작품성 돋보이는 그래픽노블 작품들 줄줄이 선보여
문학적 깊이와 만화적 재미까지
"그림·영상 익숙한 독자들, 수요 늘어날 것"

그래픽 노블 '까보 까보슈'는 주인공 '개'의 입장에서 인간과 개의 우정을 그려간다. 문학과지성사 제공
소설의 깊이에 만화의 몰입감까지 갖춘 해외 '그래픽 노블' 작품들이 잇따라 한국 독자를 만나고 있다. 유럽과 미국에 비하면 아직 국내 시장 규모가 작지만 꾸준한 성장세를 보이고 있다는 게 출판업계의 분석이다. 온라인 서점 예스24에 따르면, 2011년 49종 수준이었던 그래픽 노블의 연간 출간 작품 수가 2020년에는 140종까지 늘었다. 지난해(92종)와 올해(10월 기준 64종) 그 수는 다소 줄었으나 기존 출간작들이 스테디셀러로 성장하면서 판매량이 성장했다. 올해 그래픽 노블 판매량(10월 누적기준)은 전년 동기보다 25.7% 늘었다.
그래픽 노블은 원작이 있는 경우와 그 자체가 원작인 작품으로 나뉜다. 전자의 경우 독자들이 원작으로 가는 마중물이 되기도 하고, 원작 팬들에게는 새로운 이벤트로도 여겨진다. 지난달 출간된 '제5도살장'이 대표 사례다. 문학동네는 미국 소설가 커트 보니것의 탄생 100주년을 맞아 세계문학전집으로 낸 이 소설의 그래픽 노블 작품을 선보였다. 제2차 세계대전에 참전해 독일군 포로가 된 인물을 주인공으로 삼은 이 소설은 독보적 반전 소설로 불린다. 정신분열증적 서술 방식의 난해함을 만화를 통해 덜어냈다는 게 그래픽 노블판의 강점이다. 미국의 권위있는 만화상 '아이너스상'을 두 차례 수상한 만화가 라이언 노스가 각색하고 스페인 만화가 앨버트 먼티스가 그렸다.
지난달 출간된 존 포슬리노의 '월든에서 보낸 눈부신 순간들'도 마찬가지다. 19세기 미국 사상가 헨리 데이비드 소로의 '월든'을 원작으로 한 이 작품은, 편안한 그림으로 독자들의 접근성을 높였다. '월든'은 소로가 진정으로 나다운 삶을 살아가기 위해 2년 2개월간 월든 호숫가 근처에 오두막집을 짓고 단순 소박한 생활을 영위하면서 겪은 일을 써내려간 에세이다. "당신의 삶이 아무리 초라해도, 그 삶을 마주하고 살아 보라" "천국은 머리 위에만 있는 것이 아니라, 우리의 발밑에도 있다" 등의 명문장을 그대로 담았다.

최근 국내에 발행된 그래픽 노블 표지들. (왼쪽 위부터 시계방향으로) '제5도살장', '월든에서 보낸 눈부신 순간들', '주름_지워진 기억', '까보 까보슈'.
세계 아동문학 고전으로 불리는 다니엘 페나크의 '까보 까보슈'도 그래픽 노블로 재탄생했다. 시나리오 작가이자 색채 화가인 그레고리 파나치오네가 프랑스에서 선보인 지 1년 만에 한국어판이 나왔다. 올해로 40년이 된 작품이지만, 동물과 인간의 공존에 대한 그 메시지는 현재를 사는 우리에게 큰 울림을 준다. 사건과 시간의 순서를 자유롭게 바꿔가며 펼쳐지는 이야기가 그림으로 표현되면서 개의 과거와 현재가 누구나 이해하기 쉬워졌다. 영화를 보는 듯한 장면연출도 몰입도를 높인다. 문학과지성사 관계자는 "동화보다는 시각화가 잘돼 있고, 그림책보다는 이야기가 풍성한 그래픽 노블의 강점이 잘 살아 있다"면서 "아동과 성인이 모두 읽을 만한 작품"이라고 설명했다.
오리지널 그래픽 노블로는 주로 작품성을 검증받은 각종 만화제 수상작들이 한국어로 번역되는 추세다. 지난 9월 출간된 스페인 작가 파코 로카의 '주름_지워진 기억'도 스페인 만화페스티벌 최우수상을 받은 작품이다. 은행 지점장 출신인 에밀리오가 알츠하이머를 앓게 돼 요양원 생활을 하면서 벌어지는 일들을 담담하게 그려내 호평을 받았다. 어쩌면 잔혹하게 느껴질 정도로 기억이 지워지는 과정을 섬세하게 표현해냈다. 존엄성을 지키기 위해 분투하는 에밀리오를 통해 인생의 의미를 사유하게 한다. 그래픽 노블의 장르적 특성을 살린 작품들은 늘어날 전망이다. 문학동네 관계자는 "갈수록 텍스트 콘텐츠보다 그림, 영상 콘텐츠에 익숙한 독자가 많아지고 있어 그래픽 노블의 수요도 계속 늘지 않을까 전망한다"고 전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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