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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암 투병' 사카모토 류이치, 피아노 앞에서 펼친 70분 음악 열정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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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암 투병' 사카모토 류이치, 피아노 앞에서 펼친 70분 음악 열정

입력
2022.12.12 04:30
23면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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11일 2년 만의 온라인 공연 '플레잉 더 피아노 2022' 공개

일본의 피아니스트 겸 영화음악가 사카모토 류이치가 11일 온라인으로 공개된 라이브 영상 '플레잉 더 피아노 2022'에서 연주하고 있다. 씨앤엘뮤직 제공

일본의 피아니스트 겸 영화음악가 사카모토 류이치가 11일 온라인으로 공개된 라이브 영상 '플레잉 더 피아노 2022'에서 연주하고 있다. 씨앤엘뮤직 제공

백발의 피아니스트는 정적 속에서 소리를 찾아가는 구도자 같았다. 건반 위로 머리를 푹 숙인 채 조심스럽게 그러나 단호하게 한 음 한 음 선율을 이어가자 일본 도쿄 시부야의 NHK 스튜디오에는 고요한 파도가 일었다. 11일 공개된 사카모토 류이치(70·坂本龍一)의 온라인 콘서트 ‘류이치 사카모토: 플레잉 더 피아노 2022’에서다.

일본 출신의 세계적인 음악가 사카모토가 2년 만에 공연을 열어 팬들과 만났다. 팬데믹으로 전 세계가 위축돼 있던 2020년 12월 12일 온라인 콘서트 ‘류이치 사카모토: 플레잉 더 피아노 12122020’을 열었던 그가 또다시 라이브 스트리밍 형식으로 비대면 공연을 열었다. 2년 전엔 관객만 없었을 뿐 실제 콘서트처럼 연주했지만 그간 암 투병으로 건강이 악화한 탓에 이번엔 사전에 몇 곡씩 미리 연주한 것을 하나로 모아 콘서트 형식으로 편집해 이날 자국 일본을 비롯해 20여 개 나라에 공개했다.

70분 분량의 공연에서 사카모토는 자신의 영화음악 중 대표작인 ‘메리 크리스마스 미스터 로렌스’ ‘마지막 황제’ ‘마지막 사랑’ ‘리틀 부다’ ‘폭풍의 언덕’ ‘토니 타키타니’ 등의 주제가를 비롯해 광고용 음악을 다시 편곡한 ‘오바드 2020’, 40여 년 전 신스팝 그룹 엘로 매직 오케스트라 재직 시절 발표했던 ‘통 푸’ 등을 솔로 피아노로 연주했다. 내년에 발표될 새 앨범 수록곡 ‘20220302 – 사라방드’, 얼마 전 유희열이 ‘아주 사적인 밤’으로 표절 의혹을 받았던 ‘아쿠아’도 연주했다. 이전 공연보다 유독 느리고 적막한 연주였다.

사카모토는 짙은 주름에 볼이 푹 패어 꽤나 수척해 보였지만 사전 정보가 없다면 투병 중이라는 사실을 눈치채지 못할 정도로 집중력 넘치는 연주를 펼쳐 보였다. 공연을 마친 사카모토는 “공연에 선보일 곡들을 신중하게 골랐다”며 “몇 곡은 솔로 피아노로 처음 연주하는 곡인데 그 역시 신중하게 편곡했다. 여기에서 공연하며 새로운 경지에 이른 것 같은 느낌이 든다”고 말했다.

1978년 데뷔해 솔로 및 그룹 옐로 매직 오케스트라의 일원으로 활약하며 작곡가, 프로듀서, 건반 연주자로 이름을 알린 그는 영화음악가로도 뚜렷한 족적을 남겼다. 영화 '마지막 황제' 사운드트랙으로 아시아인 최초로 미국 아카데미 음악상을 수상했고 그래미상도 받았다. 한국영화 '남한산성'과 애니메이션 '안녕, 티라노: 영원히, 함께'의 음악을 맡기도 했다.

2014년 인두암 치료를 받았던 사카모토는 2020년 직장, 간, 림프로 암이 전이돼 이듬해까지 여섯 차례의 수술을 거치며 힘든 시간을 보냈다. 지난 6월 일본 문예지 ‘신초’에 쓴 연재 에세이 ‘나는 앞으로 몇 번의 보름달을 보게 될까’에선 직장암 판정 당시 수술하지 않으면 6개월밖에 살지 못할 것이라는 의사 소견을 들었고 대장 30㎝를 절제했다는 사실을 밝히기도 했다.

그는 이번 공연을 앞두고 “라이브로 콘서트를 할 체력이 안 된다”면서 “이런 형식으로 연주를 하는 것은 이번이 마지막이 될지도 모른다”고 했다. 공연 장소는 NHK 라디오 방송국 내 NHK509 스튜디오로 그가 주저 없이 “일본에서 가장 좋은 스튜디오”라고 말하는 곳이다. 제작진은 공연장에 10대 이상의 마이크를 설치하는 등 스튜디오의 공간감을 최대한 살리는 데 심혈을 기울였고, 미국 제작진이 연출한 영상은 다큐멘터리 영화로도 공개될 예정이다.

일본의 피아니스트 겸 영화음악가 사카모토 류이치가 11일 온라인으로 공개된 라이브 영상 '플레잉 더 피아노 2022'에서 연주하고 있다. 씨앤엘뮤직 제공

일본의 피아니스트 겸 영화음악가 사카모토 류이치가 11일 온라인으로 공개된 라이브 영상 '플레잉 더 피아노 2022'에서 연주하고 있다. 씨앤엘뮤직 제공

투병 중에도 사카모토는 왕성한 음악 활동을 펼치고 있다. 영화 ‘베킷’ ‘미나마타’ ‘애프터 양’, 애니메이션 ‘디 익셉션’ 등의 음악을 만들었고, 내년 1월 17일 자신의 71번째 생일을 맞아 6년 만의 정규 솔로 앨범 ‘12’를 발표한다. 이 앨범 커버에는 국내 화가 이우환의 작품이 사용됐다. 그는 “1년 반 동안 투병하며 일기를 쓰듯 소리를 스케치한 곡들”이라고 소개했다. 이날 공연 관람자에겐 앨범에 담긴 미니멀하면서 사색적인 12곡이 처음 공개됐다.

죽음의 문턱에 선 사카모토는 늘 음악 앞에 초연한 모습을 보였다. 앞서 에세이에서 그는 “처음 암을 발견한 2014년 62세에 죽었다고 해도 49세에 세상을 떠난 소설가 나쓰메 소세키에 비하면 충분히 오래 산 것”이라며 “살아 있는 동안 경애하는 바흐나 드뷔시처럼 마지막 순간까지 음악을 만들 수 있기를 바란다”고 썼다.

고경석 기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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