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차등을 말하기 전에

입력
2022.12.13 04:30
26면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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편집자주

36.5℃는 한국일보 중견 기자들이 너무 뜨겁지도 너무 차갑지도 않게, 사람의 온기로 써 내려가는 세상 이야기입니다.

게티이미지뱅크

게티이미지뱅크


정부가 최근 내후년 최저임금 심의를 위해 업종별 차등적용 관련 연구용역을 발주하며 기초자료 수집에 나섰다. 업종별 차등적용은 윤석열 대통령이 후보자 시절부터 여러 차례 강조해온 것으로, 업종에 따른 급여 지불 능력과 근로조건, 생산의 차이 등을 고려해 제각각 다른 최저임금을 책정하는 제도다. 남녀노소, 어떤 일을 하든 똑같은 최저임금을 받는 현 체계와는 차이가 있다.

업종별 차등적용 도입을 주장하는 재계 쪽에선 일률적 최저임금 인상이 현실을 외면하고 있다고 지적한다. 재계 주장에 따르면, 최근 5년간 최저임금이 급격히 인상되면서 이를 따라가지 못하는 일부 업종에서는 근로자의 40~50%가 법정 최저임금을 받지 못하고 있다. 최저임금을 받지 못하는 비율의 업종 간 편차도 지난해 기준 최대 52.9%포인트까지 벌어졌다고 강조한다. 한발 더 나아가 최저임금 미만율이 높은 5인 미만 사업체와 60세 이상 고령근로자에 대한 구분 적용도 필요하다고 주장한다.

현행법상 최저임금을 지키지 않으면 사용자는 3년 이하의 징역 또는 2,000만 원 이하의 벌금형에 처해질 수 있다. 그러니 최저임금 지불능력이 없는 사용자를 범법자로 만들기보다 그들이 줄 수 있는 만큼 현실적 기준을 별도로 제시하자는 게 재계 측 주장이다.

하지만 업종별 차등적용 도입을 위해선 다양한 측면에서 깊은 고민이 필요하다. 단순히 사용자의 어려움이 극심하니 이를 덜어주자는 차원에서 도입했다간 이미 악화일로를 걷고 있는 노∙정 관계가 또다시 극심한 갈등을 빚을 수 있다. 실제 1988년 최저임금 첫 시행 때 업종별 차등임금을 도입했지만, 저임금 그룹에서 터져 나온 불만이 노사 간 충돌로 이어지면서 갈등이 커지자 1년 만에 최저임금 단일화로 방향을 틀었다.

저임금 업종에 대한 사회적 낙인과 차별 우려도 있다. 재계 주장대로 소규모 영세 사업체와 노인, 그리고 농림어업이나 숙박∙음식점업 등 최저임금 미만율이 높은 특정 계층과 업종에 낮은 임금을 부과할 경우 이들에 대한 부정적 인식이 형성될 수 있다.

일각에서는 "노인 등 일자리가 절박한 사람들 중에는 돈을 적게 줘도 좋으니 일하고 싶다고 한다"며 그들의 절박함을 차등의 근거로 가져다 쓰기도 한다. 윤 대통령 또한 대선 과정에서 "최저임금을 200만 원으로 잡으면 150만 원, 170만 원 받고 일하겠다는 사람은 일을 못해야 하느냐"고 한 바 있다. 하지만 이는 사용자 부담을 덜기 위해 벼랑 끝에 내몰린 약자의 절박함을 이용하는 것이고, 결과적으로 그들을 더 벼랑 밖으로 내모는 것에 불과하다.

앞서 2017년 사용자와 근로자 사이 갈등이 극대화되면서 꾸려진 태스크포스(TF) 또한 4개월여간의 연구 끝에 저임금 업종의 낙인효과 발생 등을 우려하며 업종별 차등적용을 반대했다. 당시 TF는 최저임금 취지상 업종별 구분 적용의 타당성을 찾기 어렵다고 지적하기도 했다.

결국 최저임금을 업종별로 차등적용하기보다는 열악한 업종의 경쟁력을 키워 최저임금을 준수할 수 있게 만드는 게 보다 근본적 해결 방법일 수 있지 않을까 생각한다. 물론 그 과정에서 필요하다면 최저임금 인상의 속도를 조절할 필요도 있을 것이다.

업종에서든 계층에서든 일단 차등을 두기 시작하면 되돌려야 할 경우 이를 도입할 때보다 더 어려운 길을 걸어야 할 수 있다. 당장의 어려움 때문에 누군가를 희생시키기보다 중장기적으로 우리 사회가 더 나은 방향으로 함께 나아갈 수 있는 선택을 해야 한다.

김진주 기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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