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나는 오페라를 좀 좋아한다

입력
2022.12.09 22:00
23면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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나는 오페라를 좀 좋아한다. 오페라에 관심 갖게 된 계기는 지난해 돌아가신 조수미씨의 어머니 김말순 여사 때문이었다. 1990년, 당시 잘츠부르크에 있던 조수미씨와 팩스인터뷰를 하고 추가로 어머니 김말순 여사와 인터뷰를 했다.

김 여사는 조수미씨가 오페라 '리골레토'의 질다 역으로 데뷔했다고 말씀하셨다. 오페라를 전혀 몰랐던 나는 리골레토가 뭔지, 질다 역은 또 어떤 것인지 알 수 없었다. 받아적기 바쁜 내게 어머니께서 말씀하셨다. 이런 글을 쓰려면 오페라를 공부해두면 좋겠다고.

민망했다. 그러나 음악전문 기자도 아닌 내가 오페라를 공부하겠다고 맘먹기는 쉽지 않았다. 그래도 오페라는 무엇인가 책을 좀 뒤적였다. 그러나 오페라를 보지 않고는 모르는 것. 하지만 20대였던 내가 오페라 극장으로 갈 리는 만무했다. 테이프를 사서 들었다. 당연히 음악이 들리지 않았다. 오페라는 내 관심에서 사라졌지만, 차 안에서 테이프는 반복해서 돌아갔다. 그러는 동안 조금씩 음악이 귀에 들어왔다.

시간이 지나 30대가 된 어느 날 보니 나는 오페라 강좌를 듣고 있었다. 비디오테이프로 오페라를 감상하고, 평론가 선생이 이런저런 해설을 하는 강좌였다. 그러나 여전히 잘 이해되지 않았다. 자막이 아예 없거나, 자막이 있어도 영어 자막이었다. 몇 차례 극장에 가기도 했으나 아직 젊고 월급쟁이였던 나는 오페라 티켓보다 사는 일에 돈 쓰기 바빴다.

그러는 동안 오페라 DVD가 나왔고, 너무나 친절하게 한글 자막이 있는 것도 있었다. DVD 가격은 오페라 티켓보다 훨씬 저렴했다. 무한반복도 가능했다. 신세계였다. 언제부턴가 나는 점심시간이면 광화문과 종로, 세운상가를 들락거리고 퇴근 후에는 밤마다 오페라를 틀어놓고 있었다. 이후 직장을 그만두고 출판사를 차렸다. 첫 책이 '김동규의 오페라 이야기, 이 장면을 아시나요'였다. (바리톤 김동규씨도 세계 무대에서 '리골레토'였다!)

당시 김동규씨는 CBS-FM의 음악프로그램을 진행하고 있었다. 그는 매주 오페라 아리아를 소개하고 그 배경을 이야기하는 '이 장면을 아시나요'란 코너에서 오페라를 너무나 재미있고 실감 나게 말했다. 나는 바로 섭외에 들어갔고, 아리아를 들으며 교정을 봤다. 바로 어제 일 같은데 10년도 더 전 일.

그런데 다가오는 17일, 우리 책방에서 오페라 갈라 콘서트를 한다. '라 보엠'과 '사랑의 묘약'. 테너 진세헌씨가 책방 송년음악회 프로그램을 보내왔을 때 나는 탄성을 내질렀다. 특히 내게 '라 보엠'은 오래전 차 안에서 테이프가 닳도록 들은 탓인지, 총명하지 않은 나도 곡을 다 기억할 정도. 그러고 보니 어느 여름날, 꼼짝 않는 올림픽대로에서 루치아노 파바로티와 미렐라 프레니의 노래를 한껏 틀어놓고 운전대를 잡고 있었던 저 젊은 시절의 나도 잠깐 보인다.

문득 생각한다. 만약 내가 김말순 여사를 인터뷰하지 않았다면 오페라에 관심을 갖게 됐을까. 그러나 분명한 것은 그분을 통해 오페라에 관심을 가졌다는 것. 아니었으면 나는 지금도 리골레토가 사람 이름인지, 뭔지 모른 채 살아가고 있을지 모른다. 그리고 세월이 지나 시골책방을 하면서 오페라 갈라 콘서트를 한다. 그것도 12월에 '라 보엠'을! 그러니 또 아는가. 책방의 갈라 콘서트를 통해 누군가는 또 오페라와 사랑에 빠질지.


임후남 시인·생각을담는집 대표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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