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후보작 5> 이장욱 '트로츠키와 야생란'
편집자주
※ 한국문학 첨단의 감수성에 수여해 온 한국일보문학상이 55번째 주인공을 찾습니다. 예심을 거쳐 본심에 오른 작품은 10편. 심사위원들이 매주 화요일과 목요일 본심에 오른 작품을 2편씩 소개합니다(작가 이름 가나다순). 수상작은 본심을 거쳐 이달 하순 발표합니다.
이장욱 소설은 기억을 매개로 삶의 원근감을 재조정한다. 그리고 그건 이장욱의 이전 작품들에서 봐 왔던 ‘아는 매력’이 맞다. 그럼에도 이번 소설을 다시 조명하는 건 ‘트로츠키와 야생란’만의 성취 때문일 것이다. 이 특별한 거리감을 무엇이라 부르면 좋을까. 21세기적 무의식에 깃든 새로운 자의식? “어둡고 캄캄한 19세기적 자의식”의 2022년 버전? 무엇이라 부르든 그것은 모두 우리 의식의 가장 현재적인 초상을 가리킨다.
대표적인 작품이 ‘귀 이야기’다. ‘귀 이야기’는 딴소리만 일삼는 세 사람의 강원도 여행기다. 말이 통하지 않는 탓에 점점 더 산으로만 가는 이들의 여행은 목적지인 기념관이 아니라 뜬금없이 월정사에 도착하는 것으로 엉뚱함의 절정에 다다른다. 얼핏 보면 투박한 우화 같지만 실상은 지극히 예민한 시선으로 당대 ‘불통’의 특성을 간파하는 이 소설은 불통의 핵심에 ‘샐쭉한 마음’이라는 기묘한 거리감을 배치해 둔다. 소설에서 가장 빈번하게 등장하는 표현인 ‘샐쭉하다’는 마음에 차지 않아 약간 고까워하는 태도를 이른다.
‘나’를 샐쭉하게 만드는 자들은 유튜브에서 활약하는 ‘크리에이터’들이다. 사회관계망서비스(SNS)를 좋아하지 않는 ‘나’에게 그들이 사는 세상은 말 그대로 딴 세상일 뿐이다. “그놈의 시대정신”에서 벗어나도 한참 벗어나 있는 ‘나’와 이들 사이의 거리는 ‘샐쭉함’이다. 샐쭉함은 여행을 못할 정도는 아니지만 여행하는 내내 서로의 말을 못 알아들어 줄곧 평행선만 달리게 되는 거리감이다. 샐쭉함은 목숨 걸고 싸울 만큼 적대적인 감정은 아니다. 하지만 없는 셈 칠 수 있는 사소한 감정도 아니다. 사소하지도 않고 결정적이지도 않기 때문에 손쓸 방도가 없다. 오늘날의 불통은 ‘손쓸 수 없는 사소함’에서 비롯된다. 서로가 서로의 생각을 하찮게 여기는 사이 모두에 의해 모든 생각이 하찮아졌다. 진실 따위, 사실 따위, 논쟁이나 이념 따위, 모두 샐쭉하다. 이제 중요한 건 없다. 각자의 딴 세상만이 계속될 뿐이다.
일찍이 인간의 귀는 지상과 물속의 차이를, 지상과 하늘의 차이를 가장 격렬하게 느끼는 부위였다. 그토록 격렬하고 예민했던 귀들은 다 어디로 사라진 걸까. 차이를 느낄 수 있었던 아름다웠던 시절은 과거로 다 흘러가 버린 걸까. 어느덧 남은 것은 "홀로 헤매는 미래의 어느 날", "우리가 상상하지 않으려 했던 바로 그 미래"다. 딴소리로 가득한 딴 세상에서 기억이 불러오는 건 소멸한 사람, 그리운 사람만이 아니다. 소멸한 생각, 그리운 대화, 이른바 홀로 헤매지 않는 ‘우리’이기도 한 것이다.
기사 URL이 복사되었습니다.
댓글0