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1%만으로도 충분한 정원의 미학, 교토 사이호지

입력
2022.11.16 22:00
27면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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일본 교토 사이호지. 김대석 소장 제공

일본 교토 사이호지. 김대석 소장 제공

가을이 무르익는 11월 일본 교토는 마지막 만추의 몸살을 앓는 시기이다. 국내보다 보름 정도 늦게 계절이 도달한다는 느낌으로 고도 교토를 만났다. 서울을 떠날 무렵 떨어지는 은행잎들이 이곳에서는 아직도 푸름으로 남아 있었기 때문이었다. 공간을 통해 시간을 느끼는 인간의 속성은 계절의 변화에 민감함을 함께 느낀다. 만추의 가을을 즐기는 이유는 한 해의 수고가 마지막으로 장식되는 색채의 향연을 통해 그 수고를 충만한 가치로 되새길 수 있는 시간이기 때문일 것이다.

교토에서 접할 수 있는 정원문화의 대표 사찰은 료안지, 금각사, 은각사 등이다. 이 중 사이호지 사찰은 교토시의 남쪽에 위치하고 있다. 큰 기대 없이 일행의 추천으로 방문할 수 있었다. 대중교통을 이용해 버스역에서 내린 후 계곡을 따라 흘러 내려오는 물길을 산책하듯이 걸으면 1㎞ 정도 후에 입구에 도착한다. 세계문화유산으로 등재된 사찰을 체험한 후 도달한 곳은 정원이었다. 이끼의 정원이라고 불리는 이곳 정원은 아름다움을 넘어 충격이었다. 현존하는 이끼류는 1만2,000여 종에 달한다고 하는데, 사이호지 정원에는 그중 100분의 1인 120여 종의 이끼가 조성돼 있었다. 바닥을 가득 채운 이끼와 작은 연못을 이루는 수경공간 그리고 시각과 공간을 따라 다른 의미로 조성된 식재들을 산책하며 걷는 동안 별천지가 따로 없음을, 어느 순간 인간계를 떠나 구름이 되어 있는 나를 느끼게 한다.

연못은 바다를 상징하고 그 위에 놓여 있는 작은 돌들은 중국인들이 유토피아로 여겼던 계림을 형상화하였다. 이때 이끼는 땅을 어떤 색조로 그려낼까를 고민한 일본인들의 고민의 결과임을 알 수 있다. 천상 세계를 꿈꾸던 고대인들은 조경을 통해 이를 형상화했는데 이런 시선으로 조경을 보면 그 의미가 살아난다. 나무는 각기 다른 높낮이를 갖고 있는데, 높은 나무의 헤어컷을 보면 구름을 연상할 수 있다. 신선들이 살 것 같은 호수와 산이 조성되고 구름처럼 떠 있는 나무들, 그리고 그와 어울리는 크고 작은 형상의 관목과 이끼들을 바라보며 인간계의 희로애락을 잊고 천상계의 것들을 명상해 내는 공간이 정원이었다. 사이호지의 이끼정원은 시대적으로 중국 정원의 영향을 받은 것으로 보이지만 중국 정원과 다른 일본 정원임을 그 표현력에서 동시에 느낀다.

일본인들에게 사찰은 권력의 중심공간이었다. 왕족이나 귀족이 사찰을 창건하고 자신의 사후세계를 예비함과 동시에 그곳에서 자신의 권위와 권력을 양성했다. 사무라이들은 24시간 칼을 차고 살아야 했고, 언제 죽음의 고비를 겪어야 할지 모르는 삶을 살았다. 이들에게 사찰은 명상을 통해 잠시 안식을 취할 수 있는 유일한 공간이었다. 그래서 이들은 이 공간에서 자신의 힘과 용맹함에 대한 지지를 받고 나아가 명상을 통해 꿈을 회복하며 현실을 준비할 수 있었다. 이렇게 형성되어 온 일본인들의 정원 문화는 정신적 영역에서 일본 문화정서에 중대한 역할을 했다. 가가호호 집안 후정에 작은 정원을 조성한 일본인들의 삶의 근원을 굳이 다른 연유에서 찾을 필요가 없다. 문화는 이유 없이 형성되지 않음을 1%의 충만함으로도 충분히 만끽할 수 있었다. 그것이 세계인들이 인정한 젠스타일의 기반이다.


김대석 건축출판사 상상 편집장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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