반려 고수를 찾아서
“사실, 이 친구가 그렇게 기억에 남는 친구는 아니에요. 우리 병원에 온 뒤로는 증상도 양호한 편이고, 병원 스트레스를 그렇게 심하게 보이는 편도 아니라서…”
서울 성산동에 위치한 우리동생동물병원의 김희진 원장은 병원을 내원하는 ‘들희’(15)라는 반려묘에 대해 묻자 말끝을 흐리며 답했습니다. 다만, 이 말에는 ‘그만큼 반려묘의 건강을 잘 돌보고 있다’는 의미도 담겨있는 듯했습니다. 실제로 들희는 10세가 되기 전까지는 방광염을 수차례 앓았던 고양이였으니까요.
방광염은 많은 보호자에게 알려진 것처럼 고양이에게 흔한 질병입니다. 그만큼 재발할 가능성도 높죠. 들희를 돌봐온 보호자 구민희 씨는 “너무 시간이 오래 지나서야 들희를 위한 맞춤 돌봄법을 찾은 것 같다”고 돌아봤습니다. 그렇다면 과거 들희는 어떤 생활을 했던 걸까요?
“버려둘 수 없었어..” 졸지에 ‘2냥이 집사’ 된.ssul
민희 씨가 들희를 처음 만난 건 15년 전인 2007년입니다. 당시 민희 씨는 지인으로부터 한 장의 사진을 받았습니다. 사람의 손길을 잘 타는 새끼 고양이였습니다. 지인은 그에게 “유기된 것 같다”며 “도저히 그냥 두고 갈 수 없어서 데려오려고 하는데, 혹시 받아줄 수 있느냐”고 물었습니다. 지인은 가족들이랑 거주하는 만큼 고양이를 키우고 있는 민희 씨에게 맡기고 싶다는 뜻이었습니다.
마지못해 받아들였지만, 사람의 손을 잘 타는 들희를 보면서 민희 씨도 점점 정이 들기 시작했습니다. 그는 “보통 길고양이라면 사람에 대한 경계심을 보이기 마련인데, 들희는 전혀 그렇지 않았다”며 “이 아이는 방사하면 안 되겠다는 생각이 들었다”고 당시를 돌아봤습니다.
‘첫인상이 모든 걸 결정한다’는 말이 있지만, 적어도 이 말은 들희에게는 통하지 않는 듯합니다. 함께 생활한지 단 이틀 만에 들희가 두 번째 얼굴을 보인 것이죠. 민희 씨와 함께 사는 동생에게 들희가 갑자기 하악질을 한 겁니다. 돌발적으로 화를 내는 모습에 민희 씨는 ‘반전 매력’을 느꼈다고 해요. 좀 불만을 쌓아뒀다가 터뜨리는 것 아니냐고 질문을 던지자 “그럴 수 있겠다”면서 “어떤 때는 무릎냥이처럼 행동하다가 갑자기 까칠하게 대하는 등 도무지 종잡을 수 없었다”고 말했습니다.
이렇게 종잡을 수 없는 들희의 성격 탓에, 민희 씨는 첫째 고양이 ‘셰바’와 함께 합사를 하는 걸 처음에는 망설였다고 해요. 그러나, 막상 합사를 진행하고 보니 들이대는 건 들희 쪽이었고, 귀찮아하는 건 셰바였습니다. 다행히 두 친구는 서로 밀착하며 살지는 않았지만, 적당한 거리감을 유지하면서 동거묘로서의 유대감 정도를 가진 사이로 지낼 수 있었다고 하네요. 집사 입장에서는 참 다행스러운 일이었습니다. 그렇게 2020년, 셰바가 세상을 떠날 때까지 둘은 잘 지냈었다고 해요.
나을듯하면 재발하는 ‘방광염’.. 10년 만에 찾은 해결책
오히려 걱정거리는 다른 곳에서 생겼습니다. 지금으로부터 11년 전, 들희를 괴롭히던 방광염이 시작된 겁니다. 처음에는 그게 방광염인지도 몰랐다고 합니다. 소변을 잘 보지 못하는 들희의 상태를 못 알아채다 상태가 악화됐고, 부랴부랴 병원에 옮겼을 때는 이미 방광이 부풀 대로 부풀었죠. 결국 카테터(고무관)를 이용해 소변을 빼내야 했습니다. 그제야 들희가 방광염이 있다는 사실을 알게 됐었다고 합니다.
그렇게 큰일을 겪고 나서야 민희 씨는 부랴부랴 문제를 해결하기 위해 나섰습니다. 우선 들희가 화장실 모래를 썩 마음에 들어 하지 않는다는 걸 알았습니다. 들희의 민감한 성격을 파악하자마자 맞는 모래로 교체하기 위해 애썼습니다. 영양제를 급여하고 물 마시는 시간을 최대한 늘리려 애썼죠.
그럼에도 들희의 방광염은 주기적으로 찾아왔습니다. 소변을 봤지만, 어느새 또 소변에 피가 섞였습니다. 그러나 민희 씨는 포기하지 않았습니다. 들희를 위해 할 수 있는 최선의 방법을 찾으려 애썼죠. 그만큼 2년 전부터 상태는 점점 나아졌습니다. 소변에서 작은 결정들이 발견됐지만, 과거에 비하면 훨씬 좋아진 겁니다. 10년 가까운 시간이 지나서야 찾아낸 방법은 무엇일까요?
우선 보호자들이 기억해야 할 점은 ‘어떤 고양이든 소변 문제에서 자유로울 수는 없다’는 사실입니다. 김 원장은 “고양이를 키우는 모든 집사는 소변 상태를 체크하는 게 생활화가 되어야 한다는 뜻”이라며 “소변의 색깔과 양 등, 정상치에서 조금이라도 벗어나는 게 있다면 요로계 질병을 의심하고 병원을 찾아야 한다”고 설명했습니다.
그렇게 조금이라도 문제가 발견됐다면, 우선 음수량부터 늘려줘야 합니다. 음수량을 늘리는 법은 매우 다양합니다. 물에 습식 사료를 타는 방법도 있고, 고양이들이 좋아하는 액상 간식에 물을 타는 소위 ‘츄르탕’을 만들어주는 방법도 있습니다. 김 원장은 “이 방법들은 자발적으로 음수를 하도록 유도하는 방법”이라며 “먹는 것에 관심을 보이는 친구들일수록 이 방법으로 음수를 유도하기 쉬워진다”고 설명했습니다. 민희 씨 역시 “우리동생에 들희를 맡기고, 보호자 교육에 적극 참여하면서부터 이 방법들을 알게 됐다”고 말했습니다.
만약에 물을 잘 마시지 않는다면 그 원인을 찾아봐야 합니다. 김 원장은 “고양이들은 따뜻한 물보다는 차가운 물을 더 선호하는 경향을 보인다”고 조언했습니다. 또한, 설거지를 잘 하지 않아 그릇에 세제 냄새가 남아있는 경우에도 민감한 고양이들은 물을 잘 마시려 하지 않는다고 하네요.
또 다른 건 바로 만병의 근원, 스트레스 관리입니다. 실제로 들희의 방광염 원인 중 하나는 우울증 증상이었습니다. 당시 민희 씨는 첫째 고양이 셰바의 관절염에 모든 신경을 집중하고 있었습니다. 자연스레 들희에게는 소홀할 수밖에 없었는데, 그때 방광염 증상이 나타났다는 거죠. 더군다나 방광염 초기에는 당시 수의사 선생님을 다치게 할 정도로 병원 스트레스가 심했다고 합니다. 이 또한 안정 효과가 있는 영양제를 급여하면서 해결했다고 합니다.
10년간 방광염과의 싸움을 이어간 끝에 어느새 안정을 찾은 들희와 민희 씨. 어느새 들희도 노년기에 접어들었습니다. 어느새 남은 시간에 대한 고민을 해야 할 시간이 왔습니다. 민희 씨는 들희를 어떻게 돌보고 싶을까요?
제가 미숙한 집사여서 고생을 많이 했는데, 앞으로는 더 많은 시간을 쏟아서 양치도 해 주고 좋은 것도 많이 해주고 싶어요. 뭐든 늦었다고 생각하지 않고, 앞으로 최선을 다할 거예요. 들희를 보낸 뒤에는 아직 다른 고양이를 키우고 싶은 생각은 없어요. 지금이 마지막이라는 생각으로 들희를 대하고 싶어요.
들희 보호자 구민희 씨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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