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금도 넘는 북한과 대화하라는 중국

입력
2022.11.21 00:00
26면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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남성욱
남성욱고려대 통일융합연구원장

도발 시간·장소의 禁道 어긴 김정은
직설적으로 북한을 옹호한 시 주석
기상천외 북한 도발대응에 주력해야

북한이 18일 김정은 국무위원장의 지도 아래 신형 대륙간탄도미사일 화성-17형을 시험 발사했다. 연합뉴스

북한이 18일 김정은 국무위원장의 지도 아래 신형 대륙간탄도미사일 화성-17형을 시험 발사했다. 연합뉴스

남북한 도발에도 금도(禁道)가 있다. 아무리 총질을 해대고 입에 담을 수 없는 욕설을 퍼부어도 때가 있다. 지난 2일 북한 도발은 그 레드라인을 넘었다. 우선 타이밍이다. 이태원 참사로 대한민국이 슬픔에 잠겨있는 국민 정서를 무시하고 도발을 감행했다. 다음은 도발의 목표지역이다. 6·25 전쟁의 정전협정 체결 이후 최초로 동해 북방한계선(NLL) 이남으로 탄도미사일을 발사했다. 연평도 포격 등 해안포와 방사포를 NLL 이남으로 쏜 적은 있으나 탄도미사일은 분단 이후 처음이다. 북한은 기존 도발 패턴에서 궤도를 이탈하고 있다.

김일성, 김정일 집권 시대에는 남북 당국 간에 최소한의 금기 사항이 암묵적으로 지켜졌다. 남한에 수해가 나고, 평안북도 용천역 폭발사고가 발생하자 상호 비난과 도발을 멈추고 당국과 민간 차원에서 물자를 주고받았다. 전두환 대통령은 1984년 수해 피해가 발생했을 때 북한의 지원을 대승적 차원에서 수용하였다. 그해 9월 평양은 쌀 5만 석(약 7,800톤), 옷감 50만m, 시멘트 10만 톤, 의약품 등을 보냈다. 전두환 정부는 보답으로 북한 구호품 금액의 100배 가치인 전자제품, 손목시계, 양복지 등을 채워 넣은 선물 보따리를 전달했다. 2004년 용천역 폭발사고 당시에는 남측 민관이 수백억 원 규모의 긴급구호물자와 성금을 신속하게 북측에 보냈다.

남북한의 물자 지원에 대한 속내가 다르기는 하지만 한민족은 어려울 때 서로 돕는 상부상조 정신을 발휘하였다. 이태원 참사에 중·러는 물론 전 세계에서 애도와 위로로 슬픔을 함께하는 분위기였지만 평양은 예외였다. 심지어 유엔에서는 김성 북한대사가 이태원 참사에 대해 국정능력 부재에 따른 인적 재난이라고 비난했다.

지난주 동남아에서 외교의 큰 장이 섰다. 국내 정치에서 기반을 다진 거물급 지도자들이 무대에 올랐다. 중국의 시진핑 주석은 G20 정상회담에서 윤석열 대통령에게 남북대화를 제안했다. 3연임에 성공하고 외교무대에 등장한 시 주석은 북한의 핵과 미사일 도발 억제에 대한 중국의 건설적 역할을 요청한 윤 대통령에게 북한의 ‘합리적 우려에 대한 균형적 역할’을 강조했다. 북한을 직설적으로 옹호한 것이다.

중국의 강력한 동조에 힘을 받은 김정은은 드디어 대륙간탄도미사일(ICBM) 발사에 성공했다. 그간 2차례 실패를 극복하고 6,000도의 고열을 견디는 지구재진입(re-entry) 기술을 성공적으로 과시했다. 화성-17형의 발사로 미국 본토가 북한 핵미사일 사정권 안에 들어왔다. 김정은의 표현대로 ‘핵에는 핵’으로 대응하는 전략이 가동되었다.

북한 도발 해법에 대한 한중 간 동상이몽(同床異夢)은 과거보다 훨씬 분명해졌다. 미국이 중국의 아킬레스건인 대만과의 협력을 강화함에 따라 한미의 골칫거리인 평양의 몸값이 상승하고 북중 밀월이 강화되었다. 개최가 미정이었던 한중정상회담이 하루 전에 갑자기 성사된 배경도 3시간에 걸친 미중정상회담에서 쟁점이었던 북한 도발 때문이었다. 3년 만에 열린 한중 대면 정상회담은 25분 동안 각자 할 말만 하고 기념사진을 찍었다. 시 주석은 ‘진정한 다자주의'라는 용어로 한국의 반중 노선에 견제구를 날렸다. 당초 기대했던 한한령 해제 조짐은 없었고 우리의 고위급 대화 정례화 요구는 1.5트랙 대화 수준으로 격하되었다. 만리장성만큼이나 갈 길이 먼 한중관계를 실감한 만남이었다.

북한의 비이성적 도발 시대에도 중국의 제언대로 남북대화를 포기할 수는 없다. 하지만 도발로 문제를 해결하려는 평양의 행태를 그대로 수용할 수는 없다. 서울은 북한이 ‘좋은 행동(good behavior)’을 한다면 중국이 훈수두지 않아도 대화에 나설 것이다. G20 정상회담이 끝나자마자 최선희 북한 외무상은 취임 후 첫 공개담화에서 ‘군사적 대응은 더욱 맹렬해질 것’이라고 선언하고 탄도미사일을 발사했다. 지금은 대화보다는 평양의 기상천외한 도발에 대응할 시점이다.

남성욱 고려대 통일외교학부 교수, 전 국가안보전략연구원장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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