영화 '같은 속옷을 입는...' 김세인 감독
엄마 수경(양말복)은 외동딸 이정(임지호)이 거추장스럽다. 서른 가까이 되고도 함께 사는 딸이 늘 불만이다. 이정은 엄마에게 서운하기만 하다. 어려서부터 살갑게 자신을 챙겨주기는커녕 남자 만나기 바쁜 엄마를 미워한다. 혈연이라는 어쩔 수 없는 관계로 맺어진 두 사람은 살얼음판 위 삶을 이어간다. 어느 날 차량 급발진 사고를 겪으며 서로를 향한 모녀의 분노는 임계점에 다다른다.
영화 ‘같은 속옷을 입는 두 여자’(10일 개봉)는 모성이라는 신화, 원활한 모녀 관계라는 이상에 의문을 던진다. 김세인 감독의 장편 데뷔작으로 지난해 부산국제영화제에서 뉴커런츠상, 아시아영화진흥기구상, 올해의 배우상(임지호) 등 5개상을 수상했다. 올해 극장가에 선보인 독립영화 중 가장 두드러진다. 김 감독을 지난 4일 오후 화상으로 만났다.
김 감독은 2016년쯤 영화를 구상했다. “어린 아이의 외로움을 주제로 단편영화 작업을 해왔는데 왜 그런 감정에 유독 관심을 가질까 따지다 보니 엄마가 있었다”고 한다. 한편으로는 엄마와의 불편한 감정이 영향을 주기도 했다. 성결대 영화과(연출 전공) 졸업 후 영화인으로 살기로 결심했을 때 “엄마가 배신을 당했다는 감정적 상황에 놓였다”고 한다. “어려서부터 엄마 말을 잘 듣던” 김 감독이 돈 되는 직업을 찾기보다 “수익이 바로 창출되지 않는 영화”로 인생 진로를 결정 지었기 때문이다. “영화 작업은 제가 (세상을 향해) 말하는 거라는 생각이 들었고, 계속 해야만 한다는 생각이 들었어요. 그렇게 독립을 하게 됐고, 시나리오를 쓰게 됐어요.”
수경은 지나치다 싶게 ‘불량 엄마’다. 딸에게 폭력을 휘두르고 험한 말을 하기도 한다. 딸이 뭐든 알아서 하고 자립하길 바라나 성인이 되어서도 자신의 발목을 잡고 있다는 생각에서다. 이정은 엄마에게 응당 받아야 할 사랑 없이 자랐다는 설움이 크다. 뭐든 자기가 먼저인 듯한 엄마가 조금이라도 애정을 비치길 원한다. 서로가 서로에게 기대하는 바가 다르니 시간이 갈수록 감정의 골은 깊어진다.
김 감독은 “아빠와 자식 사이 서로 기대하는 것보다 엄마하고 딸 사이에 더 뭔가 기대하는 것이 많다는 생각이 들었다”고 말했다. “한국에서는 부성보다 모성에 기대는 게 더 크고, 엄마에게 더 많은 역할과 책임을 요구하는 듯하다”고도 했다. “아동 제품을 판매할 때 모성을 자극하거나 엄마의 죄책감을 활용한 마케팅이 아주 많다는 생각이 들기도 했어요.”
차량 급발진이라는 소재를 가져온 것도 모성 신화와 관련 있다. 김 감독은 “대기업 제품이 절대 하자가 없을텐데라는 사회적 믿음을 모성 신화와 연결시키려 했다”고 말했다. 그는 “모성이라는 하나의 테두리를 두고선 좀 벗어나기만 해도 자격 미달이라고 지적하는” 사회 현실에 의문을 제기하고 싶었다.
수경과 이정은 여러 일들을 겪으면서도 타협점을 찾지 못한다. 어설픈 화해 대신 서로의 입장을 확인하며 두 사람은 각자의 삶을 찾아 나선다. 김 감독은 “두 사람이 정서적, 물리적으로 헤어지는 이야기를 저돌적으로 그려내고 싶었다”고 했다. “영화에 대한 평을 떠나 사람들이 모성 신화와 모녀 갈등에 대해 논의하는 장을 만들고 싶다”는 바람에서였다.
영화 제목은 운명적으로 묶인 모녀의 관계를 상징한다. 속옷을 같이 쓰면서도 불화하는 두 사람의 애증이 담겼다. 영어 제목은 ‘The Apartment with Two Women’이다. ‘두 여자가 함께 하는 아파트’라는 의미다. 김 감독은 “장소는 하나의 인물이라고 생각하며 영화 작업을 한다”며 “수경과 이정이 함께 지내왔던 삶의 시간성 자체를 대표할 수 있는 곳이 아파트라는 생각이 들었다”고 설명했다. 그는 “해외에선 한국 제목이 성인 영화라는 오해를 부를 수 있기도 해 아파트를 넣은 영어 제목을 별도로 만들었다”고 덧붙였다.
기사 URL이 복사되었습니다.
댓글0