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채권시장, 또 다른 대형 악재 오나... 퇴직연금 ‘머니 무브’ 파장 우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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채권시장, 또 다른 대형 악재 오나... 퇴직연금 ‘머니 무브’ 파장 우려

입력
2022.11.17 04:30
수정
2022.11.17 09:53
11면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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300조 퇴직연금 80%, 12월 계약 만기
50조 안팎 이동으로 채권 물량 쏟아져
레고랜드, 흥국생명 사태로 시장경색
업계 "유동 공급하고, 금리 경쟁 막아야"

살얼음이 깔린 채권시장에 또 다른 대형 악재가 밀려오고 있다. 300조 원에 달하는 퇴직연금의 대규모 자산 이동(머니 무브)이다. 당장 내달에 예정돼 있다. 퇴직연금 사업자들이 계정 이전을 위해 최소 수십조 원 규모 채권을 시장에 대거 쏟아낼 경우, 가격 폭락으로 채권시장 발작이 우려된다. 가뜩이나 경색된 채권시장 상황을 감안할 때, 매각 불발로 소규모 금융회사들은 유동성 위기에 직면할 수 있다는 공포도 커지고 있다.

연도별 퇴직연금 적립금 및 증감 현황. 고용노동부. 그래픽=김문중 기자

연도별 퇴직연금 적립금 및 증감 현황. 고용노동부. 그래픽=김문중 기자


머니 무브 왜?

퇴직연금은 기업이 근로자의 퇴직금 지급 재원을 금융기관에 맡겨 운용시키고, 퇴직 시 연금 또는 일시금으로 지급하는 제도다. 모든 사업장에 적용된 2010년 이후 매년 10% 이상씩 증가하면서 적립금 규모가 작년말 기준 295조6,000억 원에 달한다.

퇴직연금사업자(사업자)는 기업의 적립금을 직접 운용하거나 다른 금융회사(비사업자)에 적절히 배분한다. 예컨대 A기업이 사업자인 B은행과 퇴직연금 운용계약을 하면 B은행은 적립금의 30%까지 자사 원금보장상품(예ㆍ적금)에 투자하고 나머지는 비사업자의 상품(국채나 주식형 채권 등)에 배분하는 식이다.

통상 1년 단위인 기업과 사업자 간 계약의 80% 안팎이 12월 만료라는 게 금융권 설명이다. 연말에 머니 무브가 대거 발생하는 것이다. C금융회사가 더 높은 수익률을 보장하는 포트폴리오(자산배분 구성)를 제시하면 A기업은 B은행에 맡긴 적립금을 C금융회사로 통째 넘긴다는 얘기다.

퇴직연금을 운용하는 금융사 관계자는 “퇴직연금시장은 사업자 간 경쟁, 사업자와 비사업자 간 경쟁 등이 매번 동시에 이뤄지는 과열 양상이라 보통 12월에 적립금의 30% 정도가 손바뀜(머니 무브)한다"고 말했다. 머니 무브 대상이 주로 확정급여형(DB형)인 걸 감안하면 지난해 171조5,000억 원 가운데 50조 원 안팎이 이동하는 셈이다.

퇴직연금 적립금 운용 구조도. 금융감독원 홈페이지 발췌

퇴직연금 적립금 운용 구조도. 금융감독원 홈페이지 발췌


왜 문제 되나?

사업자가 바뀌면 기존 사업자는 보유한 퇴직연금 자산에 포함된 채권을 매각한 뒤 현금화해 새 사업자에게 넘겨줘야 한다. 문제는 여기서 발생한다. 단기간에 수십조 원 규모의 채권 매도 물량이 시장에 쏟아져 나오기 때문이다.

예년 같으면 소화가 가능하겠지만 최근 채권시장은 '레고랜드 사태'와 '흥국생명 사태'로 가뜩이나 경색된 상태다. 금융당국이 보험사 등 주요 기관투자자에 채권 매각을 자제해 달라고 당부할 정도다. 다음 달 퇴직연금시장에서 대규모 매도 물량이 쏟아지면 시장이 감당하기 어려울 것이라는 우려가 커지는 이유다.

채권 매각이 안 되면 더 큰 문제가 발생한다. 자산 규모가 큰 은행이나 생명보험사 등은 예금 등을 전용할 수 있지만, 규모가 작은 손해보험사나 증권사는 유동성 위기에 내몰릴 수 있다. 특히 퇴직연금을 특별계정으로 별도 관리하는 손보사는 채권 매각 불발 시 퇴직연금 지불불이행(디폴트)으로 이어질 가능성까지도 거론된다.

방법은 없나?

유동성 확보 대안인 '차입'은 규제가 발목을 잡는다. 보험업법 시행령에 '퇴직연금 같은 특별계정은 은행이나 다른 금융회사 등에서 돈을 빌릴 수 있도록 허용'하고 있지만, '1개월 이내 단기자금, 계정 자산의 10분의 1 이내'로 한정하고 있다. 고금리 지속에 따른 채권시장 불안, 손바뀜 규모를 감안하면 제약이 크다는 게 업계의 토로다. 업계가 차입 한도 상향 및 기한 연장을 요청하자 금융당국은 시행령 개정이 필요하다는 입장인 것으로 알려졌다.

이번 기회에 과열 경쟁을 부추기는 허점도 보완하자는 지적이 나온다. 매달 운용상품 금리(이율) 공시 의무가 사업자에겐 있고, 비사업자에겐 없다 보니 비사업자가 사업자보다 더 높은 금리로 사업자를 빼앗는 경우가 빈번하다는 것이다. 이른바 ‘커닝 공시’다.

업계 관계자는 “당장 다음 달 채권시장 패닉이 올 수 있는 상황인데 금융당국은 시간이 걸리는 시행령 개정마저 주저하고 있다”며 “레고랜드, 흥국생명 사태처럼 당국이 또 실기해선 안 된다”고 꼬집었다. 이어 “규모가 큰 4, 5개 비사업자가 금리를 무기로 자금을 빨아들이는 행위를 막지 못하면 금융시장 혼란은 불가피할 것”이라고 우려했다.

이대혁 기자
강유빈 기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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