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재벌 몸에 서민 영혼, 90년대의 이면...회귀 판타지가 특별해진 이유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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재벌 몸에 서민 영혼, 90년대의 이면...회귀 판타지가 특별해진 이유

입력
2022.12.07 19:00
수정
2022.12.07 19:06
19면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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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재벌집 막내아들' 시청률 20% 눈앞

드라마 '재벌집 막내아들'은 1990년대를 기존 대중문화와 같이 낭만과 추억의 시대로만 그리지 않는다. 민주화 시대라는 이면 뒤에 정경유착, 권언유착으로 서민들의 피해가 막심했던 실상을 들여다본다. JTBC 제공

드라마 '재벌집 막내아들'은 1990년대를 기존 대중문화와 같이 낭만과 추억의 시대로만 그리지 않는다. 민주화 시대라는 이면 뒤에 정경유착, 권언유착으로 서민들의 피해가 막심했던 실상을 들여다본다. JTBC 제공

JTBC 드라마 '재벌집 막내아들'의 인기가 심상치 않다. 방영 단 3주(8회) 만에 시청률 19.4%(닐슨코리아 기준)를 기록하며 20% 돌파를 눈앞에 두고 있다. 올여름 신드롬급 인기를 누렸던 ENA 드라마 '이상한 변호사 우영우(최고 시청률 17.5%)'도 넘지 못한 20%의 벽에 근접했다.

장르는 웹소설, 웹툰에서 흔한 회귀 판타지다. 재벌가인 '순양'의 비서로 일하다 억울하게 죽은 주인공 윤현우(송중기)가 순양가의 3세 진도준으로 다시 태어나 그룹을 차지하려는 치열한 다툼에 뛰어든다는 줄거리다. 미래를 안다는 장점을 활용해 복수를 하는 회귀물의 클리셰를 따르면서도, 개인의 서사와 당대의 사회상을 유기적으로 보여준다는 게 이 드라마의 특징이다.

①분당 땅 5만 평을 매입할 때의 대리만족

드라마 '재벌집 막내아들'의 공식 포스터. 8회 만에 시청률 20% 벽에 근접했다. JTBC 제공

드라마 '재벌집 막내아들'의 공식 포스터. 8회 만에 시청률 20% 벽에 근접했다. JTBC 제공

드라마는 30대 후반 이상의 시청자라면 직·간접적으로 경험했을 현대사로 빼곡하다. 영화 '타이타닉'의 전 세계적 흥행부터 노태우·김영삼·김대중 대통령 당선, KAL기 폭파 사건, 반도체 개발 사업의 성공, 분당 신도시 개발, 1997년 외환위기, 지금의 DMC를 만든 서울시의 새서울타운발전 구상 등이다. 당시의 뉴스 자료 화면도 빈번하게 등장한다. 이런 역사적 사건은 회귀라는 판타지적 설정으로 자칫 약해질 수 있는 스토리의 개연성을 뒷받침한다.

드라마 평론가인 윤석진 충남대 국문학과 교수는 "현실을 배경으로 하되 허구의 인물들이 들어가 있고, 그 허구의 인물들조차 누군가를 연상하도록 구성했다"며 "현실과 허구의 경계를 넘나들면서 시청자의 호기심과 상상력을 자극하고 있다"고 말했다.

시청자는 인생 2회 차인 진도준이 앞으로 일어날 일들을 알고 있다는 점을 이용해 상황을 유리하게 만들 때마다 대리만족을 느낀다. 그는 할아버지인 진양철(이성민)에게 도움이 될 만한 정보를 제공한 뒤, 황무지이던 분당 땅 5만 평을 선물로 받는다. 분당이 이후 신도시로 개발되자 땅값은 240억 원으로 뛰고, 이를 달러로 환전해 외환위기에 대비하는 모습은 시청자에게 통쾌함을 선사한다. 윤 교수는 "미래에서 온 주인공이 투자 아닌 투자를 통해 자본을 축적하고 자본 권력인 할아버지도 꼼짝 못 하게 하는 모습이 보는 사람들의 세속적인 욕망을 충족시켜주고 있다"고 분석했다.

②민주화 시작된 1990년대를 되짚다

1997년 외환위기 당시 벌어진 금모으기 운동. 한국일보 자료사진

1997년 외환위기 당시 벌어진 금모으기 운동. 한국일보 자료사진

진도준은 막대한 자본과 정보력을 가진 상류층이자 기득권이다. 회귀 전(윤현우)에는 대학등록금을 걱정해야 했던 서민이었다. 하지만 인생역전했다며 혼자 잘 먹고 잘 사는 데 집중하지 않는다. 드라마는 재벌 3세의 몸과 서민의 영혼을 가진 그의 입을 빌려 민주화로 포장됐지만 실은 정경유착, 권언유착이 난무했던 1990년대의 이면을 파헤친다.

인수하려는 아진자동차의 고용승계를 거부하는 진양철 회장은 "머슴을 키워가 등 따숩고 배부르게 만들믄 와 안 되는 줄 아나? 지가 주인인 줄 안다. 정리해고 별거 아이다. 누가 주인인지 똑똑히 알려주는 기다"라고 말한다. 반면 진도준은 "IMF 이후 모두가 고통 분담을 말하고 있습니다. 고통을 가져온 사람들은 따로 있는데, 왜 힘없는 서민들만 고통을 전담해야 합니까?"라고 반발하거나 순양을 사지 말고 상속받으라는 조언에 "북쪽에서 김씨 부자가 권력을 세습하는 건 그렇게들 못 참아 하면서 남쪽에서 재벌 3세가 경영권을 세습하는 건 왜 다들 당연하게 여기는 걸까요. 어차피 자격이 검증되지 않았다는 건 마찬가지 아닌가요?"라고 되묻는다.

1998년 1월 14일 한국일보 1면. 강도 높은 정리해고를 예고하는 기사가 실려 있다. 한국일보 자료사진

1998년 1월 14일 한국일보 1면. 강도 높은 정리해고를 예고하는 기사가 실려 있다. 한국일보 자료사진

김성수 대중문화 평론가는 "응답하라 시리즈가 우리에게 1990년대를 아주 성공적인 내러티브로 던져줬지만 그 시대를 낭만적이고 아름다운 시절로 그리는 한계도 분명했다"며 "재벌집 막내아들은 1990년대를 추억으로 소비하는 게 아니라 우리가 지금 깨달은 것들을 적극적으로 개입시켜 바꾸려 하고 있다"고 설명했다. 그러면서 "우리가 응답하라 시리즈에서 '복고(Retro)'를 발견했다면 재벌집 막내아들은 '뉴트로(Newtro)'로 설명할 수 있다"고 분석했다.

김 평론가는 "진도준의 회귀 시점이 1987년이라는 점에 주목할 필요가 있다"고도 했다. 1987년은 처음으로 대통령 직접 선거가 치러지면서 군사독재라는 과거를 청산하고 민주주의가 시작된 해로 기억된다.

③이성민의 열연, 주3회 파격 편성

드라마 '재벌집 막내아들'에서 '순양'의 회장, 진양철 역을 맡은 배우 이성민. JTBC 제공

드라마 '재벌집 막내아들'에서 '순양'의 회장, 진양철 역을 맡은 배우 이성민. JTBC 제공

배우들의 열연도 인기 비결이다. 송중기와 이성민이 대결하는 신은 팽팽한 긴장감을 형성하며 극의 몰입도를 높인다. 특히 이성민은 매번 주름, 검버섯 등 특수 분장을 하며 본인 실제 나이(54세)보다 10세 이상 많은 역을 소화해 냈다. 그는 최근 열린 제작발표회에서 "이 드라마가 기존 드라마들에서 나온 재벌에 대한 묘사보다 리얼리티가 있다고 생각한다"며 "진양철이라는 캐릭터가 근현대사 여러 인물들을 연상시키면 좋겠다는 생각으로 연기했다"고 말했다.

과거와 달리, 미니시리즈를 주 3회(금, 토, 일)로 파격 편성했다는 점도 이례적이다. 연출을 맡은 정대윤 PD는 제작발표회에서 "처음에는 무리가 아닌가 싶기도 했지만, 요즘 웬만한 드라마들이 OTT에서 공개될 때 전 회차가 한꺼번에 공개된다"며 "시청자들이 원하는 트렌드라고 생각했다"고 답했다. 주 3회 편성이라는 모험은 드라마 시청률이 1회 6.1%에서 8회 19.4%로 꾸준히 상승하면서 결과적으로 성공한 전략이 됐다.

송옥진 기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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