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재난 그 후

입력
2022.11.08 04:30
26면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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편집자주

36.5℃는 한국일보 중견 기자들이 너무 뜨겁지도 너무 차갑지도 않게, 사람의 온기로 써 내려가는 세상 이야기입니다.

게티이미지뱅크

게티이미지뱅크


그야말로 상시적 재난 사회다. 매일 하루가 멀다 하고 노동자 1, 2명이 무방비 상태에서 불의의 사고에 노출돼 목숨을 잃고 있는데 우리는 그 속에서 아무렇지 않게 살고 있다. 왜? 그들의 죽음이 너무 흔해서다. 너무 자주 발생해서 특별한 사연이 없는 한 뉴스에서도 다뤄지지 않는다. 우리는 그들의 죽음에 익숙해졌고, 누구 하나 죽음의 원인과 사연을 궁금해하지 않는다. 그들의 고통에 공감하기보다 '또?'라고 심드렁하게 반응할 뿐이다. 그렇게 매년 200~300여 명의 죽음이 방치된다.

이들의 죽음이 우리 사회에 팽배한 무관심과 안전불감증 때문이라는 사실을, 결코 남의 일이 아님을 알게 되는 건 어느 순간 갑자기 들이닥치는 대형 참사가 벌어진 뒤다. 그제야 비로소 재난의 원인이 우리가 애써 외면한 사회 구조적 문제에 있음을 깨닫고, 뒤늦게 가슴을 친다.

문제는 값비싼 대가를 치러가며 어렵게 얻은 깨달음의 지속 시간이 지나치게 짧다는 데 있다. 우리는 8년 전 304명의 안타까운 목숨을 잃고 한동안 통탄의 시간을 보냈다. 5,000만 국민 대다수가 극심한 트라우마를 호소했고, 그 파장은 결국 정권 교체로 이어졌다. 그러나 딱 거기까지다. 시간이 지나면서 슬픔은 잊혔고, 우리는 또다시 무뎌졌으며 결과적으로 한 발자국도 나아가지 못했다.

재난은 여전히 반복되고 있고, 타인의 고통에 무감각한 사람들은 그때나 지금이나 난데없는 혐오와 증오를 확대 재생산하며 피해자들의 마음을 날카롭게 후벼 파고 있다. 재난 직후 쏟아져 나오는 루머와 음모론이 진실 규명을 지연시키는 것도 8년 전과 판박이다. 책임을 통감하고 대책을 마련해야 할 위치에 있는 사람들은 언제나 그랬듯 자신에게 날아드는 화살을 피하는 데에만 급급해 정부에 대한 불신을 자초하고 있다. 기회를 잡았다는 듯 재난을 정쟁에 이용하려는 사람들의 움직임은 더 이상 새삼스럽지도 않다.

어쩌면 우리는 애당초 깨닫지 못한 것인지도 모르겠다. 재난 상황에서 잠시 잠깐 크게 놀랐고 충격 받았지만, 재난 당사자들의 슬픔에 공감하지 못했고, 때문에 아무것도 깨닫지 못한 채 무심코 일상으로 돌아온 것이다.

문학평론가 신형철은 자신의 저서 '슬픔을 공부하는 슬픔'에서 인간이 배울 가장 소중한 것이자 가장 어려운 것으로 '타인의 슬픔'을 꼽았다. 이유인즉슨 같은 경험과 같은 고통만이 같은 슬픔에 이를 수 있기 때문인데, 설사 교육을 통해 배운다 해도 끝내 배움에 실패할 가능성이 있어서다.

실제 우리는 살면서 한 번 겪을까 말까 하는 초대형 참사를 8년 만에 2번이나 직간접적으로 경험하고도 타인의 슬픔을 배우는 데 실패했다. 우리도, 사회도 달라지지 않은 이유다. 그사이 우리의 무관심을 먹고 자란 재난의 그림자는 서서히 짙어져 우리의 삶을 잠식하기에 이르렀다.

타인의 슬픔을 배우지 못하면 구조적 변화는 기대하기 어렵다. 타인이 왜 아프고, 슬픈지 알지 못하는데 그들을 고통에 몰아넣는 사회 구조적 문제가 뭔지 정확히 파악할 리 없기 때문이다. 늦었지만 이제라도 배우고 깨달아야 한다. 이번에야말로 반복되는 인재의 고리를 끊고, 앞으로 나아갈 발판을 마련해야 할 때다. 무심코 일상으로 돌아가기보다, 무의미한 정쟁과 비난에 시간을 쏟기보다 타인의 슬픔을 어루만지고, 그 슬픔에 공감하며 재난의 근원적, 구조적 문제를 들여다보자. 그 속에 답이 있다.

김진주 기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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