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사법개혁 초석' 윤관 전 원장 87세 별세
구속실질심사 도입 "국민 위한 사법개혁"
대통령 순방 영접 폐지... 사법부 독립 강화
상훈도 수여... 법원장(葬)으로 마지막 배웅
구속 전 피의자 심문(영장실질심사) 도입 등으로 사법개혁의 초석을 놓은 윤관(87) 전 대법원장이 14일 노환으로 별세했다.
윤 전 대법원장은 1935년 전남 해남에서 태어난 뒤 1962년 광주지법 판사로 법관 생활을 시작했다. 그는 서울지법, 서울고법 부장판사, 청주·전주지법원장 등을 거쳐 1986년 대법관으로 임명됐다. 1993년부터 1999년까지는 제12대 대법원장을 역임했다.
윤 전 대법원장은 재임 기간 사법개혁의 초석을 다졌다. 그는 "국민 편에 선 사법개혁"이라는 취임 일성에 맞춰 제도 개선에 매진했다. 취임 첫해 법조계, 학계, 언론계 인사 등 32명을 모아 사법제도발전위원회를 출범시켰다. 윤 전 대법원장은 당시 인권변호사들을 위원회에 들여오는 파격적인 선택도 했다.
사법개혁 성과로는 1997년 도입된 영장실질심사가 대표적이다. 영장심사 도입 전엔 판사들이 피의자 사정 등을 따져보지 않은 채 수사기록만 보고 구속영장 발부 여부를 결정했다. 1996년 검찰의 구속영장 청구 건수는 15만4,435건, 영장 발부율은 92.6%에 달했다.
윤 전 대법원장이 "피의자 신병 확보가 어려워진다"는 검찰 반발에도 영장심사 제도를 도입함으로써, 구속영장이 청구된 피의자들은 판사 심문을 받을 수 있게 됐다. 불구속 수사 원칙이 자리 잡자 지난해 검찰의 구속영장 청구 건수는 2만1,988건으로 감소했으며, 영장 발부율도 82.0%로 떨어졌다. 피의자의 방어권 보장이 한층 강화된 것이다. 윤 전 대법원장은 △기소 전 보석 제도 도입 △특허·행정법원 설치 △증인신문 방식 개선 등 사법행정 전반의 혁신도 주도했다.
윤 전 대법원장은 사법부 독립 강화에도 힘썼다. 대법원장실과 판사실에 걸려 있던 대통령 사진을 떼어냈다. 청와대에 판사를 파견하거나, 정보기관 직원이 법원에 출입하지 못하도록 했다. 대통령 해외 순방 때 대법원장이 환송·영접을 나가던 관례도 없앴다. 윤 전 대법원장이 이끈 대법원 전원합의체는 1997년 군사 반란 혐의 등으로 기소된 전두환·노태우 전 대통령에게 각각 무기징역과 징역 17년을 확정했다. 그는 대법원장 퇴임 후에는 법무법인 화우 고문변호사와 영산대 명예총장 등을 지냈다.
윤 전 대법원장은 37년간 사법부에 헌신한 공로를 인정받아 1999년 청조근정훈장을 받았고, 2015년 제1회 법원의 날에는 국민훈장 무궁화장을 받았다. 유족은 부인 오현씨와 아들 윤준(광주고법원장), 윤영신(조선일보 논설위원)씨, 남동생 윤전(변호사)씨 등이 있다.
대법원은 장의위원회를 구성해 법원장(葬)으로 고인의 마지막 길을 배웅할 예정이다. 빈소는 신촌세브란스병원에 마련됐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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