독립·예술영화 상영하는 '소행성' 운영자 허은씨
관객 10명 내외 비영리 '마이크로 상영관' 이끌어
'극장' 틀 허물고 관객과 직접 소통...MZ세대 호응
한국인의 영화 사랑은 유별나다. 1인당 연간 영화 관람회수는 4.37회. 세계 최고 수준이다. 덕분에 수천 개의 좌석을 갖춘 멀티플렉스가 성황을 누리는가 하면 유서 깊은 극장도 곳곳에서 명맥을 이었다. 하지만 코로나 팬데믹을 거치며 극장이 쉬어가는 사이, 넷플릭스 같은 OTT(온라인동영상서비스) 플랫폼으로 집에서 영화를 보는 문화가 일상으로 자리 잡았다. 더 이상 극장을 찾지 않는 포스트코로나 시대의 '영화관'은 어떤 모습이어야 할까. 소규모 상영회 '소행성'을 만든 허은(35)씨는 "앞으로의 영화관은 대형 멀티플렉스의 대척점에 있는 작은 상영관"이라고 단언했다.
허씨가 운영하는 '소행성'은 한국 독립 영화와 국내외 고전·예술 영화를 선보인다. 자리를 채우는 관객은 열명 내외. 50여 석 규모의 독립영화관과 비교해도 훨씬 작은 '마이크로 상영관'이 콘셉트다. 운영 방식은 독특하다. 사회관계망서비스 인스타그램(@cineasteroid.seoul)에 미리 상영할 영화, 시간과 장소를 공지하고, 자발적으로 찾아온 관객들과 영화를 본 뒤 다과와 함께 감상을 나누는 방식으로 진행한다.
원칙은 다락방처럼 영화에만 집중할 수 있는 작은 공간에서 상영하되, 친밀하게 대화를 나눌 수 있는 10석 정도의 좌석을 유지하는 것이다. 상영작은 호세 루이스 게린의 '실비아의 도시에서(2007)', 자크 타티의 '플레이타임(1967)', 찰스 로튼의 '사냥꾼의 밤(1955)'처럼 예술적 가치를 느낄 수 있는 영화로 허씨가 골라 소개한다. "여러 브랜드를 모아 판매하는 편집숍의 MD(상품기획자)처럼 수많은 영화 사이에서 보석처럼 빛나는 영화를 골라 소개하는 역할을 하죠."
이런 소규모 영화 상영에는 일주일에 10~15편씩 영화를 볼 만큼 지독한 영화광이었던 허씨의 열정이 배어 있다. 학창시절 독립영화관에서 접한 예술영화를 계기로 영화의 세계에 빠져든 그는 미국 뉴욕대에서 영화학을 전공하며 감독의 꿈을 키웠다고 한다. 그는 "연출자를 꿈꾸던 유학시절, 마치 어떤 의식을 치르듯 지역 씨네클럽을 누비면서 '미친 듯이' 영화를 봤다"며 "그러면서 작은 극장의 생태계에 눈을 떴는데, 웬일인지 영화 제작보다 다양하고 깊이 있는 영화를 상영하고 동시대 관객들과 소통하는 공간, 그 자체에 관심이 가더라"고 떠올렸다.
전에 없던 상영관을 향한 호응은 예상을 뛰어넘는 수준이었다. 비영리 상영회라 참가비는 따로 받지 않지만 입소문이 나고 고정 멤버가 생기면서 후원금만으로도 운영할 수 있을 정도가 됐다. 독립영화관들이 운영난으로 줄줄이 문을 닫는 와중에도 꼬박 1년 동안 매주 빠짐없이 50여 회를 채웠다. 참석자 대다수는 MZ세대(1980년대~2000년대 초반 출생)로, 대부분 영화와 관계없는 분야에 종사한다.
그는 "온라인에 익숙한 MZ세대들이 알음알음 오프라인 공간으로 찾아와 생경한 영화를 감상하고, 진지하게 생각을 나누는 모습을 보면서 이들의 갈증을 확인할 수 있었다"며 "회차가 거듭되면서 다수 관객에게 알려진 영화를 일방적으로 전달하는 멀티플렉스의 정반대 지점에서 관객과 소통할 수 있는 방법을 고민하게 됐다"고 했다. 그 일환으로 지난달부터 매달 주목할 만한 감독들을 초대해 관객들과 함께 둘러앉아 그들의 영화를 감상하는 '월간 감독' 프로그램을 시작했다.
죽은 극장의 시대, 허씨는 영화라는 공통분모로 자유롭게 헤쳐모여 소통하는 마이크로 상영관이 관객을 끌어안을 수 있는 매력적인 대안이라고 믿는다. 영화 시장을 주도할 MZ세대들이 대형 영화관이 선택한 대작 영화에만 더는 안주하지 않는다는 것을 지난 일 년간 목격했기 때문이다. "시대가 달라져도 영화에 대한 사람들의 사랑과 관심은 변하지 않아요. 오히려 내용이 다채로워졌고 그만큼 소통의 욕구도 커지고 있죠. 상영관이라는 공간을 다음 세대의 라이프스타일에 맞게 재해석해 내면, 그것이 곧 미래의 극장이 될 겁니다."
기사 URL이 복사되었습니다.
댓글0