연극 '굿모닝 홍콩' 리뷰
'장사모(장국영을 사랑하는 모임)' 회원 4명이 2019년 6월 홍콩으로 장국영 추모 여행을 떠난다. 예년 같았으면 홍콩의 배우 겸 가수 장국영이 거짓말처럼 세상을 등진 만우절에 홍콩을 찾았어야 했지만 모임 회장 이정환이 하필 4월 1일에 치질 수술을 받아 일정이 미뤄졌다. 도착한 홍콩은 반(反)정부 시위가 한창이다. 중학교 국사 선생님인 회원 김원태가 시위의 도화선인 범죄인 인도법(송환법)에 대해 설명하려 들지만 정치는 이들의 관심사 밖이다. 그저 장국영이 출연한 영화 '아비정전'의 오마주 영상물을 찍어야 할 노스포인트로 가는 길목이 시위로 막힌 게 답답할 따름이다.
'굿모닝 홍콩'은 1990년대에 전성기를 구가한 홍콩 영화를 대표하는 배우 장국영과 2019년의 홍콩을 상징하는 송환법 반대 시위를 엮어 민주주의 쟁취의 역사를 되돌아보게 하는 연극이다. 주인공들이 사랑한 장국영의 영화가 그랬듯 연극은 개인적 상황을 렌즈 삼아 현대사를 들여다본다. 무대 전면 스크린에 띄운 홍콩의 풍경과 장국영의 영상, 등려군의 '월량대표아적심'을 비롯한 1990년대 홍콩 영화 음악까지 동원해 270석 규모의 소극장을 홍콩으로 옮겨 놓는다.
장사모의 일정은 회원인 레슬리 최의 처남이자 나이키 유튜브 채널 운영자인 김기찬이 운동화 한 짝을 잃어버리면서 꼬이기 시작한다. 기찬은 희귀품인 '87년 나이키 에어조던 2'를 구입하기 위해 장사모의 홍콩 여행에 합류했다. 우연히 시위대의 손에 들어간 800만 원짜리 운동화 한 짝에만 관심을 뒀던 주인공들은 극이 종반을 향해 가면서 민주주의의 가치와 시위대의 투쟁에 공감하게 된다.
남파 간첩과 영화 제작을 소개로 한 '깐느로 가는 길', 삼청교육대를 다룬 '타자기 치는 남자' 등 동시대적 주제를 연극에 담아 온 극단 명작옥수수밭은 이 작품을 통해 근현대사적 관심의 범위를 아시아로 넓혔다.
연극은 중국 반환 후의 예측할 수 없는 미래에 대한 불안감으로 독특한 감성을 녹여냈던 1990년대 홍콩 영화와도 닮았다. 장국영 주연 영화 '천녀유혼' 재연 장면을 B급 감성 가득한 코미디로 풀어내는가 하면 홍콩 시위대의 모습은 중국어와 광둥어까지 동원해 사실적으로 그린다. 대학로 소극장 무대에서 펼치기에는 출연진이 많고 장면 전환도 잦아 다소 산만한 느낌도 있지만 민주화 운동이라는 묵직한 주제를 교조적 언어가 아닌 가벼운 이야기로 자연스럽게 풀어낸 장점이 돋보이는 작품이다. 공연은 11일까지 민송아트홀 1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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