긴급기자회견… "민주당, 5조 요구 양보 안 해"
"당 정체성 말하며 법인세 최고세율 인하 거부"

추경호 부총리 겸 기획재정부 장관이 9일 정부서울청사에서 기자간담회를 열고 국회 예산안 협상 결렬 경위와 정부 입장을 설명하고 있다. 뉴시스
추경호 부총리 겸 기획재정부 장관이 9일 더불어민주당과의 감액 규모 이견 탓에 내년 예산안 협상이 결렬됐다고 밝혔다. 세제 개편안이 핵심인 예산부수법안 협상은 법인세에 발목이 잡혔다. ‘준예산’ 편성 가능성에 대해서는 상상하는 것도 안 된다고 추 부총리는 일축했다.
추 부총리는 이날 여야 간 내년 예산안 협상이 결렬된 뒤 곧장 정부서울청사에서 긴급 기자간담회를 자청해 협상 결렬 경위와 정부 입장을 설명했다. 국회가 국회선진화법을 도입해 이듬해 예산을 편성하기 시작한 2014년 이후 정기국회 회기 내에 예산 편성을 마치지 못한 것은 처음이다.
추 부총리는 민주당이 요구한 예산 감액 규모와 관련, “국회의 적정 감액 규모는 과거 실질 국회 감액 규모(평균 5조1,000억 원)에서 내년의 실질적 총지출 증가율을 고려해 결정할 필요가 있다”며 적정 감액 규모로 1조3,000억 원을 제시했다. 민주당이 제시한 감액 규모인 7조7,000억 원과 6조 원 넘는 격차가 있는 액수다.
과거 5년간 총지출 증가율이 8.6%였던 데 비해 내년 증가율은 5.2%에 불과한 데다 교부세ㆍ교부금을 제외한 실질 총지출 증가율은 과거 5년 평균의 4분의 1 수준이라는 것이 추 부총리 설명이다. 민주당이 내년 총지출(639조 원)에 5년 평균 감액 비율인 1.2%를 반영해 감액 규모 7조7,000억 원을 산출했지만, 추 부총리는 “민주당안에는 지출 재구조화 규모와 재량지출 변동 등 국회 감액과 연계된 총지출 특성이 반영되지 않았다”고 지적했다.
추 부총리는 “정부는 감액 규모를 당초 정부안인 1조3,000억 원의 두 배인 2조6,000억 원에서 최대 3조 원까지 늘리는 방안을 제시하고 대화를 시도했지만 야당은 최소한 5조 원이 돼야 한다며 양보하지 않았고 교착 상태에 빠진 뒤 결렬됐다”고 주장했다.
그는 “예전에는 정부 예산안이 32조 원 증가한 상태에서 협상에 들어갔지만 지금은 증가분이 9조 원에 불과한데, 민주당이 과거 돈을 많이 쓸 때 타성에서 벗어나지 못하고 감액을 요구하고 있다”며 “수건에 물이 흥건할 때는 물이 많이 떨어지지만 지금은 아니다”라고 비판했다.

추경호 부총리 겸 기획재정부 장관이 9일 정부서울청사에서 기자간담회를 열고 내년 국회 예산안 협상 결렬 경위와 정부 입장을 설명하고 있다. 뉴시스
세제 개편안 협상에서는 법인세 최고세율 인하가 최대 쟁점이었다. 추 부총리는 “애초 민주당이 법인세율 인하를 ‘초부자 감세’로 규정하고 줄곧 당의 정체성ㆍ이념과 관련된 부분이라 타협할 수 없다는 식이었다”며 “김진표 국회의장 중재안(2년 유예 뒤 최고세율 22%로 인하)을 정부는 받겠다고 했는데도 야당이 거부했다”고 전했다.
금융투자소득세 시행 유예와 종합부동산세 개편의 경우 상당 부분 이견이 줄었지만, 민주당이 금투세 공백기 동안 양도소득세 과세 대상 기준을 기존 대주주 기준인 보유 종목당 10억 원으로 유지하고 다주택 보유자에게 무거운 세금을 물려야 한다는 의견을 고집하는 바람에 아직 합의에 이르지는 못했다고 추 부총리는 전했다.
예산안 협상이 교착해도 준예산은 고려하고 있지 않다고 추 부총리는 밝혔다. 그는 “준예산이 도입될 당시인 1960년은 의원내각제 시절이어서 수시로 필요할 때 국회가 해산될 수 있었기 때문에 국회 정지 상황을 대비한 비상 수단이 필요했고, 그게 준예산이었다”며 “지금 대통령제 하에서 준예산이 거론될 수는 없다”고 했다. 그러면서 “준예산에 구체적으로 들어가는 순간 정부나 정치 집단, 국회 국정 관리 능력에 대한 국제사회의 불신이 커지고 정말 경제 위기가 초래될 수 있다”고 강조했다.
앞서 추 부총리는 이날 국회에서 주호영 국민의힘 원내대표와 면담한 뒤 기자들에게 “내 역할은 일단은 당분간은 더 이상 없을 것 같다. 할 만큼 했다”며 “최종적으로 어떻게 할지 결정하는 것은 이제 양당 몫”이라고 말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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