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핵미사일 24발 장착한 미 핵잠, 태안 앞바다에서 작전 벌였다

입력
2022.12.13 12:00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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서해, 미·중 핵전력 각축장이 되다


미국 해군의 로스앤젤레스급 핵추진 잠수함인 '키웨스트함(SSN 722·6900t급)'이 부산 남구 해군작전사령부 부산작전기지에 정박해 있다. 이 잠수함은 길이 110m, 최대속력 29노트, 승조원 140~150명이다. 연합뉴스

미국 해군의 로스앤젤레스급 핵추진 잠수함인 '키웨스트함(SSN 722·6900t급)'이 부산 남구 해군작전사령부 부산작전기지에 정박해 있다. 이 잠수함은 길이 110m, 최대속력 29노트, 승조원 140~150명이다. 연합뉴스

최근 들어 북한의 군사 도발이 점점 더 수위를 높여가고 있다. 대규모 포격 훈련이나 항공기를 동원한 무력시위와 같은 전술적인 수준에서 대륙간탄도미사일(ICBM) 발사라는 전략적 수준에 이르기까지, 북한의 도발은 대한민국은 물론 미국 본토를 위협하는 정도로 확대되고 있다. 에이브릴 헤인스 미 국가정보국장이 말한 것처럼 북한의 이러한 도발은 '중국이 책임을 묻지 않을 것'이라는 인식에 바탕을 두고 있는 것으로 보인다. 어쩌면 현재의 신냉전 체제 강화 구도를 읽고 그에 맞춰 자신들의 생존과 이익을 추구하기 위해 철저히 계산된 행위인지도 모른다.

북한은 지난해 6월 11일 김정은 주재로 노동당 중앙군사위원회 확대회의를 열고 전략군 개편을 결정했다. 이 개편을 통해 북한은 자신들의 전략군에 미·중 패권 경쟁 구도 하에서 중국의 전위대(前衛隊) 역할을 맡겼다. 중국과 미국의 전쟁이 발발하면, 전략군의 중·단거리 미사일 전력은 한국과 일본, 괌 등 미국의 전진기지를 집중적으로 타격하고, 미국 전역을 사정권에 두는 화성-17형 등 대륙간탄도미사일 전력은 중국의 ICBM 전력과 함께 미 본토 타격을 맡는 식이다. 이러한 상황 때문에 지난 11월 14일 인도네시아 발리에서 열린 G20 정상회의 기간 중 조 바이든 미국 대통령은 시진핑 중국 국가주석에게 북한 문제에 대해 '국제사회 구성원으로서 책임 있게 행동해야 한다'라며 우회적인 경고 메시지를 보냈지만, 중국 측은 사실상 이를 거부했다.

미 최일선 핵공격 자산 연결 기체, 서해안 선회

중국이 이에 대한 거부 입장을 보이자, 미국은 곧바로 대응 조치에 나섰다. 중국이 바이든 대통령의 요청을 거부한 당일, 충남 서산·아산·천안 일대에 기체번호 163918로 등록된 미 해군 소속 항공기 1대가 떴다. 일본 혼슈 야마가타현 상공에서부터 ADS-B 신호를 송출하며 한반도 서해안을 선회한 이 기체는 미군에서 ‘TACAMO(Take Charge and Move Out)’로 불리는 E-6B ‘머큐리’였다. TACAMO는 핵전쟁 상황에서 미국 전쟁지도부와 최일선 핵공격 자산을 연결해주는 역할을 하는 항공기다. ICBM 기지나 잠수함발사탄도미사일(SLBM)을 탑재한 전략원자력잠수함 인근 하늘에서 선회하며 대기하고 있다가, 백악관 벙커나 에어포스원으로부터 발사 코드가 포함된 핵공격 명령을 수신하면 이를 ICBM 기지나 잠수함에 전달해주고 최전선에서 핵공격작전을 통제하는 임무를 수행하는 핵공격 통제기다.


미 전략 항공기 E-6B가 국내에서 작전 중이었다는 사실을 보여주는 국내 선회 기록.

미 전략 항공기 E-6B가 국내에서 작전 중이었다는 사실을 보여주는 국내 선회 기록.

ADS-B 데이터를 추적해 보면, 미국의 E-6B는 11월 초부터 이틀 간격으로 한반도 서해 상공에 나타나고 있다. 이는 트라이던트 II SLBM 24발을 탑재한 미 해군 전략원자력잠수함이 서해 태안반도 인근 수중에서 전략 초계를 수행하고 있다는 것을 의미한다. E-6B의 평시 비행 항적으로 추적해 보면, 이들이 주로 비행하는 공역은 미국 동부와 서부 해안, 그리고 ICBM 기지가 몰려 있는 중부 내륙 상공이다. 평시 미국 전략원자력잠수함의 전략초계 해역이 태평양 연안의 캘리포니아 앞바다와 대서양 노스캐롤라이나·사우스캐롤라이나 인근이기 때문이다. 그런 E-6B가 미국 본토를 벗어난 타 대륙에서 발견되는 것은 상당히 이례적인데, 이러한 움직임은 해당 지역 인근 수중에 이들 잠수함이 작전 중인 시그널로 풀이된다. 다시 말해 지난 11월의 E-6B 한반도 출현은 24발의 핵미사일을 날릴 수 있는 미국 잠수함이 북한과 중국의 코앞까지 들어왔을 가능성을 시사한다.


중국 관영 중국중앙(CC)TV가 29일 중국군의 최신형 전략 핵추진잠수함인 창정-18호(094A급)가 훈련하는 모습(사진)을 보도했다. 웨이보 캡처

중국 관영 중국중앙(CC)TV가 29일 중국군의 최신형 전략 핵추진잠수함인 창정-18호(094A급)가 훈련하는 모습(사진)을 보도했다. 웨이보 캡처


중 핵잠 흑산도 진출에 맞선 미국의 대응

미국이 이러한 고강도 전략 압박에 나선 것은 중국이 북한 문제에서 역할을 해야 한다는 미국 측의 요청을 거부한 데 대한 반발인 동시에, 지난 9월 26일 흑산도 앞바다에 중국 094A형 전략원자력잠수함이 나타났던 것에 대한 대응 작전 성격도 있다. 이 잠수함이 흑산도 앞바다에서 JL-3 SLBM을 발사할 경우 워싱턴 D.C.와 뉴욕, 보스턴 등 동부 대도시가 동시에 핵공격을 받을 수 있기 때문에 미 해군의 서해 지역 전략 초계 사실을 노출시키면서 한반도 인근 해역은 미국 주도의 '자유 진영의 영역'이라는 일종의 ‘영역 표시’를 한 셈이다. 과거 청일전쟁과 러일전쟁이 조선의 의지와 전혀 관계없이 조선 땅에서 벌어진 것처럼 우리 정부, 우리 국민의 의사와 관계없이 한반도는 미국과 중국 패권경쟁의 최전선으로 굳어지고 있다는 얘기이다.

인류의 역사는 반복되고, 그 역사는 전쟁으로 점철돼 있다고 해도 과언이 아니다. 극단적으로 탐욕에 눈이 멀었거나, 정신적으로 이상이 있는 사람이 아니라면 누구도 전쟁이라는 끔찍한 폭력 행위를 좋아하지 않을 것이다. 하지만 인류가 그토록 두려워하고 피하고 싶어했던 전쟁은 인류 역사와 언제나 함께해 왔다. 소련 혁명가 레프 트로츠키가 “당신은 전쟁에 관심 없을지 모르지만, 전쟁은 당신에게 관심이 있다”고 말했던 것처럼 전쟁은 우리가 관심이 없다고 해서 피할 수 있는 게 아니다. 동서고금을 막론하고 전해지는 전쟁을 피하는 가장 확실한 방법은 단 하나뿐이다. 전쟁에 대비하는 것이다. 사마양저는 “천하가 비록 태평하더라도 전쟁을 잊으면 반드시 위태로워진다(天下雖安 忘戰必危)”라고 했고, 로마에서는 “평화를 원하거든 전쟁을 준비하라(Si vis pacem, para bellum)”고 했다. 전쟁에 대비하는 방법으로는 스스로 힘을 키우기와 강한 친구 사귀기가 있다.


핵무기 제외하면 세계 군사력 5위권

우리나라는 박정희 정부 시절부터 시작된 자주국방 정책으로 스스로의 힘을 키우는 한편, 세계 최강 패권국인 미국과 상호방위조약을 체결함으로써 거의 70여 년간, 단군 이래 가장 긴 평화와 번영의 시간을 누리고 있다. 하지만 영원한 것은 없고, 역사는 반복된다. 우리나라는 한미동맹이라는 틀 안에서 세계 10위권 경제대국으로 성장했고, 그에 맞춰 재래식 군사력 면에서는 세계 5위권 진입을 노려볼 만한 강력한 힘을 기르는 데 성공한 국가로 평가된다.

그러나 지금 주변 상황을 생각해볼 때 대한민국의 안보가 걱정할 것 없이 탄탄하다고 자신있게 말할 수 있는 사람은 과연 몇이나 될지 궁금하다. 물론 우리나라가 재래식 군사력에 있어 대단히 강력하다는 것은 객관적으로 자명한 사실이다. 현재 시점에서 미국과 중국을 제외하면 1,700대가 넘는 3세대 전차, 2,000문이 넘는 자주포, 300대가 넘는 4세대 이상급 전투기, 18척이 넘는 중형 잠수함과 20척이 넘는 미사일 탑재 중·대형 전투함을 보유한 나라는 찾아보기 어렵다. 유엔 안전보장이사회 상임이사국이라는 ‘군사강국’ 영국과 프랑스조차 전차는 각각 230여 대와 220여 대, 자주포는 각각 90여 문, 4세대 이상급 전투기는 각각 160여 대와 200여 대, 잠수함은 각각 10척과 6척, 중·대형 전투함은 각각 18척과 20척에 불과하다. 이를 생각해보면 대한민국은 핵무기를 제외하면 세계 5위권에 넣어도 이상하지 않을 정도로 강력한 군사력을 가진 나라다.

윤석열 대통령이 지난달 24일 오후 경남 창원 한화에어로스페이스를 방문해 K9 자주포와 K10 탄약운반장갑차 등을 관람하고 있다. 사진=대통령실 제공

윤석열 대통령이 지난달 24일 오후 경남 창원 한화에어로스페이스를 방문해 K9 자주포와 K10 탄약운반장갑차 등을 관람하고 있다. 사진=대통령실 제공

문제는 ‘상대성’이다. 일찍이 한반도가 아닌 유럽이나 아프리카, 중남미 어딘가에 우리 조상들이 터를 잡고 나라를 세웠다면 현재 대한민국의 군사력만으로도 우리는 지역 패권국으로 군림할 수 있었을 것이다. 하지만 불행히 주변에 세계 군사력 순위 1~4위 국가가 들어서 있거나 관심을 두고 있는 한반도에 자리를 잡은 탓에 그럴 수 없었다. 지난 수천 년간은 동양의 패자(霸者)였던 중국과 패자를 자처했던 일본이 쉴 새 없이 들볶았고, 20세기 들어서는 미국·소련·중국·일본이라는 강대국들의 등쌀에 시달린 곳이 한반도다. 요컨대 우리는 워낙 강한 나라들이 밀집해 있는 지역에 나라를 세운 죄로 우리 의지나 능력과 관계없이 주변의 안보 상황 변화에 휘둘릴 수밖에 없는 역사를 살아왔고, 앞으로도 그럴 것이다.

이미 주변국의 군비증강 폭주는 시작됐다. 중국의 군비 증강 속도가 예상을 뛰어넘고 있다는 미 군·정보기관의 보고서가 쏟아지고 있고, 일본은 아예 국방예산 2배 증액을 선언하며 대대적인 군비 증강에 나섰다. 소련 붕괴 후 끝난 줄로만 알았던 냉전이 30여 년 만에 다시 시작되고 한반도가 그 최전선이 되어가고 있는 지금, 우리 스스로 지킬 수 있는 힘을 키우면서 지혜로운 대외 전략으로 위기를 넘겨야 한다.


이일우 자주국방네트워크 사무국장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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