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디트로이트 자동차 신화를 만든 것들

입력
2022.12.01 04:30
26면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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12.1 헨리 포드가 진짜 한 일

1931년 무렵의 포드사 디트로이트 공장 '모델 A' 조립 라인. corporate.ford.com

1931년 무렵의 포드사 디트로이트 공장 '모델 A' 조립 라인. corporate.ford.com

포드자동차의 창립자 헨리 포드(Henry Ford 1863~1947)는 컨베이어벨트 시스템을 도입해 생산공정을 표준화·분업화한 인물로 유명하지만, 사실 유사한 작업 시스템은 제분공장이나 양조공장, 통조림공장, 도축장 등에 이미 도입돼 있었다. 그가 한 일은 그 시스템을 디트로이트 하일랜드 파크 공장에 적용하며 동작연구 전문가 프레더릭 테일러(Frederick Taylor)를 고용해 더 효율적으로 개선한 거였다. 그가 자동화 공정을 도입한 뒤 노동자 임금을 당시 업계 평균의 두 배(일당 5달러)로 인상한 일도 덜 알려진 사실이다. 거기에는 사정이 있었다.

포드사 홈페이지에 소개된 포드의 꿈은, 다소 미화된 것이겠지만, 저렴한 자동차를 만들어 모든 미국 시민이 자가용 승용차를 이용할 수 있게 하는 거였다. 첫 차인 ‘모델 N’은 공정별 부품이 배열된 경로를 따라 미완성 차를 이동시키며 조립하는 형식으로 제작됐다. 후속작 ‘모델 T’ 역시 84개 파트로 세분화된 조립공정에 따라 공정별 노동자들이 부분 작업을 진행했다. 로프로 이동시키던 미완성차는 1913년 12월 1일 도입된 컨베이어벨트 자동화 장치로 움직이게 됐고, 이후 노동자의 작업 속도는 컨베이어 속도에 맞춰졌다. 자동차 대당 생산 속도는 초기 12시간여에서 1시간 33분으로 대폭 단축됐다.

사표를 내는 직원들이 줄을 이었다. 노동 강도 때문이었다. 컨베이어 속도에 못 따라가 조립 불량 사태가 빚어졌고, 벨트를 따라 움직이던 노동자가 후속 작업자와 부딪쳐 다치는 일도 빈번했다. 그 해법이 임금 2배 인상이었다. 그의 임금 정책은 회사의 이윤 증식 속도에는 훨씬 못 미쳤지만 대단히 파격적이었다. 전국의 기술자들이 디트로이트로 몰려들었고, 디트로이트 신화가 그렇게 시작됐다.
포드사 홈페이지에는 “소수의 백만장자를 만들기보다 노동자 2만5,000명의 번영과 만족이 회사의 목표”라는 포드의 말이 소개돼 있다.

최윤필 기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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