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대학의 소명, 개인을 넘어선 공동체의 성취

입력
2022.11.28 00:00
27면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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팀 버너스리. 로이터 연합뉴스

팀 버너스리. 로이터 연합뉴스

1989년 제네바 유럽입자물리연구소(CERN)의 컴퓨터 공학자 팀 버너스리(Tim Berners-Lee)가 여러 연구소에 흩어져 있는 문서, 소리, 이미지 자료의 관리와 전달 시스템을 개발했다. 그리고 전 세계 사용자와 조건 없이 공유했다. 과학자로서의 개인적 성공을 비즈니스가 아닌 공공선(善)을 위해 써야 한다는 단순한 신념 때문이었다.

그래서 월드와이드웹(World Wide Web)이 시작됐고, 오늘날의 인터넷 세상이 열렸다. 덕분에 우리는 휴대폰으로 실시간 뉴스를 보고, 소셜미디어로 소통하고, 원격 회의와 원격 강의를 하고, 앱을 통해 택시를 불러 타고, 음식을 주문하는 시대에 살고 있다.

버너스리는 자신이 만든 월드와이드웹이 초래할 사회문제를 미처 예견하지 못했다. 인터넷 세상에서 아마존, 구글 등 빅테크 산업의 독과점, 가짜 뉴스와 이미지의 무한 범람, 사용자 프라이버시의 심각한 침해 등 다양한 사회문제를 바라본 버너스리는 이에 대한 구체적인 해결방법을 찾기 시작했다. 그래서 빅테크의 사용자 개인 정보 무분별 사용을 막기 위해 솔리드(SOLID·Social Linked Data) 프로젝트를 시작했다. 이로 인해 사용자가 특정 플랫폼에 가입하지 않고도 서비스 접속이 가능하게 되었고, 빅테크로부터 개인정보를 보호할 수 있게 되었다.

지난 15일 한 대학에서의 버너스리 특별강연의 초점은 한 공학자의 걸출한 창의적 과학 재능에 맞추어져 있지 않았다. 자신이 만든 인터넷이 초래한 사회문제 해결을 위해 또 다른 테크놀로지를 고안하고 보급한 과학 지성의 철학, 세계관, 공동체적 가치에 대한 우직하고 진솔한 강연은 강연장을 가득 채운 젊은 대학생들에게 큰 감동이었다.

또 한번의 수능시험이 끝나고 대입 시즌이 다가왔다. 학령인구 절벽 시대에 존재의 위기감을 느낀 대학들이 저마다 '학생 성공'을 내세워 신입생 유치 경쟁에 나서고 있다. 대학에서 성공을 준비하는 것은 당연하고 또 매우 중요하다. 그러나 이를 지나치게 강조한 나머지 이 시대 젊은 지성에 사회가 기대하는 역할, 대학에 주어진 소명과 품격의 중요성이 폄하된다면 이는 문제다.

대학은 다음 세대에게 단순한 성공에서 한걸음 더 나아가는 큰 꿈을 제시해야 한다. 대학생으로서의 특권을 누리는 개인이 전 생애를 통해 추구해야 할 궁극적 삶의 성취, 그리고 함께 만들어야 하는 사회 공동체의 소중한 가치는 무엇인가, 대학은 이를 담대히 이야기해야 한다. 이 시대 대학이 제시하는 개인과 사회에 대한 담론이 고등학교와 대입 사설학원과는 현격히 다른 수준의 새로운 표준이어야 함에도, 여전히 같은 수준에 머물고 있다면 이는 심각한 직무유기다.

자유경제 이론을 설계한 애덤 스미스의 국부론(1776년)을 공부하기 전에 이보다 먼저 쓰여진 도덕감정론(1759년)을 읽어야 하는 이유도 거기에 있다. 경제 주체인 개인의 도덕성 즉, 공동체주의적 자각과 실천이 이상적 자유경제 체제를 위한 중요한 전제이기 때문이다. 도덕감정론을 간과한 국부론만으로는 모든 이가 각자도생을 위해 무작정 뛰어갈 때 생기는 대혼란과 파국이 초래될 수 있다는 점을 간과해서는 안 된다.

월드와이드웹 개발자로서 빌 게이츠와 스티브 잡스와 같은 대사업가 반열에 오를 수도 있었던 버너스리가 빅테크들의 견제를 받으면서도 묵묵히 추구하고 있는 솔리드 프로젝트는 개인의 성공을 넘어선 공동체적 성취의 가치를 다시 생각하게 해준 좋은 사례다. 우리 대학은 다음 세대와 함께 만들어 가야 할 공동체의 희망을 좀 더 진지하게 이야기해야 한다. 그래야 우리 사회에 미래가 있다.


마동훈 고려대 미디어학부 교수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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