강제동원 피해자 배상 판결 4년
배상·사죄 못 받은 채 3명은 사망
"대법, 자산매각 명령 미루지 말라"
외교부도 내달 7일 피해자 측 면담
여러분들, 우리가 뭐 땀시(무엇 때문에) 이렇게 나와서 고생합니까. 나는 일본 가서 그 고생을 했기에 일본에 노력한 대가를 받고 싶을 뿐입니다.
강제동원 피해자 양금덕(92) 할머니
겨울을 재촉하는 비가 흩날린 29일 서울 서초동 대법원 앞에서 양금덕(92) 할머니가 마이크를 들었다. 몸이 불편해 휠체어를 탔지만 분노에 찬 목소리는 여전히 카랑카랑했다. 평생의 한을 풀어준 대법원을 4년 만에 다시 찾아 규탄 회견을 할 줄은 상상도 하지 못했다.
양 할머니는 1944년 5월 "중학교에 보내주겠다"는 일본인 교장의 말에 속아 일본 미쓰비시중공업 항공기 제작공장으로 보내졌다. 매일 10시간 이상의 강제노동에 동원됐지만 임금은 한 푼도 받지 못했다.
"외교부가 대법원에 사실상 '판결 지연' 요청"
우리 대법원이 미쓰비시중공업에 "양 할머니 등 강제동원 피해자들에 1인당 1억~1억5,000만 원의 위자료를 지급하라"고 판결한 지 29일로 정확히 4년이 지났다. 그러나 일본 기업의 사죄나 배상은 이뤄지지 않고 있다. 그 사이 원고였던 피해자 5명 가운데 3명이 세상을 떴다. 일제강제동원시민모임과 한일역사정의평화행동은 이날 기자회견을 통해 대법원에 "미쓰비시중공업의 자산매각 명령을 더는 미루지 말라"고 촉구한 배경이다.
미쓰비시중공업은 2018년 11월 판결이 나온 뒤에도 "강제동원 피해자의 청구권 문제는 1965년 체결한 한일청구권협정으로 이미 해결됐다"고 주장해왔다. 피해자 개인에게 배상할 필요가 없다는 입장이다.
미쓰비시중공업이 대법원 판결 이행에 소극적인 태도를 보이자, 피해자들은 이 기업이 국내에서 보유하고 있는 특허권과 상표권을 압류해 특별현금화(매각)해달라는 소송을 제기했다. 법원은 이를 받아들여 자산 매각 명령을 내렸지만, 미쓰비시중공업이 재항고해 시간을 끌고 있다. 만약 대법원이 심리불속행(심리 없이 바로 상고를 기각하는 제도) 결정을 내린다면, 이 회사의 특허권과 상표권은 법원 경매를 통해 현금화돼 피해자들에게 돌아갈 수 있다.
일제강제동원시민모임과 한일역사정의평화행동은 대법원의 심리불속행 결정을 서두르지 않는 배경에는 외교부의 압박이 있다고 보고 있다. 외교부가 지난 7월 재판부에 "일본과 외교로 풀 시간을 달라"는 내용의 사실상 결정을 보류해달라는 취지의 의견서를 제출했다는 것이다. 단체 관계자는 "고령의 피해자들에게 얼마 남지 않은 시간이 흘러가기만 기다리는 것 같다"고 대법원을 비판했다.
일제강제동원시민모임과 한일역사정의평화행동은 최근 한일 정부가 의견을 모으고 있는 '병존적 채무 인수'(한국과 일본 기업이 자발적으로 기부금을 내 대신 배상) 방안에 대해서도 비판적이다. 피해자들이 바라는 것은 미쓰비시중공업의 배상이지, 제3의 기업으로부터 돈을 받으려는 게 아니기 때문이다. 이에 외교부는 다음 달 7일 서민정 아시아태평양국장이 광주를 찾아 강제동원 피해자 측과 면담할 예정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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