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중동의 다극화와 흔들리는 미국·사우디 80년 에너지 동맹

입력
2022.11.22 19:00
25면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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김강석
김강석한국외대 아랍어과 교수
미국과 사우디아라비아의 동맹은 1945년 2월 루스벨트(오른쪽) 미국 대통령과 사우드(오른쪽 두번째) 국왕이 수에즈 운하의 미 군함 퀸시 호에서 정상회담을 가지면서 시작됐다. 그래픽=김문중기자

미국과 사우디아라비아의 동맹은 1945년 2월 루스벨트(오른쪽) 미국 대통령과 사우드(오른쪽 두번째) 국왕이 수에즈 운하의 미 군함 퀸시 호에서 정상회담을 가지면서 시작됐다. 그래픽=김문중기자


1945년 루스벨트·사우드 회동 이후
80년 가까이 이어온 미·사우디 동맹
중동 다극화에 맞춰 재구조 가능성

미국은 사우디아라비아를 중동 최고 우방국으로 간주해 왔다. 1945년 2월 미국 군함 퀸시호에서 성사된 미국의 프랭클린 루스벨트 대통령과 사우디아라비아의 압둘아지즈 이븐 사우드 초대 국왕 간 회동은 양국 동맹관계 형성의 출발점으로 평가된다. 이븐 사우드 국왕은 1932년 아라비아 반도를 통일한 뒤 첫 해외 방문에 나선 자리였고, 루스벨트 대통령은 얄타 회담을 마치고 본국으로 돌아가는 길이었다.

두 정상 간 만남의 결과, 미국은 사우드 왕가의 안보를 도와주는 대신 석유를 안정적으로 공급받을 수 있는 계기를 마련했다. 1938년 미국 자본 계열의 아람코가 일곱 번째 시추 끝에 사우디아라비아의 다란에서 유전을 발견한 뒤 석유 자원에 기초한 양국 동맹을 공식적으로 출범시킨 역사적 회담이 되었다.

양국 관계는 냉전 시대를 거치면서 더욱 공고해진다. 1950년 한국전쟁의 여파로 중동으로 냉전 갈등이 확산되자 1951년 양국은 상호방위협정을 체결하고 안보협력을 강화해 나간다. 아이젠하워 행정부는 이집트의 나세르 대통령이 주도하는 아랍 민족주의가 팽창하며 공산주의 침투가 우려되자 메카, 메디나 이슬람 두 성지의 수호자인 사우디아라비아 국왕의 종교적 권위를 활용해 아랍 민족주의를 상쇄하려 했다. 이를 위해 아이젠하워 대통령은 사우드 국왕에게 "무신론의 공산주의가 중동에 침투되는 것을 막아 달라"며 친필 서한을 발송하기까지 했다.

양국 동맹은 냉전 종식 이후에도 견고하게 이어졌다. 1990년 이라크의 사담 후세인 정권이 쿠웨이트를 침공함으로써 제1차 걸프 전쟁이 발발했다. 부시 행정부는 쿠웨이트의 해방을 위해 사막의 폭풍 작전을 개시했고, 사우디아라비아는 외세 개입 논란에도 불구하고 기꺼이 미군의 자국 주둔을 허용하며 동맹국의 군사작전을 적극적으로 도왔다.

2001년에는 전대미문의 9·11 테러가 발생했다. 19명의 테러범 중에서 15명이 사우디아라비아 국적으로 밝혀지면서 양국 관계에 미묘한 긴장감이 맴돌았다. 사우디아라비아 당국은 알 카에다 연루 테러세력 척결에 적극적으로 앞장서며 미국과의 갈등 소지를 차단했다. 부시 행정부의 테러와의 전쟁에 든든한 우군이 됨으로써 굳건한 양국 동맹을 재확인해 주었다.

그런데, 근래 들어 긴 세월 동안 다져온 미국-사우디아라비아 동맹이 뿌리째 흔들리고 있다는 우려가 제기되고 있다. 지난달 사우디아라비아가 주축이 된 석유수출국기구(OPEC)와 러시아를 중심으로 한 비(非)OPEC 산유국 협의체인 OPEC+는 대규모 원유 감산 결정을 내렸다. 지난 7월 조 바이든 미국 대통령은 사우디아라비아를 방문해 무함마드 빈 살만 왕세자에게 국제유가 안정화에 동참해 줄 것을 직접 당부했다. 미국의 직접적 요청에도 아랑곳하지 않는 사우디아라비아 당국의 태도에 워싱턴은 불편한 속내를 숨기지 않았다. 이번 원유 감산 결정은 우크라이나를 침공한 러시아를 돕는 행위라며 워싱턴 정가에서는 비판의 목소리가 터져 나왔다.

사우디아라비아의 실권자 무함마드 왕세자가 미국과의 동맹 훼손 위험을 감수하며 독자적 외교 노선을 추구하는 이유는 뭘까? 중동 내 중국과 러시아의 영향력 확대로 인한 다극화 현상이 가속화되고 있기 때문이라는 관측이 제기된다. 중동 정치의 다극화로 무함마드 왕세자는 미국에 대한 정치·경제적 의존도를 줄이고 있다는 평가이다. 이런 점에서 최근 중국과 사우디아라비아의 관계 강화가 부쩍 눈에 띈다. 지난달 열린 당대회에서 1인 지배 체제를 강화한 시진핑 주석의 12월 사우디아라비아 방문이 기정사실화되고 있다. 다극화의 길을 가고 있는 중동 정치질서 변동 속에서 무함마드 왕세자의 외교적 줄타기가 어떻게 전개될지 관심 있게 지켜볼 필요가 있다.

김강석 한국외대 아랍어과 교수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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