아산 이지수 옹기장 3대 이어온 맥 끊길까 노심초사
김치냉장고에 밀려 인기 시들
중노동·적은 수입에 아들 마저 가업포기
“내 나이 여든둘, 하루 빨리 '도고 옹기'의 후계자를 찾고 싶습니다”
충남 아산에서 64년째 옹기를 구워온 이지수(82·충남무형문화재 38-2호) 옹기장은 3대 200년 가까이 이어온 전통이 끊길까 노심초사하고 있다.
아산은 조선후기부터 옹기의 고장으로 불렸다. 이지수 장인의 옹기 가마가 있는 도고면 금산리는 흙이 좋아 한 때 300명이 넘는 옹기공이 모여 살던, 장항선 최고 옹기 마을로 불렸다. 이곳 옹기는 짠물을 담으면 일주일새 저절로 짠기가 사라지는 것으로 유명했다. 삽교천 방조제 축조 전까지 서해 새우젓과 소금이 이곳 옹기에 담겨 전국으로 팔려 나갔다.
이씨 가문이 이곳에 터를 잡은 것은 천주교와 밀접한 관계가 있다. 조선 후기 천주교 신자들은 박해를 피해 산속에 몰래 교우촌을 이루고 옹기를 만들었다. 옹기 장수로 위장해 동료 신자들의 집을 방문하며 안위를 살피고 연락을 주고받았다. 집안이 대대로 옹기 가마를 지켜온 이유도 여기에 있다.
충남도는 이씨 가문의 역사와 노력, 공헌을 인정해 2000년 그의 집안을 충남전통문화가정(8호)으로, 2008년 이지수 장인을 충남무형문화재로 지정했다.
하지만 가업의 명맥이 끊어질 위기에 처했다. 이수자 교육까지 마친 아들이 가업을 포기했기 때문이다. 무형문화재 지정을 받아도 전승지원금은 월 120만원. 이씨는 월 200만원 벌기가 쉽지 않은 현실을 잘 알기에 가정을 꾸린 아들에게 힘든 길을 가라고 말하기조차 어려웠다고 한다.
1960년대까지 성업이던 옹기 산업은 스테인리스와 플라스틱 용기가 등장하고 김치냉장고가 대중화하면서 설 자리를 잃었다. 좋은 흙 고르기, 잿물 만들기, 1200℃ 불 가마에서 구워내는 모든 과정이 중노동이지만 돈벌이는 시원치 않다. 이 때문에 그 많던 옹기장들은 다른 일을 찾아 하나 둘 마을을 떠났다.
후계자를 만들지 못한 탓에 이지수 옹기장은 여든이 넘도록 가마를 떠나지 못하고 있다. 16살 때부터 할아버지와 아버지에게 흙 만지는 법을 배워 ‘숨 쉬는 그릇’을 만든다는 자부심과 전통 옹기의 명맥을 이어야 한다는 책임감에 손에서 흙을 놓지 못하고 있다.
그는 “도고옹기 발효음식 전시체험관에서 기초교육 과정, 전문가 양성과정을 운영하며 도고 옹기의 명맥을 이어 줄 후계자를 찾고 있다”며 “가끔 재능이 있는 사람을 발견하지만 중도 포기하는 일이 많아 안타깝다”고 말했다.
이어 “내가 옹기 일을 얼마나 더 할 수 있을지 모르지만 진득하게 오래갈 후계자를 찾아 잘 가르쳐 주는 것이 마지막 소원”이라고 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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