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우리가 몰랐던 달나라의 법]
우주법 전문가 정영진 국방대 교수 인터뷰
16일 우주로 날아오른 달탐사선 아르테미스 1호 발사는 한국에도 희망을 주는 소식이다. 한국은 미국 주도 국제 달 탐사 계획(아르테미스 프로그램)의 근간이 되는 아르테미스 약정(Artemis Accords)의 21개 서명국 중 하나기 때문이다. 미국은 동맹국 및 우방국으로 구성된 20개국과 함께 달 탐사, 유인기지 건설, 화성 탐사 등으로 이어지는 우주 개발을 이어가려고 한다.
다만 전문가들은 아르테미스 약정에 서명했다고 해서 아르테미스 프로그램 참여가 보장된 것은 아니라고 지적한다. 아르테미스 약정의 목적은 달 자원 관련 국제규범을 만드는 데 있고, 그 맥락을 잘 숙지하고 있어야 아르테미스 프로그램은 물론 향후 달 탐사 논의에 긴밀하게 대응할 수 있다는 것이다.
국내 최고의 우주법 전문가인 정영진 국방대 교수를 만나 아르테미스 약정의 의미와 한국 우주개발의 방향에 대해 들었다. 다음은 일문일답.
-아르테미스 약정에는 어떤 내용이 담겼나?
"투명한 임무 운영이나, 탐사로 확보한 과학데이터의 공개, 비상상황시 지원 의무 등에 대한 내용이 담겼다. 특히 중요한 것은 '우주자원 활용에 대한 기본원칙'이 담겼다는 점이다. 내용이 구체적이진 않고 문서의 형태도 일종의 양해각서인 '약정'이지만, 오랜 기간 합의를 이루지 못했던 우주자원 원칙을 담아 여러 나라의 서명을 받고 있다는 것은 매우 큰 의미가 있다. 미국이 원하는 방식으로 새 우주법을 만들려는 고도의 정치적 행위로 봐야 한다."
-아르테미스 약정을 '프로그램 참여 계약서'로 알고 있는 이들도 많다.
"정부기관에서도 아르테미스 약정의 의미를 제대로 짚지 않는 경우가 있다. 아르테미스 약정에는 프로그램 참여에 대한 언급이 없다. 약정 서명과 프로그램 참여는 엄밀히 다르다. 서명국과 프로그램 참여국의 면면을 보더라도 알 수 있다. 유럽우주기구(ESA)는 루나 게이트웨이 건설 등 아르테미스 프로그램의 약 50%를 담당하지만 아직 약정에 서명하지 않았다. ESA 분담금의 25%씩을 차지하는 프랑스는 최근에야 서명했고, 독일은 서명하지 않았다. 약정 내용이나 형태에 동의하지 않기 때문이다. 반면 약정 서명국 중 바레인 콜롬비아 싱가포르 등 이번 달 탐사에 기여하지 못할 것으로 보이는 국가들도 대거 포함돼 있다."
아르테미스 약정
1조 (목적) |
아르테미스 프로그램의 진전을 목적으로(with the intention of advancing the artemis program)로 실용적인 원칙·지침·모범 사례를 통해 공통의 비전을 수립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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10조 (우주자원) |
우주자원의 채굴 및 이용은 1967년 우주조약에 합치하는 방식으로 수행되야 한다. 자원 활용은 안전하고 지속가능한 운영의 핵심 지원을 제공해 인류에 혜택을 준다. 자원 추출 활동은 유엔 사무총장과 대중, 과학계에 알린다. |
12조 (궤도 쓰레기) |
서명국들은 실행 가능한 범위에서 쓰레기의 신규 발생, 정상 운용 중 발생하는 장기 잔존 쓰레기, 운용 중 또는 임무 후 파열 등을 제한할 것을 약속한다. |
-과거에도 우주자원 관련 논의가 있었는데, 특히 이번 아르테미스 약정에 주목하는 이유는 무엇인가?
"미국이 세계 최초로 우주자원 채굴에 성공할 가능성이 높기 때문이다. 국제법에선 국제관습법이 1차적 법원(法源·법의 근거)이다. 관행이 일정기간 지속적으로 반복되고 다른 국가들이 묵인한다면, 실제 적용된적 없는 합의 문서보다 우선한다. 현재 미국은 우주자원 채굴 원칙이 적힌 아르테미스 약정에 서명을 받고 있다. 많은 국가들의 서명을 받은 아르테미스 약정에 규정된 원칙을 지키며 달 자원 채굴에 성공한다면, 미국은 우주자원 채굴에 대한 선례를 만들게 된다. 아르테미스 프로그램이 새 우주법의 기틀을 만들게 될 가능성이 큰 것이다.
아르테미스 약정을 기반으로 국제 규범을 만들려는 의도는 미국이 이 문서를 유엔에 기탁했다는 것에서 잘 드러난다. 아르테미스 약정은 유엔헌장상 국제조약은 아니지만, 미국은 사본을 유엔의 모든 공용어로 번역해 공개함으로써 약정이 유엔의 모든 회원국에 회람되는 공식문서라는 것을 보여주고자 한다."
-아르테미스 협정에 들어가지 않은 중국과 러시아의 입장은 어떤가?
"달 자원 채굴 자체에 대해 반대하는 국가는 없다. 독자적으로 우주개발에 나서고 있는 중국과 러시아의 입장에서도 자원 채굴에 반대할 이유는 전혀 없다. 다만 이들은 다자협약을 통해 미국을 견제하고자 한다. 유엔에서 공식적으로 논의해야지, 아르테미스 약정처럼 미국 주도의 1대 다(多) 형태로 규범을 만드는 건 바람직하지 않다는 것이다."
-우주자원 국제법은 어떤 과정을 거쳐 만들어지게 될까?
"일단 미국이 주도권을 잡았다. 약정 서명국이 늘고 아르테미스 프로그램이 본격화되면 약정에 규정된 원칙의 이행을 검토하기 위해 서명국 회의가 정기적으로 개최될 것이다. 나아가 다수 국가가 참여하는 사무국이 설립되면 사실상 국제기구의 형태를 띠게 될 수 있다. 유엔 우주공간평화위원회(COPUOS)는 작업반을 만들고 우주자원의 탐사, 채굴 및 이용에 적용할 수 있는 규범을 앞으로 5년간 본격적으로 논의할 예정이다. 미국은 아르테미스 약정의 원칙을 COPUOS 작업반의 권고 내용에 반영하기 위해 외교적 노력을 기울일 것이다.
많은 국가들은 심해저 자원을 관리하는 국제해저기구(ISA)를 모델로, 국제체제를 만들어야 한다고 이야기한다. 개인적으로는 우주 자원의 경제적 이익이 어떠한 형태로든 개도국에게도 제공돼야 한다고 생각한다. 우주 쓰레기, 우주 환경 오염과 같이 우주개발에 필연적으로 수반되는 부정적 영향이 우주활동을 하지 않은 국가에게 미칠 수 있기 때문이다. 국가나 기업의 이익뿐만 아니라 그 결과물을 국제적으로 공유하는 방법을 모색해야 한다."
-달 자원 고갈을 막는 규정도 필요하지 않을까?
"적은 양으로도 인류의 몇백 년 자원을 대체할 수 있다고 하는 상황이다. 고갈을 우려하기엔 너무 성급하다. 다만 국제사회가 무질서한 채굴을 허용하진 않을 것이다. 공해에서 어획량을 조정하듯이 여러 장치를 통해 조정해 나갈 수 있는 문제다. 전체적인 매장량이 파악되면 세부 논의도 따라올 것이다. 예컨대 △어떤 광물은 어느 정도까지만 채굴한다 △희귀자원은 탐사국 모두의 합의를 거쳐 채굴하고 국제사회가 공동 관리한다 △특정 지역은 보존 지역으로 지정한다 등 여러 논의가 이뤄질 수 있다."
-우주 광물에서 경제적 이익을 얻게 될 시점은 언제라고 예상하나? 우주법이 그때까지 마련될 수 있을까?
"우주자원 채굴이 현실화되기 위해선 달로 장비를 이동시키는 기술은 물론, 추출 가능한 자원을 탐색하고 공정을 거쳐 보관한 뒤, 지구로 회수하는 기술이 필요하다. 최소 30년은 소요될 것으로 본다. 이 기간이라면 충분히 우주법이 체계화될 것으로 기대한다."
-현재 한국의 우주정책을 평가한다면?
"우리 정부는 우주법에 대한 특별한 입장이 있다기보다, 아르테미스 약정에 서명하는 것이 아르테미스 프로그램 참여나, 미국과의 우주개발 접점을 늘리는데 유리하다고 판단한 것으로 보인다. 국익을 따지면 분명 잘한 일이다. 우리도 발사체 기술을 확보했고 달 궤도탐사를 앞두고 있다. 탐사 당사국의 위치에서 우주법 논의에 참가하는 것이 (우주개발 규제의 입장에 서는 것보다) 국익에 도움이 된다.
또 한국의 우주기술로는 독자적 달 탐사나 자원 채굴에 한계가 있다. 미국 등 선도국과의 협업이 중요하다. 우리의 세부 기술을 활용해 국제 프로젝트에 참여하는 쪽으로 우주개발을 확대해 가야한다."
-국내 우주정책에서 개선해 가야 할 점이 있다면?
"우주조약에 따르면, 국가는 정부기관뿐만 아니라 민간기업, 대학 등 비정부기관의 우주개발에 대해 국제적으로 책임을 진다. 특히 비정부기관이 우주개발을 하기 위해서는 정부의 허가와 지속적인 감독을 받아야 한다. 정부가 허가와 감독을 위한 법령을 제정하는 것은 우주조약 당사국의 의무이다. 그러나 (한국에 하나 있는) 우주개발진흥법은 국가 우주정책 및 우주개발계획 수립, 거버넌스 등 연구개발의 진흥이 중심이다.
우주개발이 정부 재정으로만 이뤄지던 시기엔 사업 자체를 정부가 통제하기 때문에 법이 꼭 필요하지 않았다. 하지만 민간이 주도하는 우주개발을 위해선 국제규범에 의거해 그들을 감독하는 별도 제도가 있어야 한다. 구체적으로는 인공위성 운영 사업자 허가, 우주물체 운용 등을 정한 법이 필요해 보인다. 예를 들면, 프랑스에는 '우주물체의 운용에 관한 법률'이, 일본에는 '인공위성 등의 발사 및 인공위성의 관리에 관한 법률'이 있다.
이제 한국도 우주를 둘러싼 국제관계를 제대로 이해해야 할 때다. 우주법은 1960년대 초에 이미 국제법의 한 분야로 확립됐고, 우주 선진국들은 우주조약 등 국제법에 따라 우주개발에 관한 상세한 국내법을 제정했다. 그런데 아직 한국은 우주를 과학기술의 영역으로만 대한다. 법과 국제정세를 잘 모르니 우주군 창설이나 민간 위성 개발에도 소극적이다. 해외에선 오래 전부터 많은 우주법 전문가들이 외무부 등 정부부처는 물론 우주산업체, 보험회사에 포진해 있다. 우주를 현실의 영역으로 이해하고 전문가 양성에 힘을 기울여야 할 때다."
정영진 교수는
2009년 프랑스 파리 11대학에서 우주법으로 박사학위를 취득한 뒤 같은 해 10월부터 한국항공우주연구원에서 우주법과 우주정책을 연구했다. 사법통일국제기구(UN IDROIT) 우주자산의정서 조약문 작성과 채택 과정에 참여했으며, 유엔 우주평화적이용위원회(UN COPUOS) 법률소위원회 한국대표단으로 활동하고 있다. 헤이그 상설중재재판소(PCA)에서 지명한 우주분쟁 중재 전문가다. 올 9월 국방대학교로 자리를 옮겼고 내년부터 우주정책학 석사과정에서 우주법, 우주정책 등을 가르칠 예정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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