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이상민 장관 책임 공방이 한가한 이유

입력
2022.11.09 18:00
수정
2022.11.09 18:38
26면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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위기감 인식 없는 관료시스템 정말 위기
흥국생명 사태 안이한 당국자 혼란 방치
책임지지 않는 몰염치 관료 쇄신 어려워

편집자주

매주 수요일과 금요일 선보이는 칼럼 '메아리'는 <한국일보> 논설위원과 편집국 데스크들의 울림 큰 생각을 담았습니다.

이상민 행정안전부 장관이 9일 정부서울청사에서 열린 이태원 참사 및 코로나19 중앙재난안전대책본부 회의에서 모두발언을 하고 있다. 뉴스1

이상민 행정안전부 장관이 9일 정부서울청사에서 열린 이태원 참사 및 코로나19 중앙재난안전대책본부 회의에서 모두발언을 하고 있다. 뉴스1

윤석열 대통령을 기대한 측면 중 하나는 첫 관료 출신이란 점이다. 국민들은 최후에는 정치인보다 관료를 믿는다. 문제는 부실채권에도 퇴출되지 않는 기업 오너처럼 관료는 실책을 해도 멀쩡하다는 것이다. 선출직이라면 유권자 위임을 받은 업무를 지속할지가 투표로 결정된다. 선출되어 자리에 있는 게 아닌 관료는 잘못을 해도 책임지지 않는다. 잘못된 정책이 계속되는 것은 관료 시스템의 책임 소재가 없기 때문일 것이다.

지난 정권들의 불화에서 보듯 관료를 관리할 만한 강한 정치인도 거의 없다. 그러나 민간기업이 최종적으로 주주에게 책임을 지우는 것과 마찬가지로 관료도 누군가에게 책임을 져야 한다. 잘못했다면 인정하고 자리에서 물러나는 관료가 있어야 국민도 안심할 수 있다. 책임지지 않는 관료는 몰염치하고 그런 관료로는 국정도 쇄신될 수 없다.

대통령이 국가안전시스템 점검회의에서 책상을 내리치며 격노한 모습이 공개됐다. 관료 조직 문제를 잘 알고 있기 때문에 가능한 장면일 것이다. 혼을 내고 혼이 나는 건 열심히 일하는 다른 모습일 수 있다. 그럼에도 누구 하나 책임지지 않는다면 국민은 다시 불안을 보게 된다. 이태원 참사가 드러낸 시스템 허점은 대통령에게 혼이 난 경찰만의 것도 아니다.

대통령 지시와 해당 부처의 손발이 맞지 않는 경우는 한둘이 아니다. 보건복지부만 해도 장관이 첫 상황보고를 차관에게서 받았다고 했는데 그 시간은 대통령의 응급의료체계 신속대응 지시 62분이 지나서였다. 대통령 지시가 책임자에게 하달되는 데 한 시간 넘게 걸렸다면 관료 시스템의 오작동이다.

이태원 참사에 가려졌지만 흥국생명 콜옵션 사태 역시 관료들이 안이하게 판단해 혼란을 방치한 사건이다. 이복현 금감원장은 “시스템적으로 사전 개입이 쉽지 않은 측면이 있다”고 말했으나 금융당국이 사전 개입한 물증은 뚜렷하다. 금융위, 기재부, 금감원은 2일 공동으로 ‘흥국생명 조기상환권 미행사 관련’ 보도 참고자료를 냈다. 이들은 “흥국생명의 조치를 합리적 선택”이라고 승인했고 “채무불이행은 문제되지 않은 상황”이라고 낙관했다.

해외시장 반응을 무시한 오판에 한국물 채권이 거래절벽으로 치달았고 외화조달 경고음은 다시 울렸다. 대통령실에 불려가 혼쭐이 난 금융당국은 주말 사이 입장을 번복해 조기상환을 결정했다. 레고랜드 사태 때도, 이번 사태에서도 경제·금융당국의 부재는 확인됐지만 모두 거기까지였다. 대통령 주재로 비상경제회의가 11번 열렸어도 이처럼 ‘비상’도 책임도 없는 관료들이야말로 위기일 것이다.

집권 6개월인데도 시스템이 제대로 돌아가지 않는, 실무진이 안 움직이는 데는 여러 이유가 있다. 일을 시켜야 할 대통령이 일을 앞서 해서, 부처에 지나치게 위임해서, 비서실이 대통령 입만 바라봐서 그렇다는 지적은 반복된다. 그 가운데 지연되거나 적체된 인사 요인은 무엇보다 크다. 교육부 복지부 노동부 등 사회부처는 물론 문체부 외교부 등도 예정된 인사가 제때 나지 않고 있다. 2인자인 기조실장이 국정원장이 아닌 대통령에게 사의를 표하고 물러난 국정원 사태 역시 인사 갈등이 원인으로 알려져 있다. 인사로 역할을 부여하고 성과를 거두기 어려운 여건이라면 국가 시스템이 제대로 작동할 리 없다.

호랑이에게 팔을 물린 채 “호랑이에게 물려가도 정신만 차리면 산다”는 광고 카피가 인기인 시절이다. 21세기의 부국 유럽에선 도시들이 절약을 위해 가로등마저 끄고 있다. 위기를 옆에 둔 지금 국가 기능은 한 치 허점도, 한순간 방심도 허용될 수 없다. 하지만 많은 불확실성 속에서 또 무엇이 무너지고 있는지 알 수 없다. 국민적 신망보다 대통령과의 동지적 관계가 중시되는 이상민 행안부 장관의 경질 공방이 한가해 보일 수밖에 없다.

이태규 논설위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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