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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그들' 대신 이름으로 불러주세요

입력
2022.12.06 22:00
27면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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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게티이미지뱅크

ⓒ게티이미지뱅크

"그들의 목소리에 귀를 기울여 서비스를 기획했습니다."

"어떻게 하면 그들을 위한 상품을 만들 수 있을까 생각했습니다."

"그분들을 배려한 서비스가 꼭 필요합니다."

사회적 가치에 대한 각종 공모전에 가 보면 발표자들이 많이 하는 말이다. 보통 이런 공모전에서는 어떤 사회문제를 해결하기 위해 특정 취약계층을 겨냥한 서비스를 기획하고 발표하는 경우가 많다. 올해 장애이동권 이슈가 불거지다 보니 이런 공모전에서도 장애인이 처한 문제를 해결하기 위한 아이디어 제안이 상당히 많았다.

그런데 흥미로운 게 하나 있다. 이렇게 장애인을 대상으로 하는 서비스를 개발하려는 팀 대부분이 사전 인터뷰를 통해 욕구조사를 하는데, 가족이나 친구가 최종 서비스를 사용하는 당사자인 경우에는 '그들'이라는 단어를 쓰지 않았다. 또한 전반적으로 당사자를 많이 인터뷰한 곳일수록 '그들'이라는 단어를 덜 사용하거나 아예 사용하지 않았다.

나는 장애와 관련된 강연을 가끔 하는 편인데 '그들'이라는 단어를 되도록 쓰지 않으려고 매우 노력한다. 부득이하게 그렇게 칭하는 경우가 없지는 않다. 적어도 마음가짐을 그렇게 갖지 않으려고 노력한다는 쪽에 더 가깝다. 이유는 당연히 휠체어를 타는 내 딸을 생각해서다.

딸은 학교에서 이름 대신 종종 "어 저기 장애인 간다"고 불렸다. 놀이공원이나 공연장, 식당 같은 데서는 "휠체어세요?"라며 자신이 아닌 자신이 타는 도구명으로 칭해지기도 했다. 나도 딸과 같이 있으면 "보호자님 뭐 드릴까요?"라는 이야기를 자주 듣는다.

'그들'은 장애인뿐만이 아니라 이주배경이나 성정체성이나 특정 인종 등을 싸잡아서 부르는 단어이기도 하다. 그 단어를 의식적으로 경계하는 이유는 그 단어에 익숙해지는 순간, '그들'을 개별적인 사람으로 보기보다 일반화하고 대상화하기 쉬워지기 때문이다.

'그들' 심리가 가장 큰 힘을 발휘하는 곳은 정치다. 오늘날 정치의 가장 큰 문제는 '우리 vs 그들'의 대립구도이며 개개인을 보지 않고 한꺼번에 집단으로 묶어서 악마화하는 것이다. 2016년 도널드 트럼프가 미국 대통령이 된 것도 이런 '그들' 심리가 한몫을 했다. 힐러리 클린턴 후보가 트럼프 지지자들을 싸잡아서 'The deplorables(개탄할 만한 사람들)'이라고 칭했던 사건이 한쪽의 분노를 북돋웠다. 이렇듯 트럼프 지지자들은 '우리를 낮잡아 보는 그들'에 대한 공격을 내내 진행했고 미국의 이런 분위기는 세계 정치에도 큰 영향을 미쳤다. 이렇듯 '그들' 심리는 세계 정치에 영향을 끼치기도 한다.

얼마 전 딸과 일본여행을 다녀왔다. 지하철을 주로 타고 다녔는데 한국보다 물리적으로 더 편하지는 않았다. 그럼에도 아이는 맘이 편했단다. 그 이유를 물어보니 일본에서는 거의 대부분의 경우 아무리 물리적 인프라가 열악하더라도 '갈 수 있다'가 기본 전제라는 걸 여기저기서 느낄 수 있었기 때문이란다. 아무리 좁은 매장이라도 휠체어가 '당연히 들어가야 함'을 전제로 하고 자신에게 말을 건넸다는 것이다. 한국에서는 휠체어를 보면 매장 안에 충분한 공간이 있음에도 당황해하는 경우가 자주 있었단다. 물론 여행기간이 짧았고, 아이가 관광객이라는 특수성도 있었을 것이다. 아이가 방문한 모든 곳이 대표성을 띨 수도 없을 것이다. 그러나 말이 통하지 않는 이국땅에서 딸이 '그들' 대신 '우리'로 포함되었다는 느낌이 내게도 고스란히 전해졌다.

'그들'로 선 긋기 하지 않으려면 어떻게 해야 할까. 아마 생활 속에서 나와 다른 사람을 지칭할 때 정체성 대신 이름으로 지칭하는 게 그 시작이 아닐까.


홍윤희 장애인이동권증진 콘텐츠제작 협동조합 '무의'이사장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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