유럽 최대 성장세 고릴라스 라이벌에 인수
조커·고퍼프·도어대시도 몸집 줄이기 나서
팬데믹 효과 종료·막대한 초기 투자비용 탓
독일에서 시작된 초고속 식료품 배송업체 고릴라스(Gorillas). 이 회사는 홈페이지에 '당신이 다녀오는 것보다 빨리(Faster than you)'라는 문구를 걸고, 식료품을 10분 안에 배달하는 서비스를 제공한다. 팬데믹 기간 동안 유럽에서 가장 크게 성장한 배달 업체로 꼽힌다.
이렇게 잘나가던 고릴라스가 갑자기 경쟁사에 인수됐다. 파이낸셜타임스(FT)에 따르면, 튀르키예에서 시작된 식료품 배송업체 게티르(Getir)는 약 12억 달러(약 1조5,700억 원)에 고릴라스를 사들이기로 했다. 앞서 고릴라스는 올해 초 직원 약 300명을 해고하며 비용을 줄였고, 수익이 부진한 이탈리아·벨기에 등에서는 서비스를 접기도 했다. 그러나 이 같은 비용 절감 노력에도 사업을 유지하기가 어려워지자 결국 매각을 택한 것으로 풀이된다.
잘나가던 퀵커머스에 무슨 일이?
배달 시장의 '게임 체인저'로 불렸던 초고속 배송(퀵커머스) 스타트업들이 맥없이 몰락하고 있다. 초고속 배송 수요를 폭발적으로 키운 신종 코로나바이러스 감염증(코로나19)의 기세가 누그러진 데다, 세계적인 인플레이션 현상까지 덮치며 성장세가 꺾인 탓이다. 초고속 배송 업체들은 그간 입지 확대를 위해 손실을 감수하고 사업을 확대해 왔으나, 배달 시장 자체가 가라앉자 생존의 위기에 내몰리고 있다.
미국과 중남미 국가들을 중심으로 15분 내 식료품 배달 서비스를 운영했던 조커(Jokr)도 마찬가지다. 지난해 6월에만 해도 조커는 "뉴욕에서만 100개의 초고속 배달용 소형 창고를 짓겠다"고 자신감을 보였지만, 그로부터 1년 만인 올해 6월 미국 시장에서 완전히 철수했다. 지난해 150억 달러(약 19조6,700억 원)의 기업가치를 평가받았던 '30분 배송 업체' 고퍼프(Gopuff) 역시 7월 원가 절감을 위해 전체 인력의 10%를 해고하고, 미국 내 창고 76곳을 폐쇄했다.
'미국판 배달의민족'으로 불리는 음식배달 중개서비스 도어대시(Doordash)는 지난달 말 전체 직원의 6%에 해당하는 1,250명을 해고한다고 발표했다. 미국 음식배달 시장 1위인 도어대시는 지난해 12월 뉴욕에서 15분 내 식료품 배달 서비스를 시작하며 초고속 배송 경쟁에 가세했다.
그나마 살아남은 업체들은 사정이 나은 편이다. 바이크(Buyk), 프리지 노모어(Fridge Nomore), 제로 그로서리(Zero Grocery) 등은 아예 파산해 자취를 감췄다.
낮은 수익성이 성장 '발목'
인플레이션, 금리인상 등 경영 환경의 악화로 올 들어 대부분 업종·기업이 어려움을 겪고 있지만, 초고속 배달 업체들이 유독 취약한 것은 구조적인 낮은 수익성 탓이다. 초고속 배송은 다크 스토어(도심에 위치하는 온라인 배송 물류기지)라고 불리는 배달 물품용 창고가 동네마다 촘촘하게 있어야 해, 초기 비용이 많이 든다. 최대 30분 내 배송을 마쳐야 하는 초고속 배달의 특성상, 한 번 배달을 갈 때 주문을 한 건밖에 처리할 수밖에 없다는 점도 비용을 높인다. 이런 비용 구조를 상쇄하기 위해선 배달 수수료를 그만큼 많이 받아야 하는데, 경쟁이 심해 높은 수수료를 책정하기는 어렵다. 배달료가 비쌀수록 이용률이 떨어질 가능성이 크기 때문이다. 실제로 고릴라스의 경우 순매출 1유로당 손실액이 1.5유로로 알려졌다. 배달을 하면 할수록 손해인 셈이다.
다만 초고속 배송 업체들의 위기는 시장 자체의 성장 가능성이 작아서 그렇다기보다는 단기간 너무 많은 업체가 생겨 출혈 경쟁을 벌인 탓이란 분석도 나온다. 경쟁력이 약한 업체들이 자연스럽게 정리되고 소수의 '플레이어'만 남으면 안정적으로 성장할 수 있을 것이란 얘기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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