노사 공동 '위험성평가' 통해 재해 감축
정부 패러다임 전환 효과에 자신감 피력
실질적 방안 부재, 법 무력화 비판
중대재해처벌법 시행에도 산재 사망사고가 줄지 않자 정부가 '패러다임 전환'을 시도한다. 처벌과 규제가 아닌 사전 예방과 '자기규율'에 초점을 맞춰 중대재해를 줄이겠다는 것이다. 법 개정은 내년으로 미뤘는데, 노동계는 이번 대책이 경영계 요구를 반영해 중대재해법을 개악하려는 포석이라며 반발하고 있다.
고용노동부를 비롯한 관계 부처는 4대 전략, 14개 핵심 과제로 이뤄진 '중대재해 감축 로드맵'을 30일 공개했다. 핵심은 자기규율이다. 이정식 고용부 장관은 "최근 중대재해처벌법 시행 등 처벌을 강화했어도 사고사망만인율(근로자 1만 명당 사망자 수)은 8년째 정체돼 있다"며 "이를 획기적으로 줄이기 위해서는 규제와 처벌보다는 스스로 규율하는 예방체계가 필요하다"고 강조했다.
지난해 우리나라 중대재해만인율은 0.43‱(퍼밀리아드)로 경제협력개발기구(OECD) 38개국 중 34위에 머물렀다. 독일(0.07‱)이나 영국(0.08‱)과 비교하면 5~6배 높다. 이를 2026년까지 OECD 평균 수준, 즉 0.29‱까지 낮추는 게 정부 목표다.
노사 함께 만드는 '위험성평가'..."사망사고 발생 시 엄정 대처"
로드맵에서 가장 강조하는 대안은 2025년까지 단계적으로 5인 이상 전 사업장에 의무화하는 '위험성평가'다. 회사마다 노사가 함께 자율적으로 '산재 위험성 체크 리스트'를 만들고 현장 근로자들이 숙지하도록 해 산재사망을 방지하자는 것이다. 이 장관은 "처벌을 회피하려고 서류 작업에 치중하다 보니 중대재해법 도입 이후 오히려 사망사고가 늘어나는 기현상이 발생했다"며 "선진국들이 일찍이 경험하고 증명해낸 자기규율 체계로 패러다임을 전환하자는 것"이라고 설명했다.
류경희 고용부 산업안전보건본부장은 "노사가 사업장을 직접 돌아다니면서 어디에 어떤 위험이 있는지, 어느 정도 위험성이 있으며 방지를 위해 어떤 조치가 필요한지 등 대책을 마련하고 이를 매일 안전점검회의 시간에 알려주는 방식으로 위험을 피할 수 있다"며 "그럼에도 중대재해가 발생한다면 무관용 원칙에 따라 엄정하게 대처하겠다"고 설명했다.
위험성평가를 강제하기 위해서는 처벌규정을 포함한 전면적인 법 개정이 필수다. 정부는 내년 상반기 '산업안전보건법령 개선 태스크포스(TF)'를 만들어 충분한 논의를 거친 뒤 하반기 정기국회에서 중대재해법 및 산업안전보건법 개정안을 통과시킬 계획이다. 또한 강제력이 없더라도 내년부터 300인 이상 대기업들은 고용부가 직접 나서 위험성평가 도입을 유도할 예정이다.
또한 정부의 정기감독은 위험성평가 점검으로 전환하고 여력이 없는 중소기업에는 컨설팅을 제공하는 것도 로드맵에 담았다. 근로자가 참여하는 산업안전보건위원회를 의무 설치해야 하는 사업장 규모는 기존 '100인 이상'에서 '30인 이상'으로 확대하기로 했다.
노동계 "중대재해법 개악 시도" 반발
정부는 로드맵을 통해 중대재해를 대폭 줄일 수 있다고 자신감을 보이지만, 그간 중대재해법 강화를 요구한 노동계는 이번 로드맵이 산업계가 바라는 규제완화의 일환이라며 비판한다.
최명선 중대재해법제정본부 상황실장은 "예방규정과 처벌규정으로 이원화한다는데, 이는 기업 처벌을 완화하겠다는 것"이라며 "위험성평가에 노동자 참여를 보장할 실질적 방안 없이 무작정 확대하겠다고만 주장한다"고 말했다. 또 "중대재해를 줄이려면 통계를 바탕으로 적합한 대책을 내놔야 하는데 어떻게 줄이겠다는 건지 구체적인 대안이 없다"며 "매해 이주노동자가 100명 이상 사망해도 내놓는 대책은 교육뿐"이라고 비판했다.
한국노총은 로드맵 발표 직후 성명을 내고 "'작업중지 완화', '노동자 처벌' 등 경영계가 지속적으로 요구했던 규제완화 내용이 곳곳에 박혀 있다"며 "중대재해법 불확실성 해소를 빌미로 제재방식을 개선하겠다고 밝혔는데, 이는 법을 축소하려는 시도"라고 지적했다. 한국노총은 위험성평가제 정착을 위해서는 벌칙조항을 명료하게 제시해야 하며 노동자 참여를 담보할 수 있는 제도적 장치를 상세하게 설정해야 한다고 강조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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