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영의정 신발' 소리 듣던 어그 부츠부터
핑클 떠올리게 하는 레그워머까지
X세대엔 옛 감성을, Z세대엔 신선함을
직장인 김모(32)씨는 몇 해 전 ‘유행이 지났나’ 싶어 신발장에 넣어뒀던 어그 부츠를 다시 꺼냈다. 김씨는 “2000년대 초반에 유행하던 신발이라 따뜻하긴 해도 유행에 뒤처져 보일까 봐 한동안 신지 못했는데 다시 인기가 돌아왔다는 이야기를 듣고 반가웠다”면서 “새로 사고 싶어도 벌써 원하는 디자인 사이즈가 전 매장 품절이어서 구하지도 못한다”고 토로했다.
“영의정 신발 아니냐”, “못생겼다”는 평가를 받던 ‘못난이 신발’ 어그 부츠가 돌아왔다. X세대의 기억 속 어그는 2004년 KBS드라마 ‘미안하다, 사랑한다’ 속 임수정 패션 아이템으로 발목을 덮는 털과 뭉특한 모양이 특징인 신발이다. 20년이 지난 2022년, 어그는 이제 Z세대가 먼저 찾는 핫한 아이템이 됐다. 지난해부터 패션계를 휩쓴 Y2K(연도를 뜻하는 year와 숫자 2, 1,000을 뜻하는 kilo의 앞 글자를 딴 단어로 1990년대 말~2000년대 초반, 세기말 생활양식을 의미) 감성이 이어지면서다.
어그는 과거에 비해 더 다양해진 스타일로 풋 웨어의 '뉴트로'를 이끌고 있다. 발목을 덮는 롱 부츠도 여전히 많이 찾지만 어그 슬리퍼, 미니 어그가 더 인기다. 코로나19로 재택근무 등 집에 머무는 시간이 길어지면서 사랑받게 된 ‘원마일 웨어’(집 1.6km 반경 내에서 입을 수 있는 옷) 트렌드 영향이란 분석이다. 신세계 인터내셔널 관계자는 “홈 웨어, 라운지 웨어와 함께 양털 슬리퍼가 조명을 받게 됐다”면서 “국내뿐만 아니라 해외에서도 인기를 끌어 올해 어그 매출은 거의 최고점을 찍었다”고 설명했다.
어그 부츠와 함께 2000년대 초반 인기 걸그룹 핑클과 S.E.S.를 떠올리게 하는 레그워머, 이른바 ‘발 토시’도 새롭게 인기를 얻고 있다. 러블리한 소녀 감성을 더하는 건 물론 뒤늦은 한파를 이겨낼 보온성도 갖췄다는 평가다. 패셔니스타 모델 벨라 하디드가 발목을 겨우 덮는 울트라 미니 어그를 흰색 레그워머와 코디해 신은 사진이 주목받으면서 미니 어그와 레그워머가 더 ‘핫’하게 떠올랐다.
실제 매출도 이런 인기를 입증한다. 카카오스타일에 따르면, 지난달 ‘어그 부츠’ 거래액은 전월 대비 954% 증가했다. 어그 열풍이 시작된 지난해 같은 기간(11월)과 대비해도 106%가 증가했다. 레그워머(445% 증가)나 니삭스(105% 증가)도 덩달아 올해 더 많이 팔렸다.
신발에 부는 복고 감성은 앵클 부츠에도 스며들고 있다. 스키니한 바지에 앵클 부츠를 신는 것이 일반적인 코디였지만, 이젠 복고풍의 통 넓은 바지에 매치하는 방식이 유행하고 있다.
지난해부터 패션계를 휩쓸고 있는 것은 Y2K 감성이다. 화려한 색상과 통 큰 바지 등 남의 시선을 의식하지 않는 개성과 함께 편리성을 극대화한 패션으로 '내 멋대로 산다'는 세기말적 감성과 어울렸다. 이런 패션이 X세대의 옛 감성을 되살렸을 뿐만 아니라 Z세대엔 새롭고 톡톡 튀는 아이템으로 다가갔다는 분석이다. X세대 엄마와 Z세대 딸이 공통분모를 갖게 된 셈이다. 카카오스타일 관계자는 “옛날 어그의 인기를 기억하는 30, 40대에만 사랑받는 게 아니라 10, 20대에 새로운 브랜드로 각인돼 트렌드가 될 수 있었다”면서 “이 영향으로 어그는 작년부터 겨울이 되기 전에 이미 품절돼 못 구하는 아이템이 됐다”고 설명했다.
2000년대 초반과 지금의 시대적 분위기가 비슷해 패션 트렌드에도 영향을 미쳤다는 분석도 있다. 이은희 인하대 소비자학과 교수는 “2000년대 초반 세기가 바뀔 때 '세상이 어떻게 변화할까'에 대한 불안 심리가 있었듯 지금의 소비자들도 코로나19 이후의 세상, 경제적 위기 등으로 불안함을 겪고 있다”면서 “어려운 상황 속에서는 따뜻하고 화려한 색감의 복고 패션이 더 사랑받는 경향이 그대로 나타난 것”이라고 분석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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