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선진 우주기관에서 배운다]
②JAXA, 우주전략실 신설로 날개 달다
편집자주
정부가 얼마 전 우주항공청 설립 계획을 공식 발표함에 따라, 한국도 몇 년 안에 우주 사업을 전담하는 기관을 가지게 됩니다. 우주 개발 후발국가인 한국에게 우주 전담기관은 그야말로 완전한 백지 상태에서 새로 그리는 그림입니다. 이미 우리보다 우주 개발을 일찍 시작한 미국·일본·유럽·인도 등 우주 전담기관을 살펴보고, 무엇을 배우고 어떤 것을 피해야 '한국형 나사'를 성공하는 조직으로 만들 수 있을까를 함께 고민해 봅니다.
윤석열 대통령은 지난달 우주경제 로드맵을 발표하면서 "세계 5대 우주기술 강국으로 도약하겠다"는 목표를 제시했다. 그런데 우주 5대강국이 되려면 한국이 어떤 나라들을 제쳐야 하는 것일까?
우주개발의 독보적 1위는 당연히 미국이다. 이어 중국과 러시아 정도가 그 뒤를 바짝 뒤쫒고 있으며, 프랑스를 주축으로 한 유럽연합(EU)의 위상도 공고하다. 여기까지가 벌써 4개. 여기에 더해 '우주강국'을 언급할 때 빠지지 않는 나라가 바로 일본이다. 한국이 5대 강국이 되려면 일본보다 앞서거나 적어도 비슷한 수준까지는 올라가야 하는 셈이다.
(1)한 명의 천재가 패러다임을 바꿀 수 있다
일본은 미래 자원의 보고로 알려진 소행성에서 샘플을 채취해 지구로 돌아온 유일한 국가다. 2003년 발사된 탐사선 하야부사는 소행성 이토가와에 착륙했다가 2010년 소행성 표본을 가지고 지구로 귀환했다. "일본이 없으면 국제우주정거장(ISS) 연구원들이 굶어죽는다"(우주 물자 수송을 많이 한다는 얘기)는 우스갯소리가 있을 정도로 국제 협력 분야에서도 상당한 역할을 하고 있다. 올해 6월 한국이 성공한 자력 위성 발사는 이미 1970년 성공했다.
일본 우주개발의 역사는 여러모로 독특하다. 미국과 러시아(구 소련) 등이 국가나 군의 주도로 나선 것과 달리, 일본의 우주개발은 한 명의 천재 과학자로부터 시작됐다. '일본 우주개발의 아버지'로 불리는 이토카와 히데오(系川英夫) 전 도쿄대 교수(1912~1999)가 바로 그 사람이다.
제2차 세계대전 때 항공기 제조회사에 근무하며 전투기 하야부사 등을 설계했던 이토카와는 1945년 일제 패망 후 항공·우주분야 연구가 금지되자, 의료기기 등 다른 분야를 연구했다. 그의 꿈을 다시 깨운 건 미국의 우주개발이었다. 1952년 12월 시카고대 메디컬스쿨 초청으로 미국을 6개월 간 방문했는데, 당시 미국은 인간을 우주에 보낼 준비를 하고 있었다.
일본으로 돌아온 이토카와는 5명의 동료와 도쿄대 로켓연구 동아리를 만들고, 로켓개발을 시작했다. 처음에 개발한 것은 무게 200g짜리 '펜슬로켓'과 무게 10㎏짜리 '베이비로켓'이었다. 이후엔 몸집을 실물로켓으로 키운 '카파' 개발에 착수했다. 컴퓨터 설계 기술이 없어 수동식 계산기에 의존해 실패와 설계 변경을 계속하는 과정이었다.
결국 이토카와 연구팀은 1958년 9월 '카파-6' 로켓으로 고도 60㎞ 대기 관측 데이터 수집에 성공했다. 당시 이 정도 고도에 로켓을 올린 나라는 미국, 소련, 영국 그리고 일본 뿐이었다. 연구팀은 여기서 그치지 않고 1960년 7월 '카파-8' 로켓을 발사해 고도 200㎞에 도달했다.
이토카와 연구팀의 성과는 세계를 놀라게 했다. 일본의 로켓은 미국, 소련과 달리 고체연료 로켓이었다. 연료 분사 등 액체연료 발사체 기술이 없어 고체연료를 채택한 것이지만, 고체로켓의 한계를 높여가는 과정에서 개발된 고분자화합물 활용 복합추진제는 당시 미국도 막 개발하기 시작한 최신 기술이었다.
성과에 주목한 도쿄대는 이토카와 연구팀을 위해 1964년 연구소를 만들었다. 이 연구소가 바로 현재 일본우주항공연구개발기구(JAXA)의 전신 중 하나인 우주항공연구소(ISAS)다. 한편 이토카와 교수는 1970년 '람다-4S'로켓으로 인공위성 '오스미'를 우주저궤도에 안착시키는 데 성공하는데, 이는 세계 4번째 인공위성 자력 발사이자, 세계 최초로 ①대학이 발사한 ②유도제어장치 없는 ③고체연료 인공위성 발사였다. 2010년 세계 최초로 소행성 샘플을 채취해 지구로 귀환한 성과도 ISAS가 주도한 것이다.
(2)독자 기술이 있으면 '기회'는 오기 마련
이렇게 대학 연구팀이 로켓을 수출하고 미사일 개량이 가능한 정도의 로켓 기술을 보유하자, 변화에 소극적이었던 일본 정부도 더이상 손을 놓고 있을 순 없었다. 일본은 1963년 과학기술청 안에 항공우주기술연구소(NAL)를 설립하고, 1969년 산하 특수법인 우주개발사업단(NASDA)을 만들었다.
정부의 역할은 국제협력에 집중됐다. 당시 일본의 고체로켓 개발에 놀란 미국은 자국 기술 일부를 이전해 주더라도 일본의 우주개발을 미국의 관리 하에 두고 싶어했다. 미국의 견제와 관심은 양국 협정으로 이어졌다. 미국은 1967년 11월 미일 정상회담, 1969년 7월 미일 우주협정을 통해 델타 로켓(보잉이 개발한 우주로켓)의 기술이전을 허가했다. 핵심 기술을 비밀로 유지하는 '블랙 박스' 조건이 달렸지만, 일본 내에서 델타 로켓의 면허 생산이 가능해졌다.
이를 계기로 일본의 로켓 기술은 다시 비약적으로 발전했다. 액체로켓이 없던 일본은 1단에 미국 'MB-3엔진'을 장착한 'N-1'로켓을 개발, 1975년 9월 첫 발사에 성공하며 액체로켓의 시대를 열었다. 'H-1' 로켓에선 2단에 독자개발 액체엔진을 장착했고, 1994년 2월엔 1단 엔진까지 100% 국산화에 성공한 'H-2' 로켓을 발사하며 확고부동한 우주선진국 대열에 오른다. 미국에 의지한 액체로켓 개발이 가능해진 뒤에도 포기하지 않고 자체개발을 이어가 20여년 만에 성과를 낸 것이다.
'H-2'를 개량한 'H-2B'는 현재도 ISS 수송에서 활약하고 있다. 로켓 전문가 장영근 항공대 교수는 "일본이 개발한 엔진은 델타 엔진과는 전혀 다른, 완전히 새로 만든 엔진으로, 액체수소와 액체산소를 추진제로 사용해 추력 성능도 뛰어났다"며 "높은 목표를 설정하고 여러번 실패하더라도 결국 해내는 혁신과 도전을 배워야한다"고 말했다.
(3)부처 이기주의를 경계하라
경제 호황을 구가하던 1980년대 일본은 국제 우주사업에도 적극적으로 뛰어든다. 특히 일본 정부는 ISS 계획이 가시화된 1980년대 초반부터 우주개발계획을 손보는 등 발빠르게 대응했고, 1989년 국회 비준을 통해 ISS 참여를 확정했다.
여기에 더해 일본 정치인들은 선진국 반열에 오른 우주기술을 정찰 위성 등 안보 분야에도 활용하고 싶어 했다. 1990년대 들어 북한의 미사일 도발은 강화됐고, 2000년 이후엔 중국이 우주활동을 강화했다. 범부처 국가적 차원의 접근이 필요했다.
변화는 단계적으로 진행됐다. 처음엔 연구기관 조직 개편만 단행했다. 문부성과 과학기술청이 문부과학성으로 합쳐지고 특수법인 개혁이 이뤄지면서 과학기술청 산하 NASDA와 문부성 산하 ISAS, 그리고 독립법인 NAL 등 3개 기관이 2003년 JAXA로 재탄생했다. 1950년대 이토카와 교수가 로켓 연구팀을 만든 이후 50년 가까이, 고체로켓과 액체로켓을 중심으로 이원화돼 있던 우주개발이 처음 통합된 것이다.
하지만 '우주개발 컨트롤 타워'가 필요하다는 주장은 오히려 커졌다. 2000년대 초반 일본에는 이미 우주 관련 사업이 넘쳐났지만, 문부과학성 만으론 부족했다. 이케우치 사토루 일본종합연구대학원대학 명예교수는 저서 '일본의 우주개발'에서 "정보수집위성(내각부·방위성), 우주산업(경제산업성), 환경조사(환경성), 원격통신 관재(총무성), 기상(국교성) 등 여러 기관이 관여하는 문제가 많았다"고 평가했다. 실제 설립 초기 JAXA에는 각 부처에서 파견된 관료들이 유입됐는데, 그들이 친정 부처를 위한 행동을 이어가면서 문제가 된것으로 알려졌다. 결국 필요한 것은 단순한 연구소 통합이 아니라 정부 거버넌스 자체의 개편이었다.
이런 요구는 2008년 우주기본법 제정으로 이어졌다. 내각부에 일본 우주개발전략 수립의 최상위 기관인 우주개발전략본부(본부장 총리)가 설치됐다. 한국으로 따지면 대통령실에 설치돼, 대통령이 직접 본부장을 맡은 것이다.
그러나 '우주청'이라는 별도 기관을 두는 것에 대해서는 의견이 갈렸다. 특히 문부과학성이 이를 반대하는 상황이었다. 결국 정부는 수차례 전문가위원회를 거쳐 '문부과학성을 주무부처로 남기되, 우주개발 총괄업무는 내각부로 가져오는' 절충안을 택했다. 그 결과가 2012년 내각부 설치법 개정으로 이어지면서, 일본의 우주개발은 문부과학성 중심 체제에서 내각부 중심 체제로 변화했다.
(4)연구원 중시하는 문화를 배워라
우주 전문가들은 한국과 행정조직이 비슷한 일본의 사례를 참고해야 한다고 강조한다. 한 우주 관련 연구원은 "일본은 JAXA를 문무과학성에 두면 범부처 협력이 불가능하다는 것을 깨닫고, 지금의 형태로 변화시킨 것"이라며 "일본의 시행착오에서 교훈을 얻어야 한다"고 강조했다.
조직 체계와 별도로, 일본의 우주산업에서는 배워야 할 것들도 많다. 연구원을 중시하고 끊임없이 교류·소통하는 문화가 그것이다. 김종범 한국항공우주연구원 책임연구원은 업무별로 파견 등 교류가 많은 일본의 조직 문화를 장점으로 꼽았다. 그는 "일본 문부과학성 우주 담당 과를 방문할 일이 있었는데, 그곳에는 JAXA에서부터 우주산업체 사람까지 파견 인력이 다양했다"며 "이같은 교류가 많다 보니, 행정과 연구가 분리돼 있어도 시너지를 내는 것으로 보인다"고 말했다. JAXA 등 세계 유수의 연구소에서 활동했던 이연주 기초과학연구원 기후및지구과학연구단장은 "JAXA는 장기적으로 새로운 프로젝트를 진행할 때 과학적·기술적 타당성을 의논하는 기회를 갖는다. △연구자들의 관심사와는 부합하는지 △필요한 기술들은 무엇이고 △어느정도로 구현가능한지 △비용은 얼마인지 등을 다양한 연구타겟들에 대해 논의한다. 정부의 상의하달 뿐 아니라, 연구자들의 하의상달 제안들이 활발하게 검토된다"고 말했다.
독자기술을 위해 끝까지 도전하는 자세, 적극적인 국제협력 등도 배워야 할 점이다. 신상우 국가우주정책연구센터 연구위원은 "일본은 독자기술 개발을 밀어붙이면서, 이를 토대로 미국의 지원이나 국제협력을 따냈다"며 "국제협력과 연구개발 모두를 아우를 수 있는 조직개편이 필요하다"고 말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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