회사채시장 급랭에 돈줄 막힌 기업
은행서 한 달 새 13.7조 원 빌려
SK 등 대기업도 CP 시장 문 두드려
CP금리 年5.02%... 금융위기 이후 최고
지난달 기업들이 은행에서 받은 대출이 14조 원에 육박하며 동월 기준 사상 최대치를 기록했다. 대표적 자금 조달 창구라 할 수 있는 회사채시장이 얼어붙으면서 기업들이 은행으로 몰려간 결과다. 얼어붙은 투자 심리에 대기업마저 회사채 발행을 주저하고 있어 자금 경색 국면이 장기화할 조짐이다.
대기업, 회사채 막히니 은행서 9.3조 대출
9일 한국은행이 발표한 '10월 중 금융시장 동향'을 보면, 지난달 은행 기업대출 잔액은 1,169조2,000억 원으로 전월보다 13조7,000억 원 증가했다. 10월 기준으로 관련 통계가 작성된 2009년 이후 역대 최대 증가폭이다. 대기업 대출이 9조3,000억 원 늘면서 전체 대출 증가를 주도했다. 이 역시 통계 작성 이후 가장 큰 폭의 증가다.
기업들이 은행 대출로 몰린다는 건 그만큼 회사채 발행 등을 통한 직접 자금 조달이 어려워졌다는 뜻이다. 현금 확보가 필요한 기업들로선 회사채를 발행해 자금 수혈을 하기 마련이지만, 최근 채권시장이 얼어붙은 탓에 '울며 겨자 먹기'로 상대적으로 비용이 더 드는 은행 대출 창구로 방향을 튼 것이다.
실제로 기업들이 회사채 발행을 주저하면서 회사채 순상환 규모는 커지고 있다. 지난달 회사채 순발행(발행액에서 상환액을 뺀 것)은 -3조2,000억 원으로 9월(-6,000억 원)보다 규모가 대폭 늘었다. 이는 회사채 발행액보다 상환액이 더 많았다는 얘기다. 한은은 "투자 심리가 위축되면서 회사채 발행 부진이 이어졌다"고 했다.
8일 기준 신용스프레드(국고채와 회사채 'AA'- 3년물 금리 차)는 1.486%포인트로 지난달 말(1.395%포인트)보다 더 벌어졌다. 신용스프레드가 커진다는 건 시장이 회사채에 대한 위험성을 높게 보고 있다는 의미다.
장기 CP로 눈 돌리는 대기업도... 금리 치솟아
기업들의 자금 조달 여건은 갈수록 팍팍해지고 있다. 돈 떼일 위험이 적은 우량 기업마저 높은 금리를 얹어 근근이 유동성을 확보하는 형편이다. 아예 기업어음(CP)으로 눈을 돌리는 대기업도 있다. 지난달 31일 SK는 총 2,000억 원어치 장기 CP를 이달 10일 발행한다고 신고했다. 금리는 3년물 5.629%, 5년물 5.745%다. 1년 이상의 장기 CP 발행은 SK 창사 이래 처음이라고 한다.
CP의 경우 회사채처럼 수요 예측 절차를 거치지 않아도 돼 투자자 모집 과정에서 공개적으로 평가가 노출되는 부담이 적다. 쉽게 말해 미매각으로 평판이 깎일 위험이 적은 편이다. 2020년 코로나 위기 때도 일부 대기업 계열사는 회사채시장이 경색되자 CP시장을 자금 조달 대체 수단으로 삼았다.
이날 한은에 따르면, CP·단기사채는 한 달 새 4,000억 원 순상환에서 3조1,000억 원 순발행으로 돌아섰다. 한은 관계자는 "민간 우량 기업을 중심으로 CP 발행이 일정 부분 나온 결과"라고 설명했다.
이에 CP 금리도 치솟고 있다. 이날 A1등급 CP(91일물) 금리는 전날보다 0.04%포인트 오른 연 5.02%를 기록해 글로벌 금융위기 당시인 2009년 1월 이후 가장 높았다. 기업들의 CP발행이 늘면서 금리는 9월 21일(연 3.13%) 이후 35거래일 연속 상승하고 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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