책 ‘빈곤 과정’ 낸 조문영 연세대 교수
'빈곤 포르노' 논란에 "빈곤 구조 희석하는 용어"
"수동적 빈자 전시는 국제 사회에서도 문제" 지적도
보여지는 빈곤은 전형적이다. 매년 추위와 더위에 시달리는 쪽방촌이나 햇볕이 들지 않는 반지하는 미디어에 자주 등장하는, 도시 빈곤의 대표적 이미지다. 그 속에서 삶을 이어가는 개인의 자취와 생명력은 사라진 채 빈자는 연민받는 수동적 존재로만 남는다. 15일 한국일보에서 만난 조문영 연세대 문화인류학과 교수는 “세상 사람들이 연민을 갖는 빈자는 죽은 빈자이거나 도덕적인 빈자 등 무해한 빈자”라고 지적했다. 20년간 빈곤을 연구해온 인류학자로서 최근 내놓은 신간 '빈곤 과정'은 빈곤을 둘러싼 사회적 시선과 이해 방식을 꼼꼼하게 톺은 책이다.
최근 정치권에 '빈곤 포르노' 논란을 촉발시킨 김건희 여사의 사진에서도 어색하게 안긴 캄보디아 아이는 빈곤을 전시하는 안쓰러운 대상일 뿐이다. 조 교수는 장경태 더불어민주당 의원이 언급한 '빈곤 포르노'가 자극적이고 빈곤의 구조적 문제를 희석하는 용어여서 다른 개념이 필요하다면서도 “'나를 절대로 공격하지 않을 수동적인 빈자’를 전시하는 퍼포먼스는 국제개발 현장에서도 문제시한다”며 사진의 문제점을 지적했다.
빈자를 위한 봉사라는 '선의'에도 불구하고 자기만족적인 선행이 오히려 빈자를 더 왜소하게 만들거나 심리적 상처를 주는 역설을 낳을 수 있다는 얘기다. 언론 매체라고 해서 이를 비켜갈 수 없다. 가난의 문제점을 알리기 위해 빈곤의 실상을 적나라하게 보도하는 기사가 빈자들에게 오히려 폭력적일 수 있다는 게 조 교수의 지적이다. '책을 읽으며 여러 번 뜨끔했다'는 고백에 그는 "빈자는 늘 누군가의 진단과 평가, 서술과 묘사에 둘러싸여 적나라하게 까발려질 수밖에 없는 존재”이며 “그들이 경험한 여러 갈래의 폭력을 세세하게 노출시키는 것이 또 다른 편견과 낙인을 낳을 수 있다는 점을 신경 써야 한다”고 조언했다.
빈자를 지원하는 사회복지제도도 마찬가지다. 복지 지원을 매개로 자활을 요구하는 제도 밑바닥에는 빈자를 의존적 존재로 규정하는 폭력적 시선이 담겼다는 게 조 교수의 주장이다. 그는 되레 "복지가 직업화·제도화·산업화를 거치며 성장한 역사란 뒤집어보자면 사회복지 체제 구축에 관여해온 종사자들이 가난한 사람들에게 의존해온 역사"라고 말했다.
요컨대 일방적인 봉사나 사회복지가 오히려 빈자에 대한 편견과 낙인을 강화하는 덫을 품은 게 아니냐는 것이다. 조 교수가 탐색하는 것은 빈자의 지워진 목소리와 삶 자체를 밀도 있게 복원하는 것이다. 책에는 그가 오랜 시간 지켜본 두 중국 여성, 폭스콘 공장노동자 쭤메이(가명)와 고향 토지를 찾으려 애쓰는 쑨위펀(가명)의 여정이 그려진다.
2018년부터 예정된 책 작업은 ‘코로나 팬데믹’으로 길어졌다. 작업을 더디게 한 것은 2020년 반빈곤영화제에서 만난 고시원 거주 여성의 절망적인 표정이었다. 그는 “평온하고 오래 거주할 집이 있는 사람과 그렇지 않은 사람의 차이가 극명하게 갈리는 팬데믹 상황에서 나처럼 소위 ‘팔자 좋은’ 정규직 교수가 빈곤을 이야기해도 되나 고민됐다”고 털어놨다. 그러나 그는 참여자-연루자로서의 감각을 벼려 부단히 질문하는 작업을 계속 해 나가고 있다.
책은 빈곤 문제의 해결 방향까지 제시한 것은 아니다. 어쩌면 정책적 대안보다 더 선행돼야 할 것은 빈곤과 빈자에 대한 인식 전환이다. 조 교수가 대학에서 맡고 있는 '빈곤의 인류학' 수업을 들은 한 학생은 이런 말을 했다고 한다. "빈곤 문제란 게 나의 고통이 더 중요하다고 경쟁하는 것이 아니라, 어떻게 서로가 연결돼 문제를 입체적으로 발전시킬 수 있는가를 고민하는 것 같다." 시민들 서로가 상호 의존적일 수밖에 없는 사회에서 빈곤 역시 우리 삶 속의 하나로 접속돼 있다는 연결 감각을 회복하는 것이 빈곤 접근의 토대일지 모른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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