국가애도기간이 종료되고, 본격적으로 참사의 원인과 책임 소재를 가리는 데 사회적 관심이 집중되고 있다. 대규모 인명피해가 발생한 이 같은 대형 참사의 재발을 막기 위해서라도 그 원인을 파악하고 엄격히 책임을 묻는 것은 반드시 필요한 조치이다.
현재까지 밝혀진 바로는 이태원의 좁은 골목 곳곳에 들어선 불법건축물도 참사의 원인 중 하나로 지목되고 있는데, 충격적인 것은 관계 법령상 불법건축물은 행정대집행으로 강제철거까지 가능함에도 불구하고 관할 지자체에서는 9년간 이행강제금만 부과하면서 계속 영업하도록 방치해 왔다는 점이다.
지금은 참사의 책임 소재에 이목이 집중되어 있지만, 참사의 재발을 막기 위해서는 ‘불법의 방조’에도 더욱 주목할 필요가 있다. 불법의 방조는, 일상적으로 불법적인 상황들이 벌어지고 있음에도 불구하고, ‘설마, 괜찮겠지’라는 식의 안일함으로 그 상황을 방치한 행정편의주의와 무사안일주의의 산물이라 할 수 있다.
그리고 도로에서는 그러한 ‘불법의 방조’를 하루에도 몇 번씩 목격할 수 있고, 그로 인해 벌어지는 각종 교통사고 상황이 담긴 블랙박스 영상과 이를 분석하는 콘텐츠가 대중의 관심을 받기에 이르렀다.
경찰청 통계에 따르면, 2021년 기준 국내에서 발생한 교통사고로 2,916명이 목숨을 잃고 291,608명이 부상을 당했다. 연간 교통사고 사망자 수가 1만 명을 웃돌던 과거에 비해 현저히 줄어들었다고는 하지만, 여전히 교통선진국 대비 높은 수준이다. 교통사고의 상당수는 교통법규만 잘 지켰어도 일어나지 않았을 사고라는 점에서, 제대로 지켜지지 않고 있는 교통법규를 그대로 방치하는 것 또한 불법의 방조라 할 수 있다.
흔히 도로를 혈관에 비유하는데, 혈관이 막혀 혈류가 원활하지 않으면 사망에 이를 수 있는 것처럼, 교통의 흐름이 원활하지 않으면 사고로 이어질 위험이 매우 높아진다. 도로교통법 제60조 제1항에서는 지정차로제를 규정하여 고속도로의 1차로를 추월차로로 규정하고 있고, 제21조 제1항에서는 추월을 앞차의 좌측으로만 하도록 규정하고 있는데, 이는 도로를 운행하는 자동차들의 원활한 흐름을 확보하기 위한 최소한의 안전장치라 할 수 있다.
그러나 차로 변경이 귀찮고 번거롭다는 이유로, 혹은 교통법규를 잘 모른다는 이유로 지정차로제와 우측추월금지를 지키지 않는 운전자가 많고, 당국의 무관심, 즉 ‘불법의 방조’ 상황이 십수년 간 지속되면서 거의 유명무실해지는 지경에 이르렀다.
특히 지정차로제와 관련하여 ‘어차피 제한속도가 똑같은데 추월차로를 지키라는 건 과속을 조장하는 것이냐’는 비판이 제기되는 것에서도 알 수 있듯이, 지정차로제를 규정하면서 추월차로와 주행차로의 제한속도는 동일하게 한 것은 운전자들에게 혼란을 유발하는 요인이다.
따라서 지정차로제 위반과 추월방법 위반에 대한 단속과 계도도 중요하지만, 운전자들이 지정차로제를 실질적으로 준수할 수 있도록, 추월 시에 한해 최고 제한속도의 10~20%를 초과하여 추월하는 것을 허용하거나, 추월차로와 주행차로의 제한속도를 차등적으로 규정하는 등의 제도적 보완책 마련도 필요하다.
또다른 불법의 방조 사례는, 지난 칼럼에서도 지적했던 것처럼 자동차관리법과 도로교통법에서 자동차의 창유리 농도, 즉 틴팅(썬팅)에 관해 규정을 두고 있으면서도 두 법 사이에 모순이 있을 뿐만 아니라, 단속도 이루어지지 않고 있다는 점이다.
연구결과에 따르면, 틴팅이 짙은 경우 외부 상황에 대한 운전자의 반응시간이 약 30% 이상 늦어지는 것으로 나타났고, 가시광선 투과율이 60% 이하로 떨어질 경우 룸미러나 사이드미러로 보이는 사물의 거리감각 또한 현저히 떨어지는 것으로 나타났다고 한다.
그럼에도 불구하고 민원 등을 이유로 이에 대한 단속이나 계도는 전혀 이루어지고 있지 않은데, 이 또한 불법의 방조라는 점에서, 과거와 같이 자동차 정기검사 항목에 창유리 농도를 부활시키거나 보다 구체적인 연구를 통해 현실과 타협할 수 있는 적정 수준의 창유리 농도를 다시 규정하고 이를 준수하지 않은 차량에 대해 강력히 단속하는 등 행정 당국의 적극적인 조치가 이뤄져야 한다.
불법의 방조를 유발하는 당국의 무지와 무관심이 드러난 사례도 있는데, 지난 5월에는 7인승 수입 SUV에 좌석 2개를 임의로 설치하여 9인승 승합차로 허위신고 하고 인증을 받은 후, 다시 좌석을 떼어내고 7인승으로 판매함으로써 부당하게 각종 세제혜택을 받고 서류상으로는 9인승인 점을 이용하여 버스전용차로까지 이용할 수 있도록 만든 수입업체 두 곳이 세관에 적발되었다.
해당 SUV는 제조사에서 7인승까지만 생산하는 차량이어서 인증서류 심사 단계에서 이와 같은 불법이 적발되었어야 함에도, 담당자의 무지와 무관심 등으로 인해 불법이 수년간 지속되어 오다가 주무 부처인 국토교통부가 아닌 세관에 의해 이러한 불법 사항이 적발되었다는 점은 자동차와 관련한 불법의 방조의 심각성을 나타내는 또다른 사례라 할 수 있다.
도로교통법 제1조는 ‘이 법은 도로에서 일어나는 교통상의 모든 위험과 장해를 방지하고 제거하여 안전하고 원활한 교통을 확보함을 목적으로 한다’고 규정하고 있다. 즉, 안전과 원활한 교통 확보라는 양립하기 어려운 두 가지 목표를 지향하고 있는 것인데, 따라서 이를 달성하기 위해서는 정부 당국과 많은 전문가들의 노력이 지속적으로 뒷받침되어야 한다.
그러나 일률적으로 제한속도를 하향함으로써 많은 논란을 일으켰던 5030 정책, 강변북로나 올림픽대로처럼 구간 내에 다수의 진출입로가 있어 단속이 유명무실함에도 무분별하게 늘어나고 있는 구간단속, 수km에 달하는 터널이나 고가도로 위 차로 변경금지 실선구간 등과 같이 근본적인 제도적 보완 없이 이루어지는 단속과 통제 위주의 정책은, ‘원활한 교통의 흐름’이라는 도로교통법의 또다른 목적을 간과한 행정편의주의적인 접근이자, 당국의 무지와 무관심, 비전문성을 고스란히 나타내는 것이라 할 수 있다.
이태원 참사에서도 드러난 것처럼, 자동차와 교통에 대한 행정당국의 무지와 무관심, 전문인력 부족과 그로 인한 ‘불법의 방조’가 지속된다면, 우리의 교통안전을 위협하고 나아가 국민의 생명과 재산에 대한 위험을 증가시키는 결과를 낳을 수도 있다는 점에서, 자동차와 교통 안전에 관한 불법의 방조 또한 하루 빨리 뿌리 뽑아야 한다.
글: 법무법인 제하 변호사 강상구(skkang@jehalaw.com)
前 법무법인(유한) 태평양 변호사
前 국토교통부 자동차안전하자심의위원회 사무국 변호사
現 국토교통과학기술진흥원 스마트시티 전문가 위원
現 기술규제위원회 전문분과위원회 전문가 위원
現 법무법인 제하 변호사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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