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소방관 함부로 건드리지 마라

입력
2022.11.10 22:05
26면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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김희원
김희원뉴스스탠다드실장

가장 열심히 구조하고도 줄줄이 입건
목숨 걸고 목숨 구하는 헌신 능멸하나
책임 전가 수사 큰 오점으로 남을 것

소방의 날인 9일 오전 서울 용산소방서에서 열린 이재명 더불어민주당 대표와의 간담회에서 사회를 본 용산소방서 소방관이 경찰 수사에 울분을 표하며 울먹이고 있다. 뉴스1

소방의 날인 9일 오전 서울 용산소방서에서 열린 이재명 더불어민주당 대표와의 간담회에서 사회를 본 용산소방서 소방관이 경찰 수사에 울분을 표하며 울먹이고 있다. 뉴스1

이태원 참사를 수사하는 경찰청 특별수사본부가 7일 최성범 용산소방서장에 이어 9일 현장지휘팀장도 업무상과실치사상 혐의로 입건했다. 뭐 하자는 건가. 가장 먼저 현장에 달려가 한 명이라도 더 구하려 몸과 마음이 피폐해진 이들에게, 죽은 목숨을 책임지라니 무슨 일인가.

압수수색영장에는 최 서장이 30분 걸려 대응 2단계로 올린 ‘늑장대응’ 혐의가 적시됐고, 가까운 순천향대병원을 임시 영안소로 지정해 중상자 대응에 차질을 빚게 했다는 보도가 나왔다. 더 나은 지휘가 간절하지만, 그걸 못한 것은 불가항력이거나 현장 책임을 넘어선 것이다. 접근조차 어려운 상황에 대응 격상 30분이 처벌 대상이라면, 대통령 지시를 재난정보관리시스템으로 전송하는 데에만 39분이 걸린 행안부 상황실은 중형감이겠다. 차량과 인파를 통제해 달라는 수십 차례 소방 측 요청에도 서울경찰청 기동대가 밤 11시 40분에야 온 건 어떤 처벌로도 부족하겠다. 사망자 이송이 몰린 여파는 따져봐야 하지만, 의료기관·영안소를 섭외해 사상자를 적절히 이송하는 것은 용산구와 보건소, 또 서울시와 복지부가 나서야 할 몫이다.

처참한 진실은, 119구조대와 재난의료지원팀이 도착했을 즈음 골든타임 4분을 한참 넘긴 압사자가 너무 많았다는 것이다. 112 신고가 쏟아지던 그날 초저녁이 피해를 막을 마지막 기회였을 것이다. 그래도 구급대와 시민들은 수십 분씩 심폐소생술을 하고 팔다리를 주물렀다. 10월 29일 밤 한국에 재난 컨트롤타워는 부재했고 오직 현장만 가동했다.

특수본이 컨트롤타워는 쳐다보지도 못한 채 일선을 겨냥해 무차별 수사를 벌이니 비번 날 나온 최 서장이 형사처벌 대상에 오른다. “왜 4시간 동안 물끄러미 쳐다만 보고 있었느냐”는 윤석열 대통령의 격노에, “대통령실 국정상황실은 재난 컨트롤타워가 아니다”라는 김대기 비서실장의 낯익은 변명에 부응한 결과다. 이런 수사가 참사를 종결지을 수 없다. 오히려 우리 공동체의 가장 숭고한 직업인에게 상처를 준 오점으로 남을 것이다.

소방관은 여느 공무원과 다른 직업정신, 특별한 DNA를 가졌다. 소방관 DNA란 그러니까, 삼풍백화점 붕괴 현장에서 구조하며 “제발 살아만 있어라, 내 목숨 걸고 구하겠다”고 되뇌는 그런 것이다. 경기 용인시 아파트 지하에서 LPG 가스에 질식된 이에게 자기 산소마스크를 씌워주고 쓰러진 그런 것이다. 미국 9·11 테러 때 사람들이 뛰쳐나오는 세계무역센터 빌딩으로 당연하다는 듯 진입하는 그런 것이다. 이재명 더불어민주당 대표가 간담회를 시작한 지 12초 만에 출동 벨이 울리자 박차고 뛰어나가는 그런 것이다. 휘두를 권한은 없이 오직 불을 끄고 사람을 구하는, 스스로 다치고 정신적 외상을 입을 수 있다는 것을 알면서도 또 구하러 가는, 헌신의 DNA다. 9·11 테러 사망자 약 3,000명 중 330여 명이 소방관인 이유, 가장 존경하고 신뢰하는 직업 1위로 소방관이 흔히 꼽히는 이유다.

생명을 구하는 사명감으로 희생을 감수하는 소방관에게 피의자 취급은 모욕이다. 특수본은 “압수수색을 위해 입건했다”지만 설사 오판이 있었다 해도 이런 강제수사는 마땅하지 않다. 그들의 헌신을 국가가 능멸하는 꼴이다. 목숨 걸고 목숨을 구하는 이들을 이렇게 대해서는 안 된다.

시민들은 ‘소방관은 건드리지 말라’며 함께 분노하고 있다. 가장 위급한 순간 어디선가 나타나 구조의 손을 뻗을 이가 소방관임을 알고 있기 때문이다. 그들을 울분과 회의에 빠뜨린다면 누가 우리 생명을 구하러 올 것인가. 소방관이 없다면 우리에게 마지막 희망은 없다. 소방관 함부로 건드리지 마라.

김희원 논설위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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