사업 11년 만에 1단계 완료 눈앞
장치 검증 남았지만 해외서 러브콜
고에너지 구간 구축은 아직 난제로
'사상 최대 규모의 기초과학 프로젝트'로 불리는 한국형 중이온가속기 라온(RAON)의 시운전이 순항하고 있다. 지난달 일부 구간에서 첫 번째 빔 인출에 성공한 기초과학연구원 중이온가속기연구소는 내년 3월 저에너지 구간 가속장치 전체에 대한 시운전을 완료한 뒤, 실험장치 연동 등 검증을 진행할 예정이다.
공식적인 연구자 모집은 내년 하반기에야 진행되지만 벌써부터 해외 연구자들의 러브콜이 이어지고 있다. 15일 대전 유성구 중이온가속기연구소에서 열린 현장 간담회에서 홍승우 연구소장은 "일부 실험장치는 이미 해외 연구자들과 공동연구 그룹이 형성돼 있다"며 "고에너지 구간도 빔이 나오기만 하면, 많은 연구자들이 신청할 것으로 생각한다"고 말했다.
중이온가속기는 무거운 이온을 빠르게 가속한 뒤 표적 물질에 충돌시키는 장치다. 시간에 따라 음극과 양극으로 변화하는 고주파 전기장을 이용해 양전하를 띤 중이온을 앞에서 당기고 뒤에서 밀며 점점 빠르게 움직이도록 하는 원리다. 약 95.5m인 저에너지 구간에만 모두 54기의 가속모듈이 구축됐다.
성능을 높이기 위해선 전기저항이 0에 가까운 초전도 상태가 유지돼야 한다. 액체헬륨을 통해 가속장치 전체를 영하 269도로 낮추는데, 냉각에만 2, 3주가 소요된다. 라온은 우라늄 같은 무거운 원소를 광속(초속 약 30만㎞)의 50% 수준까지 가속하도록 설계됐다.
중이온을 가속시키는 이유는 표적 물질과 충돌할 때 희귀 동위원소(양성자 수가 같으나 중성자 수가 다른 원소)가 생성되기 때문이다. 희귀 동위원소는 우주 초기에는 있었으나, 수명이 짧아 현재는 존재하지 않거나 발견되지 않은 원소다. 이들을 생성해 연구하면 원소의 기원이나 우주 진화의 비밀에 한 걸음 다가서게 된다. 암치료나 신소재 개발에도 활용할 수 있다.
가속기를 통해 희귀 동위원소를 만드는 방법은 ①가벼운 이온 빔을 무거운 표적에 충돌시켜 표적을 쪼개지게 하는 ISOL방식과 ②무거운 이온 빔을 가벼운 표적에 충돌시켜 빔을 쪼개지게 하는 IF 방식이 있다. 라온은 세계 최초로 두 가지 생성 방식을 결합하도록 설계돼 더 다양한 희귀 동위원소를 생성하고 실험할 수 있다. 목표한 가속 성능도 미국 미시간주립대 중이온가속기에 앞선다.
라온은 '노벨상의 산실'을 만들기 위해 2011년부터 1조5,183억 원이 투입된 사업이다. 다만 현재 완성을 향해 가는 사업은 저에너지 구간이다. '세계 최고'라는 수식어가 어울리기 위해서는 계획했던 고에너지 구간까지 완료돼야 한다. 고에너지 구간은 가속장치 개발에 어려움을 겪어 아직 선행 연구개발(R&D) 단계다. 고에너지 구간 가속을 통해 활용할 실험장비는 구축됐지만, 정작 핵심 부품 개발이 늦어지고 있다.
중이온가속기연구소는 저에너지 구간을 먼저 연구에 활용하면서 고에너지 구간 설계 및 건설을 함께 이어나간다는 계획이다. 홍 소장은 "사업을 처음 시작할 때는 사람도 땅도 아무것도 없었다"면서 "이제 첫걸음을 뗐으니, 처음 계획대로 세계 최고가 되도록 성숙하는 과정을 거치겠다"며 응원을 당부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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