는 목소리

EU 안팎에선 이번 부패 스캔들을 계기로 로비 제도의 허점을 메우고, 잘못된 관행을 바로잡자는 목소리가 커지고 있다. 의원들은 의회에 대한 신뢰를 확보하기 위해서라도 강력한 조치가 필요하다고 요구한다.

EU는 독립된 윤리기구 창설 논의를 진행 중이다. 이번 스캔들 이외의 부패 사건을 자체 조사하는 방안도 거론된다.

베를린 신은별 특파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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