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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투옥의 벌을 걸고, 축구를 엄금하노라!"

입력
2022.11.25 22:00
23면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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2022 카타르 월드컵 조별리그 H조 1차전 대한민국과 우루과이 경기. 연합뉴스

2022 카타르 월드컵 조별리그 H조 1차전 대한민국과 우루과이 경기. 연합뉴스

"전하께서는 적과의 전쟁을 관장하기 위해 스코틀랜드 땅을 향해 떠나시며 왕국의 엄중한 평화 유지를 특별히 당부하셨다. 광장에서 축구로 인해 폭동이 일어남으로써 위중한 혼란이 발생함과 동시에 악덕이 창궐할 가능성이 크다고 판단하였기에(하느님이여, 굽어 살펴주소서!), 투옥이라는 벌을 내걸고 그와 같은 경기를 하는 행위를 엄금하는 바이다."

1314년 영국 국왕 에드워드 2세는 독립을 선포한 스코틀랜드를 정벌하기 위해 떠나면서 축구가 폭력을 유발한다는 이유로 경기 금지령을 내렸다. '악덕이 창궐할 가능성'이라는 구실을 내세웠지만, 위정자의 속내는 분명했다. 당시 왕실은 평민 남자들에게 창술, 검술, 궁술처럼 유사시 전장에서 써먹을 만한 운동을 장려했다. 그런데 언제부터인가 신체 건강한 사내들이 벌판에서 공이나 차면서 처먹고 마시고 춤추고 쌈박질하다가 서로 부둥켜안고 낄낄댄다는 소식이 들려왔다. 이건 왕국의 전투력이 약화한다는 의미를 넘어 무지한 그들이 자기들만의 영역을 넓혀간다는 신호였다. 추상 같은 왕의 금지령에도 불구하고 이 몹쓸 공놀이는 들불처럼 번져나갔다. 그러자 무능한 아비를 밀어내고 권좌에 오른 에드워드 3세는 '육신 성한 모든 남자'는 '활과 화살, 총알과 노리쇠를 사용하는 운동경기에 참여해야 한다'면서 "투옥의 벌을 걸고 돌, 목각, 고리 그리고 공을 던지고 차는 행위를 포함한 그 밖의 모든 무가치한 경기에 가담하는 일을 금지하노라"라며 핏대를 세웠다.

그 무렵 바다 건너 프랑스로 간 이 공놀이는 그곳 나리님들의 심기도 몹시 불편하게 만들었다. 프랑스에서 '라 술'이라는 이름으로 불린 축구가 유행하자 왕과 성직자, 귀족들은 주정뱅이와 건달들이나 즐기는 놀이라고 악담을 퍼부으며 귀족들의 전유물이던 테니스를 일반에게 보급하려 안간힘을 썼다. 그러고도 마음이 안 놓였는지 1440년 한 주교는 "여흥의 탈을 쓴 악의와 원한, 적대감이 대중의 가슴에 축적된다는 측면에서 위험하고 유독한 경기"라며 속히 '라 술'을 금지하라고 촉구했다.

가여워라, 윗분들은 알지 못했다. '신나게 노는' 일이야말로 그 어떤 의무보다 앞서는 천부인권이자 인간 본성이라는 사실 말이다. 무자비할 만큼 재미나는 공놀이는 끈덕지게 살아남았고, 1863년 영국의 클럽과 대학축구 관계자들이 런던의 한 선술집에 모여 세계 최초 '축구협회'를 만들었다. 영국에서 프로축구 리그가 태어난 것도 그 직후였다. 뒤질세라 1904년 프랑스가 주도한 FIFA가 탄생하면서 축구는 전 세계 메이저 스포츠로 부상했다. 4년마다 한 번씩 그 누구도 해내지 못한 방식으로 지구촌 대통합을 끌어내는 축제가 탄생할 채비를 갖춘 것이다.

카타르 월드컵이 일주일을 맞는다. 개최지 선정의 뒷말과 사상 초유의 겨울 월드컵, 인권문제 등 껄끄러운 이슈들이 터져 나오면서 시큰둥하게 문을 연 대회다. 하지만 이 공놀이 본연의 파워는 막강해서 경기가 하나씩 이어질 때마다 무서운 화력으로 자기만의 존재가치를 흠씬 증명하는 중이다. 게다가 우리 팀은 첫 경기에서 잘 싸웠고, 옆 나라 일본의 역전승을 마냥 부러워하지 않아도 된다. 얼마나 다행인가! 여러모로 고단한 시절이지만, 월드컵 기간만이라도 축구를 즐기면서 돌덩이처럼 굳어진 마음의 근육을 풀자. 그것이 온갖 핍박 속에서도 살아남은 축구의 존재 이유다.


지평님 황소자리 출판사 대표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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