정기국회 마지막 날인 9일 여야가 내년도 예산안 처리를 위한 벼랑 끝 협상에 돌입했지만 접점을 찾지 못했다. 예산안 감액 규모와 법인세 인하 문제가 끝내 발목을 잡았다. 이로써 헌법이 정한 처리 시한(12월 2일)을 넘긴 데 이어 2014년 국회선진화법 도입 이후 처음으로 정기국회 기간 내 처리에도 실패했다는 불명예를 기록했다. 글로벌 복합경제위기 도래로 민생이 악화하고 있는데도 국정에 무한책임을 지는 여당은 정치력 부재를 드러내고, 야당은 윤석열 정부 첫 예산안 발목 잡기에 치중한 결과라는 비판이 비등하다.
고성까지 오간 협상, 법인세에 발목
국민의힘과 더불어민주당은 이날 오전부터 '2+2(원내대표·정책위의장)' 협의에 이어 김진표 국회의장 주재로 양당 원내대표가 회동하는 등 릴레이 협상에 나섰지만 합의에 이르지 못했다. 특히 김 의장과 양당 원내대표의 협상 테이블에서는 고성이 오가는 등 한때 험악한 분위기까지 연출됐다.
합의에 실패하자 민주당은 예산안 정부 원안이나 민주당 단독 수정안이라도 처리하자고 요구했지만, 김 의장이 거절하면서 무산됐다. 민주당은 예산안 처리가 어렵다면 전날 본회의에 보고된 이상민 행정안전부 장관 해임건의안이라도 처리하자고 했지만, 예산안 처리가 먼저라는 김 의장 반대에 막혔다. 김 의장은 "어느 한쪽 편을 들 수 없다. 오늘이라도 여야가 예산안 협의 절차를 거쳐달라. 지금이라도 합의하면 국민들은 정기국회 내 처리로 생각할 것"이라는 취지로 본회의 소집 요구를 거부했다고 국회의장실은 전했다.
내년 예산안 감액 규모부터 이견이 컸다. 국민의힘은 기존 정부안(전체 639조 원)에서 최대 3조 원까지만 감액할 수 있다는 입장을 고수한 반면, 민주당은 전임 정부 시절 연평균 감액 규모를 근거로 최소 5조 원을 줄여야 한다고 맞섰다. 또 국민의힘은 행안부 경찰국 예산 등 이른바 '윤석열표 예산'으로 불리는 정부 핵심 사업을 사수하기 위해, 민주당은 '이재명표 예산'으로 꼽히는 지역화폐 지원, 공공임대주택 공급 예산 등을 확보하기 위해 각자 주장을 굽히지 않았다.
예산부수법안 가운데선 특히 법인세 인하 문제가 협상의 최대 난제였다. 국민의힘은 경제위기 극복의 방편으로 국내 기업 활동을 촉진하고 외국인 직접투자를 유치하기 위해 법인세 최고세율을 현행 25%에서 22%로 인하할 것을 주장했다. 하지만 민주당은 "초부자 감세"라며 절대 수용 불가 입장을 고수했다. 법인세 최고세율을 22%로 인하하되 시행을 2년 유예하는 김 의장 중재안도 민주당은 받아들이지 않고 있다.
주 원내대표는 "민주당이 법인세를 낮춰 투자를 유치하는 정책을 끝내 거부하면 1년 뒤 있을 총선에서 국민들이 민주당을 퇴출시켜 (법안 처리가) 가능한 의석을 만들어 주는 것밖에는 길이 없다"고 성토했다. 김성환 민주당 정책위의장은 "다른 나라들은 기업의 '횡재세'를 걷겠다는데 정부 여당은 (상위) 0.01%의 법인 이익을 지키려 하고 있다"고 비판했다.
이와 함께 부부가 모두 기초연금을 수령하는 경우 20% 감액하는 조항의 폐지를 민주당이 강하게 주장하면서 협상이 막혔다. 또 주식 수익에 대한 과세를 늘리는 금융투자소득세 시행의 유예를 놓고도 주식 양도세 비과세 대상을 종목당 10억 원에서 100억 원으로 늘리자는 국민의힘 제안이 나와 협상에 난항을 겪었다.
여야는 예산안 처리 불발의 책임을 서로에게 떠넘겼다. 국민의힘 소속 여성의원들은 기자회견을 열고 "민주당이 예산안 처리를 임시국회로 지연시켜 회기 내 불체포특권을 이용해 이재명 대표의 사법 리스크를 회피하고 있다"고 비판했다. 반면 박 원내대표는 "우리로서는 정말 양보할 수 없는 최대치로 임했지만, 떡 하나를 줬더니 손모가지, 몸통까지 내놓으라는 형국"이라며 "집권 세력이 예산안 처리를 위해 어떻게든 양보안을 내놓아야 하는데, 그런 노력은 온데간데 찾을 수 없다"고 꼬집었다.
11일 이상민 해임안과 처리 가능성
여야는 정기국회 회기 내 처리 불발을 염두에 두고 임시국회를 10일부터 열기로 합의한 상태다. 예산안 처리의 마지노선은 11일로 재설정될 가능성이 점쳐진다. 이 장관 해임건의안이 11일 오후 2시 10분까지 처리되지 않으면 자동 폐기되기 때문이다. 국회법상 국무위원의 해임건의안은 본회의 보고 이후 72시간 이내에 표결하도록 돼 있다. 하지만 11일에도 협상이 타결되지 않으면 연말까지 예산안 정국이 이어질 가능성을 배제할 수 없다는 관측도 나온다.
한편 예산안을 제때 통과시키지 못했다는 비판이 커지자 여야 모두 고개를 숙였다. 주 원내대표는 "국정에 무한책임을 지는 여당으로서 정기국회 마지막 날까지도 예산안을 통과시키지 못해 국민에게 정말 죄송하다는 말씀을 드린다"고 말했다. 박 원내대표는 "여당과 함께 예산안의 남은 쟁점을 해소하기 위해서 최선을 다하겠다"고 말했다.
김 의장도 입장문을 내고 "주권자인 국민이 국회에 부여한 권한과 책임을 다하지 못해 국회의장으로서 송구스럽기 그지 없다"고 탄식했다. 동시에 김 의장은 "국정운영을 책임져야 할 정부, 여당이 다른 정치적 득실을 따지면서 예산안 처리에 혼신의 힘을 다하지 않고 있다는 의심을 받아서는 안 된다. 원내 절반이 훨씬 넘는 제1야당도 다수당의 책임을 다하고 있는지 자문해봐야 한다"며 쓴소리를 아끼지 않았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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