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선비의 기품처럼… 서원에 향교에 은행잎 카펫

입력
2022.11.08 17:00
21면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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은행나무가 있는 풍경
전주향교, 달성 도동서원, 아산 맹씨행단, 밀양 금시당

전주향교 대성전 마당의 은행나무가 바닥과 주변을 노랗게 물들이고 있다. 사진은 2015년 11월 16일 모습이다. 올해는 이번 주말 절정에 이를 것으로 전망된다. 임영식 제공

전주향교 대성전 마당의 은행나무가 바닥과 주변을 노랗게 물들이고 있다. 사진은 2015년 11월 16일 모습이다. 올해는 이번 주말 절정에 이를 것으로 전망된다. 임영식 제공

은행잎 떨어지면 가을도 지고 만다. 입동이 지났으니 계절은 겨울로 접어들었다. 찬바람이 조금만 살랑거려도 노랗게 물든 은행잎이 비처럼 후드득 떨어진다. 이번 주말이면 커다란 은행나무 바닥마다 황금빛 융단이 깔릴 것으로 보인다. 찬란한 가을의 마지막 풍경이다.

원주 문막읍의 반계리 은행나무는 풍채가 좋기로 첫손에 꼽는데, 전날까지 풍성하던 잎이 지난 5일 밤사이 거짓말처럼 모두 떨어져 내렸다. 바닥에 수북하게 은행잎 카펫이 깔렸다. 남부 지역의 은행나무는 조금 늦게까지 운치를 즐길 수 있을 것으로 보인다.

멋들어진 수형을 자랑하는 원주 문막읍 반계리 은행나무는 잎이 모두 떨어진 상태다. 7일 여행객들이 사진을 찍으며 아쉬움을 달래고 있다. 최흥수 기자

멋들어진 수형을 자랑하는 원주 문막읍 반계리 은행나무는 잎이 모두 떨어진 상태다. 7일 여행객들이 사진을 찍으며 아쉬움을 달래고 있다. 최흥수 기자

서원이나 향교의 은행나무는 기와지붕과 어울려 고풍스런 멋을 풍긴다. 유학 교육기관의 은행나무는 공자가 행단(杏壇)에서 제자를 가르쳤다는 고사에서 유래한다. 중국 송나라 때 공자묘를 이전하면서 강당 터가 훼손되는 것을 막기 위해 후손이 살구나무를 심었고, 금나라 때 행단(杏壇)이라 쓴 비를 세웠다는 데서 비롯됐다는 해석도 있다. 행(杏)은 살구나무이기도 하고 은행나무이기도 하다. 조선의 유학자들은 은행나무로 해석해 서원과 향교의 상징물로 심었다.

향교 중에는 전주향교의 은행나무가 운치 있다. 전주향교는 고려시대에 세웠다고 하는데 정확한 기록은 없다. 조선 태종 10년(1410) 태조의 영정을 봉안할 경기전을 건립하며 전주부 서쪽으로 옮겼고, 선조 때 관찰사 장만이 지금 위치로 다시 이전했다고 한다.

전주향교에는 대성전과 명륜당 앞뜰에 약 400년 된 은행나무가 각각 2그루씩 있다. 이 향교의 은행나무는 물들고 지는 모든 과정이 예술이다. 기와지붕에 쌓이고 흙 마당을 노랗게 덮은 은행잎이 그윽한 정취를 자아낸다.

전주향교의 은행잎이 서재 지붕과 바닥을 노랗게 덮고 있다. 임영식 제공

전주향교의 은행잎이 서재 지붕과 바닥을 노랗게 덮고 있다. 임영식 제공


대구 달성군 도동서원 은행나무. 이번 주 절정에 달할 것으로 예상된다. 대구시 제공

대구 달성군 도동서원 은행나무. 이번 주 절정에 달할 것으로 예상된다. 대구시 제공

서원 중에는 대구 달성군 도동서원 은행나무가 멋이 있다. 도동서원은 조선 선조 38년(1605) 지역 유림이 한훤당 김굉필을 추모하기 위해 세웠다. 앞쪽에 강학 공간, 뒤쪽에 제사 공간을 두는 전형적인 서원의 건물 배치를 유지하고 있어 ‘한국의 서원’으로 유네스코 세계유산에 등재돼 있다.

도동서원 은행나무는 한훤당의 외증손인 정구(1543~1620)가 심었다고 알려져 있다. 적게 잡아도 400살이 넘은 나무다. 서원 입구에서 땅에 닿을 듯 넓게 가지를 드리우고, 바로 앞 낙동강과 어우러져 멋진 가을 정취를 선사한다.

민가의 은행나무에는 선비의 기품이 배어 있다. 아산 배방읍 맹씨행단의 은행나무도 그런 경우다. 맹씨행단은 조선 전기 청백리로 유명한 고불 맹사성(1360∼1438)이 정계로 나가기 전과 은퇴 후 살던 집으로 고택과 사당, 정자를 통틀어 이르는 명칭이다. 고려 후기 최영 장군이 지은 집이라 알려져 있는데, 맹사성은 최영의 손주사위이다.

맹사성은 고려 우왕 때 문과에 급제해 춘추관검열, 전의시승 등을 지냈고, 조선조에 들어서도 예조의랑, 이조참의, 예문관대제학, 우의정을 역임했다. 이 정도면 말년을 대궐 같은 집에서 보냈을 법한데 맹씨행단의 고택은 ㄷ자형 집 한 채가 전부다. 마당 한쪽에 그때 심은 은행나무 2그루를 쌍행수라 부른다. 소박한 살림집 위로 우뚝 솟은 은행나무가 그의 삶처럼 기품이 넘친다. 인근 곡교천 은행나무길도 이번 주 절정에 달할 것으로 보인다.

밀양강변의 금시당 은행나무는 이번 주말에 완전히 노랗게 물들 것으로 예상된다. 밀양시 제공

밀양강변의 금시당 은행나무는 이번 주말에 완전히 노랗게 물들 것으로 예상된다. 밀양시 제공


청백리의 기품이 묻어나는 아산 맹씨행단의 은행나무. 지난 3일 모습이다. 최흥수 기자

청백리의 기품이 묻어나는 아산 맹씨행단의 은행나무. 지난 3일 모습이다. 최흥수 기자

경남에서는 밀양 금시당(今是堂)의 은행나무 풍광이 좋기로 소문나 있다. 금시당은 조선 명종 때 부승지를 지낸 이광진이 1566년에 지은 별장인데, 뜰의 은행나무도 이때 심은 것이라 한다. 그의 호이기도 한 금시당은 도연명의 귀거래사 중 ‘각금시이작비(覺今是而昨非)’에서 따왔다. ‘지금이 옳고 지난날이 틀렸음을 깨달았다’는 말이다. 밀양강과 어우러진 금시당 풍광도 지금이 가장 좋을 때이다.

최흥수 기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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